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게 역시로 끝났다. 그럴 줄 알았다. 중간평가 성격을 보여주는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승리는 흔치 않다. 4·10총선 결과 역시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격차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야권의 압승이었다. 아니 집권 여당이 참패했다. 야권은 192석, 여당은 108석을 얻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치러진 지난 21대 총선과 비슷한 성적이다.

유권자는 역시 무서웠다. 오만한 권력에 엄했다. 경제와 민생에 둔감한 정권을 용서하지 않았다. 마치 국민은 ‘심판의 날’을 기다려온 듯 집권 여당에 엄중한 ‘경고장’을 날렸다. 앞선 2년처럼 국정운영을 하지 말라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

4·10 총선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의 변곡점이다. 선거 참패로 의회의 주도권은 민주당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거기다가 ‘검투사’를 자처하는 조국혁신당이 원내 진입했다. 패스트트랙 저지선도 무너졌다. 야권은 마음만 먹으면 개헌과 탄핵 그리고 대통령 거부권의 재의결을 제외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어쩌면 개헌저지선을 지킨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형편이다. 

정부 여당은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후폭풍도 거세다. 총선 구원투수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사퇴했다. 한덕수 총리와 대통령 참모진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라며 인적 쇄신에 착수했다. 20대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처럼 ‘져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얘기가 안 나오는 건 다행이다. 현실 부정은 ‘폭망’일 뿐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이 위기를 벗어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위기 극복을 위해선 우선 패인 분석이 정확해야 한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을 낼 수 있다. 지고도 왜 졌는지 모른다면, 설령 알고 있더라도 고치지 않는다면 혁신방안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민심 수습도 난망한 일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은 레임덕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에 국민의힘 탈당을 요구받게 될 수도 있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룰 때 발전의 추동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심판론’이 지배했다. 아니 압도했다. 심판론은 투표를 통해 정권과 정당 혹은 인물을 심판한다는 의미다. 어느 선거나, 특히 대통령 임기 중간에 있던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은 득세했다. 선거가 끝난 뒤 각 정당과 언론은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왜 심판했느냐를 꼼꼼히 따지게 마련이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방식을 꼽고 싶다. 오만했다. 오만은 팽창한다. 불통과 독단으로 이어진다. 불통과 독단에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팽창 끝에 ‘고무풍선’은 터진다. 그 순간부터 권력의 효능감은 떨어지게 된다. 임기 2년 동안 9건 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했다. 무력화된 입법권을 상징한다. 

반면 대신 대통령이 던진 한마디는 ‘법’이 되고 정책이 됐다. 국회 심의에서 삭감된 R&D 예산의 대폭 증액을 약속한 게 그 예다. 그 사이에 민심은 대통령 편과 아닌 편으로 갈라졌다. 서로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조롱하고 냉소했다. 결국 충돌했다. 갈라진 여론이 충돌한 지점은 수없이 많다. 이태원 참사와 채 이병 사망사건이 대표적이다. 야당은 수십 명의 젊은이가 길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와 수해복구에 나섰다고 사망한 채 이병 사망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국민의 생각에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인사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구원해주려고 했다.

‘권력의 역설’이 작동한 탓이다. 권력의 역설은 권력을 잡으면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보고 다른 입장을 고려하거나 이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야 관계에서 극단적으로 권력의 역설이 나타났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집권 2년 동안 만나길 꺼렸다. 어쩌면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이고 재판받는 피의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인식이라면 만남 자체가 굴복으로 여겼을 것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그런 인식이 드러났다. ‘이·조심판론’ 즉 ‘범죄자심판론’이 그것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국정 기조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오류를 남의 잘못으로 덮으려 했다. ‘범죄자’를 심판해달라는 호소였다. 그러나 국민은 잘못의 경중을 따지지 않았다. 자신의 과오에 관한 집권 여당의 태도를 지켜봤다. 

윤 대통령의 인식이 단지 대야 관계에서만 머문 게 아니다. 국민의힘에서도 일어났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찍어내기가 그것이다. 불과 집권 2년 만에 5명의 당 대표 혹은 비대위원장이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권력투쟁 양상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전 대표 쫓아내기는 과정에서 벌어진 ‘부작용’이다. 비주류를 인정하지 않는 정당에 건전한 토론과 합리적 대안 제시를 기대할 수 없다고 국민은 판단했을 것이다. 

