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는 축제의 장이다. 정당정치의 꽃이다. 전당대회가 ‘축제’가 되고 ‘꽃’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있다. ‘공론’이다. 공론이란 구체적이고 발전적인 당 변화와 혁신 방안을 모색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차기 당 대표를 꿈꾸는 주자는 전당대회라는 열린 공간에서 치열하고 절박하게 논쟁해야 한다. 그 토론은 정당 운영의 방향과 전략, 정책적 비전과 대안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방송토론과 정견 발표 등을 통해 상호검증한다. 선의 경쟁 과정을 거치면서 당의 가치도 미래지향적으로 재정립된다. 자연스럽게 당권주자의 리더십 우열도 가려진다. 승자는 포용의 아량을, 패자는 승복의 미덕을 베푼다. 그럴 때 당의 기세는 오른다.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 직후 정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를 기대할 수 있다. 상승한 당 지지도는 당에 대한 강화된 국민 신뢰다. 정당이 민심에 수렴했음을 확인하는 절차다. 이것은 필자가 생각하는 전당대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7·23 국민회의 전당대회는 필자가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지와 개념의 큰 차이를 보인다.

이번 7·23전당대회는 최악이다. 전당대회로 국민의힘이 만신창이가 됐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위한 논쟁은 없었다. 토론은 부족했다, 의제는 없었다. 미래, 국민, 민생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물고 뜨는 비난과 비방, 흑색선전과 인신공격이다. 국민은 이런 광경을 6차례나 생방송으로 봤다. 욕하면서 보게 되는 막장 연속극이었다. 주제는 한결같이 진실게임(내부 총질)이었다. ‘1일 1건 폭로전’이 전개됐다.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 ‘배신자론’, ‘색깔론’, ‘총선 책임론’, ‘당정 관계’, ‘사천 의혹’……. 심지어 4·10총선의 고의 패배론까지 나왔다. 한동훈 후보를 향한 경쟁자의 책임 덧씌우기였다. 한동훈 후보도 ‘당무 개입’, ‘국정농단’과 같은 선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방송토론회는 회를 거듭할수록 더 과격해졌다. 불법 폭로전으로 발전했다. ‘한동훈 댓글 팀’과 ‘김건희의 여론 조성팀’ 의혹이 제기됐다.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하 청탁’도 불거졌다.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 같은 무분별한 폭로가 해당 행위로 이어진 사례는 적지 않다. ‘드루킹 사건’, ‘대장동 의혹’, ‘다스 및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도 내부 총질 과정에서 나온 사달이다. ‘자뻑’이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 같은 폭로전을 빗대 ‘자폭·자해·자멸·팀킬 고발’이라면서 민주당의 공격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전당대회도 끝나기 전에 전당대회 이후가 걱정이라는 볼멘소리다. 당원의 불만은 투표율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19, 20일 양일간 실시된 당원 선거인단 모바일 투표의 투표율이 40.47%에 불과했다. 국민적 관심조차 끌지 못했던 지난해 3월 전당대회보다 무려 7% 포인트 가량 떨어진 수치다. 국민의힘 당원마저 있어야 할 게 없고 사라져야 할 게 난무한 ‘서글픈 축제’에 참담함을 느낀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보수진영의 운명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당대회였다. 특히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으로서 헌정사상 최악의 참패를 경험했다. 그 불명예를 씻고 새 출발을 하는 전당대회여야 했다. 반성과 성찰 그리고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했다. 변화와 혁신의 마스터플랜을 마련했어야 한다. 거대 야당을 대적할 수 있는 진용과 전략을 갖춰야 했다. 정책적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지난 총선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힘의 패배’”라는 지지자의 질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랬다면 새로운 당 대표를 뽑고 새 대표에게 축하 화환을 전달하는 ‘그들만의 정치행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차기 당 대표가 누가 되는 영광의 화환을 받았을 것이다. 그 꽃은 화합과 단결의 축제가 만든 감동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축제의 날’까지는 이틀 남았다. 그 시간만이라도 당권주자는 더 이상 비방과 폭로를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가증한 조속히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과 당원이 걱정하는 ‘전당대회 이후’의 관리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국민의힘, 아니 보수진영의 생리상 분당도 못 한다. 결국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다. 내부 분열, 그 자체가 보수가 망으로 가는 길이다. 난폭한 의정을 주도하는 민주당을 도와주는 일이다. 당권 출마자들 모두 디올백과 관련한 김건희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인정하지 않았나. 대통령실 부속실 설치에 대해서도 모두 동의하지 않았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경계하는 공동 인식을 하는 것이다. 공통의 인식에서 출구전략을 찾는다면 해답을 못 찾을 이유가 없다.
