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와 유니티] ⓶ 북한 사회, 얼마나 또 어떻게 변화했나?

통일부 자료 제대로 해석하기

  1. 통일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발표

지난 2월 통일부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발표했다. 통일부는 2010년부터 「북한 경제·사회 심층정보 수집」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2013년부터는 경제, 사회, 주민의식 분야로 문항을 체계화하였는데, 이번에 발표한 보고서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및 심층인터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했다고 밝혔다. 정부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북한의 경제·사회 변화에 대한 공식보고서라는 의미가 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정착한 북향민 6,351명에 대한 설문·면접 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10년간 기록한 응답의 합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 시점에서 기록된 북한 경제·사회 변화에 대한 통계는 아니라는 말이다. 보통 국가 경제나 사회 지표에 대한 통계는 해마다 작성되지만, 북한의 경우 해마다 경제·사회 통계를 직접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북한의 변화를 조사하고 통계로 작성하는 데는 근본적인 자료수집의 한계가 있다. 이 보고서도 그런 한계로 인해 북향민들에 대한 설문과 면접으로 자료를 축적하였고, 10년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보고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1. 보고서에 나타난 북한의 변화 지표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사회가 다방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지나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기존 국영경제, 즉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따른 배급체제에서 사경제 중심으로 옮겨갔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이다. 배급제가 붕괴되고 그동안 무임금 ‘충성’페이만 강요돼 왔다. 응답자들의 답변을 보면 식량 배급 ‘경험 없음’이 72.2%, 직장에서 식량배급 및 노임 지급도 ‘모두 없음’ 답변이 50.3%였다. 기업소 실제 가동시간을 보면 1일 6시간 이하로 가동했다는 응답이 37.6%였다. 실제 가동시간은 전력공급량에 따라 기업소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업소 셋 중 하나는 여전히 1일 6시간 이하로 가동한다는 얘기다.

 2000년대 까지는 국영경제 전업 종사자가 더 많았으나 2011~2015년을 기점으로 사경제 전업 종사자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즉 2000년대에 탈북한 사람들 인터뷰에서 다수가 국영경제 전업 종사자였으나, 2010년대 이후 탈북한 사람들의 경우 사경제에서 종사하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응답자중 주 소득원이 ‘비공식 소득’이었다는 응답이 68.1%였고, 사경제에 종사했다는 응답이 37%나 됐다. 실제로 2003년 상설시장이 합법화되면서 기초적인 시장경제 활동이 시작되었다. 2018년 기준 북한 정부가 공식 인정한 장마당만 500개 가까이 된다. 2009년 화폐개혁 실패 이후 내국화폐는 저축의 가치가 상실됐고 위안화 등 외국화폐 사용이 증가했다. 2012년 김정은 집권이후에는 외화통용이 약 5배 증가했고 북한 경제에도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었다. 2011년 이전까지 시장에서 거래되던 화폐 1순위는 북한 원화가 81%였으나, 2012년 이후에는 위안화가 58%로 1순위 거래 화폐로 바뀌었다.

흥미로운 점은 사경제가 활발해지면서 빈부격차가 심화되었다고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경제 활동으로 인한 소득의 격차는 곧 빈부격차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또한 정권에 의해 소득의 일부를 수탈당하기도 하고 간부들에게 뇌물로 빼앗기는 비중도 날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1년 이전 뇌물 공여 경험이 24.2%였으나, 2012년 이후에는 48.3%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경제 활동으로는 장마당에서의 경제활동 외에도 밀무역, 텃밭, 소토지, 운수사업, 돈장사(환전), 사적고용(삯 벌이)등으로 다양했고 건설업에 종사했다는 응답도 새롭게 나왔다.