국민 아니 유권자는 윤석열 정부 2년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사건까지 잇따라 발생했다. 해병대 수사외압 의혹받고 있던 이종섭 전 국방위원장의 호주대사 임명이었다. 김경률 전 비대위원의 디올백 발언이 나오자 ‘동지적 관계’에 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도 사의를 종용했다. 이들 사건을 보면서 국민은 ‘직언 한마디 없는 대통령실’을 확인했다. 당연히 국민 지지도는 출렁거렸다. 이종섭 전 장관의 문제이 결정적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도와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는 폭락했다. 하루에 15%포인트가 떨어진 여론조사를 인용한 보도도 있었다. 민심은 ‘이종섭 사건’을 계기로 멈추어 섰다. 심지어 몰상식과 추접한 막말꾼 김준혁 후보와 부동산 투기 협의를 받는 양문석 후보의 결점에 눈감았다. ‘김준혁·양문석 당선’은 정권 심판의 위력을 보여준 이변이다. 오죽하면 “분노가 도덕을 이겼다”(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라는 얘기가 나오겠는가. 

지난해 10월  31일,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대통령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국회 의장단, 여야대표, 5부 요인과의 사전 환담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1일,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대통령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국회 의장단, 여야대표, 5부 요인과의 사전 환담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사실 국민의힘은 국민으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기조 변화를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끝내 국정 지지도는 30%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의힘 후보의 당락은 대통령 지지도와 연동되어 있다. 대통령 지지도가 후보의 기초 자원인 셈이다. 아무리 매력적 후보라도 대통령의 국정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권 후보는 고전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오만이 결국 ‘정권의 명운’을 갈랐다고 하는 이유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는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글귀가 놓여 있다. ‘책임’은 대통령 마음대로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결정에서 빛날 것이다. 4·10선거에서 드러난 국민의 뜻은 무엇인가.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라는 국민의 요구다. 오만이 낳은 불통과 독단에서 벗어나라는 게 국민 생각이다.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건 권력자의 오만”이라는 박원호 서울대 교수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윤 대통령도 전에 "국민은 언제나 옳다"고 말했지 않은가.

오만과 불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귀를 열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를 듣는 창구는 국민의힘이다. 수직적 대통령실과 여당 관계 개선 없이 국민의힘 역할은 없다. 정당은 국민 여론과 통하는 창구다.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살피고 그것을 피드백한다. 그 과정에서 정책의 오류나 결점을 수정하게 된다. 수직적 관계에서는 그 통로는 막힌다. 당의 충언이 나올 수 없다. 결국 국민의힘이 용산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수평적 관계 수용은 곧 일방통행적 국정운영의 포기를 의미한다. 윤 대통령의 국정 기조는 설득과 타협으로 보수 본연의 미래와 가치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 첫 단계가 당·청관계의 정상화다. 그렇게 된다면 당이 대통령실의 레드팀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차기 당권에 도전할 인사 대부분이 ‘비윤’인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재명 대표를 독대해야 한다. 국민은 이 대표가 ‘피고자’임을 다 안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적 명예 회복’을 시켜줬다. 국민이 생각에 정치적 회복이라는 의미는 야당 대표로 그 실체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 대표를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난다면 당연히 윤 대통령의 ‘불통의 이미지’도 희석될 것이다. 국정운영 기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 대표는 ‘영수회담’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물론 이 대표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법 리스크의 물타기’가 될 수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확고한 입지를 보여주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더 시급한 쪽은 용산이다. 민주당은 채 이병 사건 특검을 발의해 둔 상태다. 윤 대통령 자신을 겨냥한 법안이다. 또 김건희 여사 문제도 곧 22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다뤄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들을 정치적 사건으로 만들지 않길 원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대표와 독대다.

그만이 아니다. 수많은 민생개혁법안도 처리해야 한다. 국민연금, 교육과 의사정원 조정, 인구감소와 기후위기 대처 등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다. 야당을 무시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더욱이 여당은 절대 소수다.

김경은 칼럼니스트
김경은 칼럼니스트

국정 기조의 바로미터는 인사다. 인사쇄신이 바로 그 증거이기 때문이다. 만일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윤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총리를 비롯하여 대통령실 참모들이 사의 표명했다. 윤 대통령도 4일째 일정을 잡지 않은 채 인사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 인사는 한마디로 ‘검찰 인맥’이다. 심지어 정당 출신 인사의 비율도 다른 정권에 비해 현저히 낮다.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밀어붙인 장관도 열여덟 명이다. 적어도 청문회가 끝난 뒤 심사평가보고서가 채택될 수 있는 정도의 인사를 내놓아야 한다.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국민은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군”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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