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향민(북한이탈주민)들의 대략 80%는 경제적으로 하층 계급 출신이다. 북한에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다면 애초에 탈북을 결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는 북한에서 중산층 정도의 삶을 살아가는 인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고, 같은 이유로 상류층 집단들의 평균적 인 삶은 알 수가 없다. 이들의 삶은 소수의 고위급 출신 북향민을 통해서만 조금 들을 뿐이다.
그렇다면 북한을 더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재로선 북한학 연구자가 되거나, 아니면 최근에 탈북한 북향민들의 이야기를 좀 더 귀기울여 듣는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발간된 책을 읽거나 소장하는 것, 혹은 직접 웹사이트를 찾는 일들이 전부 불법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보는 것은 불법이며, 더 정확하게는 기존 언론에 공개된 북한 방송자료들 외에 직접 노력해서 찾아보는 행위는 불법이다.
실제로 북한의 대표적인 대외홍보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를 비롯한 북한 웹사이트는 접속이 불가하며 국가보안법상 불법 유해 사이트로 분류돼 있다. 반면 한국을 제외한 외국에서는 북한 웹사이트에 자유롭게 접속이 가능해서 종종 북한연구자들이나 북한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국내에서 아이피를 우회하는 프로그램(vpn)을 통해 접속하기도 한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이라도 북한 내부 발행 자료를 공식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인데, 통일부의 허락을 받아 국회도서관이나 중앙도서관 등을 통해 로동신문과 일부 북한방송들을 '연구용 목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도 제한적으로만 볼 수 있을 뿐이고 전파일복사는 불가하고 인쇄만 가능하다. 결국 소수만이 제한적 정보에 접근 가능하며 다수는 북한에 대해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는 북한에 대해 궁금증을 갖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북한이 스스로 고립을 자처했다고 하나 우리 또한 통로를 꽉 닫은 셈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국민이 북한을 직접 알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금지된 성역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수문장이 떡하니 지키고 있으니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더 실제적인 지식을 수집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종편 방송을 통해 편집되거나 '악마화'된 북한의 이미지만 나오니, 우리는 그저 북한이 마치 사람이 살 수 없는 '감옥'이나 '지옥'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북한이 살기 힘 든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에도 버젓이 사람들이 살고,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일상의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동전의 양면이 아닌 한 면만을 보면 북한의 인민들이 일체의 자유 없이 감옥에 갇혀 사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북한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주장들이 근래 많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 집권 후 통일부의 2022년 추진과제 중에는 '북한 방송통신 선제적 개방' 안이 포함돼 있다. 국민의힘 태영호 전 의원도 '북한 방송통신 선제적 개방'을 이념과 체제 경쟁의 종료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적극 개방을 주 장했다. 이런 태영호 의원의 주장은 꽤 의미가 있다.
그는 "북한 방송통신 선제적 개방은 이념 전쟁·체제 경쟁이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계기가 될 것"이 라고 말했는데, 나 또한 이 주장에 공감한다. 북한은 실패한 체제다. 그들이 마주한 미래는 거대한 세계화 속에 결국 무릎 꿇는 일밖에 없다. 단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
태 전 의원이 북한 방송 개방을 주장하자 보수 진영 일부에서는 그를 향해 '빨갱이', '이중간첩'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 전 의원은 지난 2016년 대한민국 입국 후 꾸준히 북한 정권의 실상을 폭로해 왔으며 보수 진영에서 인기 스타였고 강남갑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열광하던 보수 지지자들마저 태 전 의원에게 '빨갱이' 취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태 전 의원도 이를 어느 정도 예견했다. 그는 '북한 방송 통신 선제적 개방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면서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에 자신의 우려를 적었다. 토론회에서 북한 방송 개방을 지지하는 발언을 할 전문가들이 없어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워낙 조심스러운 주제이니 발언을 꺼린다는 것이다.
북한의 방송통신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체제 선전 방송으로 우리 국민들을 세뇌시킬 것이라 주장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정도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북한 방송을 개방해서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 선전물 영상을 만들어 내보낸다고 치자. 과연 누가 그걸 보면서 북한을 동경하고 찬양할까. 그토록 촌스럽고 재미없는 북한 방송에 국민들이 과연 흔들릴까? 아마 보지도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 등 각종 OTT 서비스에서 재미있는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누가 북한 방송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보겠나. 나조차 촌스럽다 비웃는데. 한국 사람들의 지성 수준은 높다. 개방된 북한 방송을 자유롭게 보며 토론해도 될 만큼 말이다.
북한 방송을 개방하면 오히려 북한의 고민이 커질 수 도 있다.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 남한 국민들의 관심을 얻을까?" 북한 정부나 방송 제작 관계자들은 이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북한의 낙후한 방송 제작 기술과 콘텐츠로는 남한 국민들의 관심을 얻을 수 없다는 건 뻔하고,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방송제작 수준을 끌어올려 성과를 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의 방송 제작 기술과 콘텐츠 수준이 한국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상향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북한이 지금처럼 자기들만 보고 자기들만 즐기는 우물 안의 콘텐츠가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도 한번쯤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정도의 콘텐츠를 만들 동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북한 내 방송 제작 기술과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면 글로벌한 기준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시장 경쟁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가 어느새 그들도 조금이나마 시장을 개방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 중에 가장 큰 공포는 무지에서 오는 공포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라고 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북한에 공포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이 핵무기를 가졌고, 미사일을 쏘아대서만은 아닐 것이다. 주체사상 이데올로기가 강력해서도 아닐 것이다. 북한이라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공포가 시작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무기를 가졌는지 알면 우리는 거기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니 사실 특별 한 게 없음에도 공포만 커지는 것이다. 북한과의 체제 대결과 이념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북한이 남한을 공산화 할 수 있을까? 태 전 의원의 지적처럼 우리는 이미 체제 대결과 이념 전쟁에서 확실히 승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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