사경제 활동 중 사금융행위, 즉 비공식 금융시장도 초보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2000년대 이전에는 돈을 빌린 이유가 생활비 용도가 많았으나 2016년 이후부터는 장사 밑천 용도가 많아졌다. 이자율은 최근 들어 7.1%로 크게 상승했고, 현재까지는 비공식적이지만 초보적인 임노동 관계가 나타나고 있음이 확인됐다. 즉 기존의 국영경제 종사하는 국가 간의 임노동 관계가 아니라 임금(삯 벌이)을 대가로 사적 고용이 생겼다는 얘기다. 사적 고용 업종으로는 기존에는 농축산, 상점, 식당 비율이 많았으나 최근 2010년 후반에 들어서는 건설과 광산 현장, 운수사업 등에서의 임노동 관계가 증가했다.

국영기업의 명의나 자산을 개인사업자가 임차 및 활용하여 운영하는 사업체, 즉 사실상의 사적 기업인 소규모 개인기업의 비중이 모든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개인이 기업소 명의로 자동차를 사서 사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인차로 개인사업을 하는 걸로 이해할 수 있다. 소규모 국영기업의 경우 사유화 진행이 빠른 속도로 전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식당 같은 서비스업의 경우 개인 운영 비중 추측치가 2000년 이전 8.1%에서 2016~2020년 57.5%로 큰 폭으로 뛰었다. 상점 및 개인서비스업(이발소, 목욕탕, 수리 등)도 크게 상승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종합시장과 사경제 활동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식량 및 생필품 배급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주민들의 식생활이나 생활 수준은 과거와는 달리 일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 사경제 활동을 통해서 식량과 생필품을 자체조달 하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 사정도 비슷하다. 여전히 전력공급 수준은 2000년대 이전의 수준에 못 미치지만, 주민들은 시장에서 축전지(자동차 배터리), 태양열 패드 등을 매수하여 부족한 에너지로 활용하고 있다.

공적 서비스인 보건의료, 교육, 교통 부문에서도 시장화가 된 건 마찬가지다. 의약품의 경우 자가공급 현상이 뚜렷하다. 사교육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가정 탁아 서비스도 증가하고 있다. 교통의 경우 여전히 철도가 가장 중요한 이동 수단이지만 ‘써비차(돈을 받고 화물이나 여객을 수송해주는 차량)’와 같은 개인의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까운 도시로 이동 시 이용한 교통수단을 보면 2000년 이전 써비차 이용률이 2.6%였으나 2016~2020년 27.1%까지 확산됐다. 공적 서비스 영역이 붕괴하면서 대부분 이를 시장이 대체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자립적 생존방식이 더욱 확산되고 있으며 정권이 그토록 선전하고 있는 ‘자력갱생’이 실제로 시장화가 가속화되면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에서 시장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공적 서비스 접근에 차이가 만들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북한사회는 기본적으로 평양이 중심이다. 한국도 서울이 중심이듯 북한도 모든 자원이 평양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보다 심한 편이다. 의식주와 보건의료 등의 공적 서비스 전반에서 평양 거주자가 타지역 거주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양과 평양 이외 다른 지역 간의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 소득의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은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특히 북한은 평양과 평양 이외 지역 간의 격차가 크고, 지역과 소득, 직업에 따라서도 차이가 뚜렷해지고 있다. 주민들 사이의 차이와 격차가 점차 확대되어 최근에는 계층화 혹은 불평등이 가시화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응답자 93%가 빈부격차가 심화됐다고 응답했다. 식량배급 경험의 경우 평양이 61%인 반면 비접경지역은 30%, 접경지역 34%로 나타났다. 즉 배급 받는 사람이 평양 주민들이 두 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평양-지방 간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화로 인한 북한 사회 변화의 모습 중 이동성의 증가는 중요한 부분이다. 여전히 지역 간 이동에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주민들은 다양한 교통수단을 활용하여 더 적극적으로 이동에 나서고 있다. 특히 국경 무역이 활발한 접경지역에서는 개인이 운용하는 교통수단의 발달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북한 전체 평균을 살펴보면 2016~2020년 기간에 사적 교통수단이 국영 교통수단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동성의 확대는 정보의 이동을 의미한다. 북한에서도 정보기기, 그 중에 휴대전화의 확산세가 상당하다. 2023년 기준 북한의 휴대전화 보급률을 보면 평양이 71%이고 접경지는 31% 수준으로 파악됐다. 인터넷 접속은 불가능 하지만 휴대전화를 통한 외부 문화의 유통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북향민 중 북한에서 영상 기기를 활용해서 한국이나 외국 영상물을 시청했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2011년 이래로 80%를 상회하고 있다. 필자가 북한에서 한국 영상물을 시청한 것도 20년 전이니 지금은 거의 일상적인 비공식 문화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사경제 활동의 확산은 결혼시장에서도 변화를 보였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젠더 의식이나 가족 전반에 변화가 가시화되었다. 여성들이 결혼을 늦게 하고, 이혼 경험이 늘어나고, 과거에 비해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여성들이 경제활동의 주체로 본격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사경제 활동에서 여성들의 비중이 높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뇌물 공여의 경험이 김정은 집권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공적 서비스 대신에 시장에서의 사경제 활동을 통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정부 당국의 지속적인 통제에도 불구하고 소위 ‘불법’과 ‘뇌물’이 성행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 권력층에 의한 수탈이 만연하여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 보고서에 따르면 월소득의 30% 이상을 수탈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37.1%로 나타났으며, 그 정도는 김정은 집권 이후 41.4%로 더욱 심각해졌다. 뇌물 관행이 전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계획경제와 시장이 혼종된 상태에서 주민들은 자립적 생존 전략을 시장에서 찾고 있다.