누가 당선되든, 전대 이후 수습이 더 중요해졌다. 수습은 또 리더십 검증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관계 설정, 즉 당정 관계가 검증의 마로미터다. 대통령실과 집권당의 당정 관계는 풀기 쉽지 않은 고차방정식이다. 이 문제는 경선 과정에서 더 꼬인 측면이 있다. 사실상 ‘한동훈 대 반한동훈(1 대 3)’의 경선 구도가 당정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한 후보는 ‘당정 관계 재정립’을 주장했다. 용산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수직적 관계에서 합리적 비판과 수정 제안이 가능한 수평적 당정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얘기다. 사실상 보수의 대안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반면 반한 후보들은 당정 관계가 흔들이면 윤석열 정부가 위태로울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실상 당정 관계가 ‘친윤 대 비윤’으로 경선 구도를 가른 것이다. 경선 과정에서 제기된 ‘배신자론’은 바로 친윤 주자들이 윤 대통령을 대신해서 싸워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비윤 주자인 한동훈 후보가 당 대표가 된다면 전당대회 이후의 당정 관계는 재설정될 것이다. 50% 이상의 득표율로 1차 투표에서 당선됐다면 한동훈 후보가 당정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결선투표까지 간다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라는 대세론의 실체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당정 관계에서 윤 대통령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결선투표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전당대회의 결과(한동훈 후보 당선)가 윤 대통령에 대한 또 다른 심판(강서구청장보궐선거, 410총선, 723전당대회)이라는 해석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전당대회 이후의 당정 관계가 중요한가. 현재 권력과 미래권력이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이 권력 이동의 변곡점이다. 그 시점이 다가오면 정권의 안정화를 추구하는 대통령 권력과 윤 대통령을 딛고 올라서려는 집권당 권력이 정면충돌하게 될 것이다. 이중권력 대치는 윤 대통령의 레임덕을 의미한다. 적당한 타협이나 어정쩡한 절충할 수 없는 대혈투다. 제로섬 싸움이다. 특히 현재와 미래권력의 특징은 공격적이다. 3년 가까이 임기가 남은 현재 권력과 미래권력의 공존의 길을 찾기란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는 사례도 없다. 그만큼 권력의 불안정성은 커질 것이다.
그 불안정성에는 ‘윤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 대선’의 우려도 숨어 있다. 친윤계의 한 인사는 “한 후보가 승리하면 야권의 거친 공세 속에 탄핵의 징검다리를 건너 조기 대선까지 감수할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걱정의 한편에서 튀어나온 게 있다. ‘김옥균 프로젝트’다. 갑신정변을 일으켜 ‘3일 천하’에 그친 김옥균처럼, 한 후보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친윤(친윤석열)계가 흠집을 잡아서 끄집어 내리겠다는 얘기다. 현실성 없는 얘기다. 이준석 전 대표를 끌어내린 때만큼 윤 대통령이 힘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20%대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한 윤 대통령이 그런 일에 에너지를 소모할 여력도 없다. 낭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현성 여부가 아니다. 국민의힘이 ‘분열’될 수 있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 한동훈과 친윤세력의 화학적 결합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인가.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한 후보는 대권 도전 의사를 숨기지 않고 있다. 대권의 후계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윤 대통령의 성공이다. 윤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게 현재 권력의 성공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윤 대통령의 성공은 고사하고 20%대 지지율 회복도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의 실패다. 그것은 한 후보에게도 부담이다. 한 후보의 처지에서 윤 대통령의 성공에 기여하고 차별화를 꾀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감옥의 담장을 걷는 ‘곡예정치’가 필요할 수 있다. 그것은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