인생 레시피

▲ 김덕권 칼럼니스트

‘레시피(Recipe)’라는 말을 아시지요? 요리법(料理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요리,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나 기술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리에만 ‘레시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도 레시피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레시피가 아닐 런지요? 요리를 할 때 여러 재료를 한 번에 하나씩 순서대로 넣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에 한 가지씩 해나가야 합니다. ‘아, 이번 일을 잘 처리해야 하는데...’ ‘이거 했다가 망하면 어떡하지?’ 인생에도 이런저런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하나 둘 씩 새로운 경험을 더해 나아가면 되는 것이 인생일 것입니다.

때로는 내 의도와 관계없이 삶이 펼쳐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장은 다음번에 넣을 재료 이상은 생각할 수 없다 하더라도, 여전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가는 중이니까 중간에 손을 놓으면 안 됩니다. 간도 봐야 합니다. 너무 싱거우면 소금도 더 넣어야 하지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필요한 것이 차례로 나타날 것입니다.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내게 꼭 맞는 재료를 구하게 되고 그러다 훌륭한 레시피를 완성하게 되면서 내 인생에 깜짝 놀랄 만한 요리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儒) 불(佛) 선(仙)’의 정수를 담은 최고의 인문고전《채근담(採根譚)》을 아시지요?《채근담》은 명(明)나라 말기 홍자성(洪自誠)이라는 선비가 쓴 책입니다. 유교에 중심을 두되, 불교와 도교의 정수를 두루 섭렵하여 삼가(三家)의 조화를 이룬 ‘인생경영’의 명저(名著)이지요. 이 책의 제목이 채근담인 것은, 높은 뜻을 품고서 ‘풀뿌리(菜根)’와 같이 쓴 음식을 달게 먹으며 지금 현재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알고 사는 ‘군자의 길’을 추구하기 위하여 쓴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채근담》에서 양심적 인생경영의 해법을 배워봅니다.《채근담》은 인간 내면의 순수한 마음인 ‘양심’을 밝혀, 자신을 닦고(修己) 남을 다스리는(治人) ‘군자(君子)’가 주의해야할 모든 것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 그리고 몰상식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정의(正義)’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의’를 ‘양심’에서 찾지 않고 ‘이해관계’에서 찾는 한 우리는 영원히 정의로워질 수 없습니다.《채근담》에선 ‘정의’란 ‘양심의 실천’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정의를 논하기 전에 ‘양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누구나 ‘정의’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실 정의로워지는 해법은 우리 내면에 있습니다. 순수하여 오염되지 않은 마음인 ‘양심’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는 보편적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이 기뻐하는 것이 정의이며, 양심이 분노하는 것이 불의입니다. 이제는 ‘양심’에서 지혜로운 인생경영의 해법을 찾을 때입니다.《채근담》은 아무리 훌륭한 ‘재능’이 있어도 ‘양심’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독이 될 뿐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레시피를 완성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온 지식과 능력을 될 수 있는 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란 우리가 인생의 레시피를 완성하기 위해 가까이에 있는 인재를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기원전 202년,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는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를 굴복시킨 유방(劉邦)의 용인술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항우가 오강(烏江)을 앞에 두고 자결함으로써 5년에 걸친 초한전쟁이 끝났을 때 유방은 장안에서 황제에 즉위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략은 장량보다 못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소하보다 못하며, 군사를 이끄는 데는 한신에 미치지 못한다. 허나 이 걸출한 인재들을 적절하게 기용했기에 나는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확실히 유방은 성장과정부터 항우보다 나은 게 없었습니다. 항우는 초나라의 명장 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으며 숙부인 향량에게 병법도 배웠습니다. 그에 반해 유방은 서민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는 그저 작은아들이라는 뜻의 ‘계(季)’라고 불렸습니다. 글공부에도 관심이 없고 장사에도 재주가 없었으며 농사일도 게을렀습니다.

다만 베풀기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주색잡기에 빠져 지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단 하나, 유방에게는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이 항우보다 뛰어났던 것입니다. 유방의 부하들은 수많은 전투와 대결에서 유방의 목숨을 구하는 등 한나라 건립에 초석이 되었습니다. 유방이 나라를 세우겠다는 큰 뜻을 품고 전쟁에 나섰을 때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단 한 개의 성도 함락하지 못하고 직접 전투를 지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부하들이 공격하라고 진언하면 공격하고 후퇴하라면 후퇴했습니다. 승리를 거두면 장수들에게 아낌없이 재물을 나누어줬고, 부하들을 차별 없이 기용했습니다. 심지어 항우의 부하였던 한신을 비롯해 수많은 장수들이 유방의 수하로 들어가 목숨을 바칠 정도였습니다.

인생경영에서 ‘사람’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날의 경영에서는 리더의 개인적 능력이나 학벌, 인맥, 배경보다는 인재를 알아보고 양성하며 활용하는 기술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어느 날 유방이 한신에게 묻습니다. “과인은 어느 정도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다고 보는가?”

“폐하께선 고작 10만 명 정도밖에 거느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그대는 어느 정도인가?”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렇게 능력 있는 자네가 어찌 과인의 수하에 있단 말인가?” “폐하께선 군사를 거느리는 데는 능하지 못하시지만 장수들은 잘 거느리시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인생의 레시피를 완성하려면 사람이 우선 아닌가요? 사람을 얻는 데에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조금 바보 같이 손해 보며 사는 것이고, 둘째는 무조건 베푸는 것이며, 셋째는 사람들의 일에 맨발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얻는 것이 대업(大業)을 완성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럼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도 언젠가는 이루어지지 않겠는지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월 1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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