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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기업에서 관리자 역할을 더 잘 수행할수 있을까? 아니면 현장 노동자의 역할을 더 잘 할까? AI가 특정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할수록 해당 직무 담당자는 타격을 받는다.
무슨 질문이든지 척척 답변을 내놓는 사람보다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생성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직업과 고용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국내외 연구기관의 미래 고용전망 보고서들은 생성 인공지능으로 큰 타격을 받을 직종은 ‘고소득 전문직’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진단, 분석, 전망 기능 대부분이 생성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대체가능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 직무가 생성 인공지능에 취약해진 상황은 광범한 일자리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생성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직장인들 가운데서 어느 계층과 연령대에 더 크게 나타날까? 경력이 오래된 숙련노동자, 경력 쌓기를 시작한 신입사원에게 생성 인공지능은 어떠한 위협과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 질문들은 인공지능이 기업에서 누구를 더 대체하기 쉬운지를 알려주며, 향후 취업 준비와 경력 개발 방향을 좌우한다.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해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지난 7일치 기사에서 생성 인공지능이 어떤 노동자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소개했다.
AI 본격 서비스 돌입에 빅테크 해고 물결
인공지능이 웬만한 사무직 업무를 대체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빅테크기업에서는 광범한 해고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AI 열풍속에서 많은 기업이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을 대거 채용했지만, 생성AI 서비스가 기업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자 대량해고로 나타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달초 전세계 직원 4%에 해당하는 9000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지난 1월 저성과자 1% 해고, 5월 6000명 이상 감원에 이은 올들어 세 번째 대규모 감원이다. ‘신의 직장’으로 불려온 구글도 지난해 1만2000명을 대량 해고했으며 올들어서도 추가 감원을 진행중이다. 아마존은 올들어 1만4000명 넘게 해고했다.

아마존 최고경영자 앤디 재시는 지난달 “AI를 활용해 향후 몇 년간 전체 인력을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메타는 2022~2023년 2만1000명 넘게 감원한 데 이어 지난 2월 전직원의 5%에 해당하는 3600명을 추가 해고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대량 해고 사유는 팬데믹 기간에 늘어난 직원 감원과 사업구조 재편인데, 해고 대상은 주로 저성과자, 비핵심부서 그리고 중간관리자다.
“AI는 젊은 직원들의 경력 쌓기 방해”
유망 AI기업 앤트로픽의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는 지난 5월 “AI가 5년내 모든 신입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직무 50%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챗GPT, 구글 제미나이 등 다양한 ‘인공지능 에이전트’ 서비스들은 ‘개인 비서’ ‘만능 인턴’으로 제품을 홍보하고 있는데, 이는 직장에서 주로 연차가 적은 직원들이 맡아온 영역이다.
AI 이후 변호사 업계가 대표적 사례다. 법무법인은 대개 판·검사, 대형 로펌 출신 등 경력이 풍부한 구성원 변호사(파트너)들이 팀장을 맡고, 연차가 낮은 소속 변호사(어쏘)들이 팀원으로 있는 구조다. 법률 분야에 특화된 인공지능 에이전트 서비스가 다수 출시되면서 로펌의 업무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어쏘 변호사들이 판례를 검색하고 정리하던 일을 법률AI는 1분 안에 처리한다. 그 결과 변호사 업계엔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법무법인들이 경력이 적은 어쏘 변호사들의 채용을 줄이며 초임 변호사들의 구직이 어려워지고 있다. 한편, 대표나 파트너 변호사들은 팀원인 어쏘 변호사 숫자가 줄었지만 AI법무 서비스를 활용해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전문직 분야에서 경험과 브랜드를 갖춘 경력자가 최신 인공지능 기술까지 익히면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경험이 풍부한 경력자에게 유리하지만, 경험을 쌓아야 하는 저경력자나 신입 직원에게는 불리한 환경이다. 다수의 직역에서 숙련 기술자가 새로운 참여자나 후발주자를 구조적으로 배제하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라 바나 스탠퍼드대 교수가 이달초 발표한 논문에서 “AI가 초급개발자를 덜 고용하게 만들지만, 중간급 개발자는 더 고용하게 만들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경력이 풍부한 사람이 AI를 이용해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은 젊은 직원을 덜 필요로 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신입 직원 채용을 줄이는 인사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청년층의 실업률이 높아지는 배경의 한 원인이다.
“AI는 고임금의 고숙련 직원들에 더 큰 타격”
하지만 반대 현상도 뚜렷하다.
챗GPT와 같은 최신 기술을 잘 이용하려면 지속적인 학습과 기민한 활용능력이 요구되는데, 신기술 습득과 활용에서 젊은층은 장년층보다 뛰어나다. 경험이 풍부한 고숙련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기량에 의존하는 경향과 고연령으로 인해, 최신정보 학습능력에 적극적이기 쉽지 않다. 지난 6월 오픈AI의 최고운영책임자(COO) 브래드 라이트캡은 생성AI 기술이 “오래 근무하고 특정한 업무 방식에 익숙한 계층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MIT 슬론경영대학원 다니엘 리 교수는 이달초 공개한 논문에서 “AI가 비숙련 노동자보다 고숙련 노동자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AI가 전문가가 지닌 고유 역량을 그 사람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리 교수는 “고숙련자는 그 기술이 희소하다는 이유로 돈을 받고 있는데, AI는 그 기술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해고와 구조조정을 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인데, 고숙련자는 인건비가 높다는 게 무엇보다 위험요소다. 인공지능 에이전트 개발회사인 ‘2389리서치’의 최고경영자 해퍼 리드는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가장 임금낮은 직원을 해고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낮은 임금의 직원을 고용해 고임금 직원과 같은 가치를 창출하게 하는 게 방법”이라고 말한다.
신입, 경력직 논란을 넘어서는 ‘AI 충격’
전문적 직업 역량을 대체하는 생성AI 서비스의 대중화가 직장에서 고경력자, 신입사원 누구에게 더 타격인지에 관해 최근 업계 동향과 연구결과를 통해 살펴봤다. 엇갈리는 연구결과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어느 쪽이 진실에 더 가까울까?
답은 두 가지 진실이라는 쪽에 가깝다. 생성AI는 임금이 높고 경험이 많은 고경력자에게 타격이지만, 동시에 경험이 적은 저숙련 노동자에게도 타격이다. 엇갈린 연구 결과는 생성AI 기술이 고숙련자, 저숙련자 어느 한쪽에 무조건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고숙련자이건 저숙련자이건 생성AI를 비롯한 최신 기술을 자신의 직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모두 직무 유지가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저숙련자, 고숙련자가 각각 다른 이유로 직업 안정성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은 둘 모두 그러한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맞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생성AI는 경력이 많고 적음을 고려하기보다 누구든지 새로운 기술과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그에 필요한 능력을 학습해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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