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종이

전통 한지,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자신하는 이유? 

풍납토성이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전통 한지(韓紙) 복원의 전초기지가 될 전망이다.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가 지난 23일 풍납토성에 ‘한지박물관’ 설립을 결정했다. 풍납토성으로 결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서울이 한지 문화의 중심지인 동시에 한지 문화산업센터가 소재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진흥회는 풍납토성 한지박물관 건립을 계기로 전통 한지 문화의 보존과 발전 도모할 계획이다. 전통 한지 산업 클러스터도 조성할 예정이다. 

사진: 2017년 세계 3대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 문화재 복원지로 우리나라 한지가 최초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 문화재 복원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사라져가던 한지의 역사와 1,000년이 넘어도 지속되는 한지의 비결! 동양에서 최초로 발명되어 인류 지식 전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종이의 역사와 미래 그리고 예술품 복원지로 다시 희망을 찾은 한지의 미래 및 한지를 통해 재탄생하는 인류의 예술 작품들과 이를 통해 이뤄지는 동서양의 전통과 예술의 만남을 재조명해본다.
사진: 2017년 세계 3대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 문화재 복원지로 우리나라 한지가 최초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 문화재 복원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사라져가던 한지의 역사와 1,000년이 넘어도 지속되는 한지의 비결! 동양에서 최초로 발명되어 인류 지식 전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종이의 역사와 미래 그리고 예술품 복원지로 다시 희망을 찾은 한지의 미래 및 한지를 통해 재탄생하는 인류의 예술 작품들과 이를 통해 이뤄지는 동서양의 전통과 예술의 만남을 재조명해본다.

전통 한지는 한국에서조차 ‘잊혀가는 유물’이었다. 우리나라 한지 매매의 90%는 인사동에서 이뤄진다. 그중 90%는 우리 고유의 기술이 아닌 서양 기술이 가미된 한지다. 결국 우리 전통 한지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전통 기법으로 제작하는 한지 기업은 불과 5곳뿐이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가 한지 산업 육성을 위해 나선 건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2026년 세계무형문화유산(전통한지 생산 시스템) 등재와 세계중요농업유산 등록을 추진 중이어서 더욱 그렇다. 진흥회는 한지 공예에 집중적 투자를 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 전통 한지의 품질 우수성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전통 한지의 품질 우수성은 서양 예술계에서 먼저 알아봤다. 루브르박물관은 세계적 작품의 보존과 복원에 우리 전통 한지를 사용했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전시된 ‘직지심체요절’(복사본) 제작, 9세기에 제작된 이슬람 경전 코란의 복원 등 수많은 퍼포먼스가 있다. 사실 전통 한지의 명성을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이다. 과거로 돌아가면 그 명성은 더욱 빛난다. 1300년 전의 목판 인쇄물 다라니경이 남아 있다.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쇄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쇄물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 기술을 역사 속에 묻혔을 것이다. 다라니경은 완벽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다. 좀이 하나도 쓸지 않았다. 전통 한지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송나라 때 소동파는 고려에서 만든 한지인 ‘고려지(高麗紙)’만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지를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찬사를 아기지 않았다. 당시 종이의 대명사가 고려지였다. 자금성이 1420년 지어진 뒤 모든 벽과 문에는 고려지가 쓰였다. 건륭제(1711~1799년)가 말년을 보내기 위해 보수 공사를 한 권근제에 고려지가 사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종이로 갑옷을 만들었다고?                                 

조선시대 갑옷
조선시대 갑옷

우리나라는 종이를 활용한 생활용품을 많이 사용했다. 각종 그릇이나 보관함, 식기, 신발, 장, 물통, 세숫대 등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요강도 종이로 만들었다. 요즘은 그것을 지승공예라고 한다. 혹자는 물을 묻히는 생활 도구를 종이로 만들면 얼마나 쓸 수 있겠느냐, 물이 새서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한지는 물에 풀어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한지를 물에 씻어 쓸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전통 한지의 수명은 1,000년이라고 했다. 그 노하우는 만드는 기술에 있다. 종이를 꼬아서 모형을 만든 뒤에 물세지 않도록 옻칠했다. 1,000년 가는 한지 그릇에, 옻칠하면 2000년 간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갑옷을 종이로 만들기도 했다. 보통 갑옷을 철갑으로 만든다. 하지만 철갑은 추위에 취약하다. 대신에 장교는 가죽 갑옷(皮甲)을 입었다. 병사는 비싼 피갑 대신 종이 갑옷(紙甲)을 입었다. 송진을 바른 한지를 겹겹이 붙여 만들었다. 비싼 종이 가격이 문제였다. 재활용 종이를 활용해서 그 문제를 해결했다. 비변사는 과거 응시생 중 낙방생의 시험지를 모아 각도의 병영에 갑옷용 종이로 보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갑옷 만들 종이가 부족하다”면서 “더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군데군데 보인다.

품질이 아무리 우리 것이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종이 발명국은 중국이다. 종이는 화약, 나침반, 인쇄술과 함께 중국의 4대 발명품이다. 약 2000년 전 후한 사람인 채륜이 종이를 발명했다. 그 역사만큼이나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종이가 있다. 바로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센지(宣紙)다. 우리가 보통 화선지라고 부르는 종이다. 먹물과 붓만으로 회화적 묘사를 완벽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먹의 흡수가 뛰어나다. 아주 미세한 차이의 먹물 농도까지 표현한다. 선지에 그린 그림에서 생동감을 느끼는 이유다. 특히 센지는 광택감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섞지도 않는다고 할 정도로 오래간다.

일본은 종이접기, 중국은 종이 오리기, 그럼 한국은?                 

종이 예술의 최고는 역시 중국이라는 데 이론을 달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는 종이공예가 생활용품이 되었다면 중국 그 자체가 예술이 된 경우다. 중국의 전지 공예를 지엔지(剪紙)라고 한다. 가장 중국적인 예술로도 통한다. 종이를 종이칼로 오려 만든 공예다. 혹시 중국 명절에 대문에 거꾸로 쓴 복(福)자를 붙여놓은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지엔지 공예품 일종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두리안(對聯)이라고 해서 집안의 기둥에 이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경사스러운 날 복을 기원하기 위해서 ‘종이 조각품’을 붙이는 것이다. 글로 복을 기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 길조, 풍경화 등을 그려서 조각한다. 최고의 작품은 하나 만드는데 3~5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명품의 최소 가격은 우리 돈으로 5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일본의 종이공예모습
일본의 종이공예모습

일본은 자기 나라의 종이를 와시(和紙)라고 한다.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보다 종이의 장식 활용도가 많다. 전등, 갓 등 장식하는 많이 사용된다. 와시의 특징은 부드러움에 있다. 일본 최고의 와시는 중부지방의 후쿠이(福井) 지방에서 생산되는 엣치젠((越前) 와시다. 여기서 만들어진 와시는 비단 종이로 불릴 정도로 부드럽다. 엣치젠 와시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종이와 종이 사이에 무늬와 문양을 넣는 것이다. 종이의 두께를 자유자재로 조절하지 못하면 만들 수 없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나가시즈키’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종이공예보다는 종이접기가 더 유명하다. 종이접기를 오리가미(折り紙)라고 한다. 에도시대 때부터 유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종이로 만든 인형도 일본 종이공예의 하나로 발전했다. 와시닝교(和紙人形)라고 한다. 종이가 천과 다른 감촉을 준다고 해서 꽤 인기가 높다. 와시닝교에는 이목구비를 표현하지 않고 얼굴만 만드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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