김정은의 리더십과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은 집권 이전에 탈북한 응답자들의 경우 백두혈통에 의한 영도체계 유지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이 우세한 반면, 김정은 집권 이후에 탈북한 응답자들에게서 부정적 평가가 우세하여 뚜렷한 대조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대적으로 접경지역에 거주하고 연령대가 낮을수록 자본이 권력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양중심 체제에서 멀어질수록 자신들의 삶이 권력과 멀어진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로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출신이 승진하거나 신분상승으로 권력의 중심인 평양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은 계층이동의 사다리,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원천 봉쇄된 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가속화된 시장화와 사경제 활동으로 모든 의식주를 해결하는 요즘의 세대에서는 이런 인식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경제 활동이 확산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북한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가 많다. 다만 이번 통일부에서 발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가 북향민들의 설문과 면접 조사로 작성된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

  1. 통일부 발표 보고서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이상으로 통일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나타난 지표로만 봐도 북한사회가 전 분야에서 과거와는 달리 많은 부분이 사경제, 즉 시장논리에 의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이 보고서의 응답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북한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경제 활동을 하다가 모든 자본금을 잃었든지 빼앗겼든지, 원래 없었든지 어느 쪽이든 사경제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박탈되어 탈출한 사람들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 정착한 북향민은 입국자 기준으로 3만 5,000명이 채 안 된다. 달리 말하면 북한 주민 2,300만 명의 0.15%에 불과하다. 98%는 여전히 북한에 살고 있으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여전히 사경제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사경제 활동 비율과 그에 따른 북한 경제, 사회 변화 지표가 탈북한 사람들의 응답률보다 훨씬 활발하거나 더 변화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통일부에서 발표한 이번 지표에 나타난 북한사회의 변화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시간적으로 뒤처진 통계 지표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오래전 탈출한 사람들은 현지에서 생계수단이 박탈된 사람들이므로 시장경제 활동에 있어 경험이 적다. 특히 이 보고서는 10년간 누적된 응답이므로 오래 전 탈북한 응답자들의 경우 최근까지 변화된 북한 내에서의 사경제 활동에 대한 응답의 일치도가 낮거나 상당히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보고서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이런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통일부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경제와 사회 전 영역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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