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있었던 한국과 미국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은 한국의 외교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외교 불문율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안미경중, 安美經中)’이었다. 두 정상 간의 만남은 이 시대가 끝나고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미국이 우선시되는 안미경미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알렸다. 더 나아가, 한국이 미국의 대중 억제정책에 동참한다는 선포도 담겨 있다. 

이런 선언이 아니어도, 한국은 이미 안미경미 시대로 기울고 있었다. 지난 30년간 한국은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를 중국으로부터 경험했다. 1993년 12억 달러로 시작된 흑자는 2013년에는 628억 달러에 이르렀다.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2022년까지 이 흐름이 지속되었다. 안보와 달리, 이 시기 한국은 중국을 떠나 경제를 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기조가 2023년에 꺾였다. 2023년에 한국은 180억 달러의 대중 무역적자를 냈다. 2025년 1·4분기에도 49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재미있는 것은 대중 적자를 대미 흑자로 메우고 있음이다. 한국의 대미 흑자는 2023년 445억 달러, 2024년에는 556억 달러에 달했다. 경제도 미국에 의존하는 시대가 왔다. 이 대통령이 이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한국의 국방비를 5%에 근접하도록 올리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는 단순히 안미경미를 더 강화하겠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대중 압박에 한국이 실질적으로 동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평택 미군기지를 임대가 아닌 소유로 해달라는 주문을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 중국억제용 군사기지를 구축하겠다는 속내를 비쳤다. 

미래는 어떨까? 한국은 앞으로도 중국으로부터 돈 벌기가 쉽지 않다. 중국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아서다. 한국은 최근 석유화학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중국발 지진의 결과다. 과거 한국은 이 산업에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중국에서 벌어들였다. 이제는 불가능하다. 규모의 경제(가격)뿐만 아니라 기술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산업이 한 둘이 아니다. 그사이 변화가 있었다. 중국에서 벌지 못한 돈을 미국으로부터 벌게 되었다. 한국은 앞으로도 안미경미 시대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로 인해 한국은 뜻밖의 일에 직면했다. 미국의 관세위협이다. 하지만 우울해하거나 분노만 할 필요는 없다. 한편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도 전개되고 있다. 한·미관계는 이제 단순거래 관계를 넘어, 경제협력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은 창의적 기술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제조기술은 전혀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한국은 미국의 이런 약점을 메워줄 거의 유일한 나라다. 조선, 반도체, 원전, 전력망, 건설업 등 미국이 절실하게 필요한 모든 기술을 한국은 가지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게 상업적 이득만 주는 것이 아니다. 훨씬 중요한 안보적 이득을 제공하고 있다.   

한·미 경제협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산업이 조선업이다. 미국의 조선업 쇠락은 그저 미국이 배를 통해 돈을 벌 수 없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안보에 큰 구멍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함정 수에서 중국에 절대적으로 열세다. 아무리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어도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면 대응이 만만치 않다. 미국은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손을 내밀었다. 한국은 미국에게 중국의 해양군사력을 막아 줄 구원투수가 된 셈이다.

반도체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이며 한미 기술 동맹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게 한국의 반도체는 상업적 거래를 넘어, 미국의 안보를 지키는 핵심기술이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팹리스), 원천기술, 첨단장비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 둘이 합쳐져야 미국은 반도체 전쟁에서 중국과 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미 반도체 협력은 조선에 이어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뭉친 환상적 결과다.  

원자력도 한·미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러·우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원전이 재조명받으면서다. 이것을 배경으로 미국에서도 큰 정책 변화가 있었다. 트럼프 정부는 2050년까지 미국의 원전 규모를 현재 97기가와트에서 400기가와트로 확대하는 ‘원전 르네상스’를 채택했다. 문제는 이 많은 원전을 누가 지을 것인가이다. 한국을 빼면 도울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 

전력망 역시 한·미 협력의 중요 축이다. 미국의 전력망은 대부분 20세기 중반에 건설돼 노후화가 심각하다. 이런 인프라로는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하는 AI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 미국은 지금 전력망을 전부 교체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해줄 나라도 한국 이외 마땅한 곳이 없다.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서도 미국은 한국이 필요하다. 재건사업은 미국에 의해 주도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까다로운 이 사업을 수행하기 쉽지 않다. 도로, 교량, 공항, 항만, 철도 등 전쟁으로 파괴된 핵심 기반 시설 복구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기술이 빈약해서다. 한국은 이런 분야의 글로벌 최강자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건설환경 속에서도 한국은 중동의 빈약한 인프라를 일거에 쇄신시켰다. 또 원전이나 화력발전소와 같은 에너지 시설 재건에서도 가장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향후 한·미관계는 경제협력을 넘어 경제통합 단계로 진화할 것이다. 한국의 이차전지, 반도체, 조선이 미국에 둥지를 튼 것이 방증이다. 이들 분야에서 중국에 맞설 힘이 달리자 미국이 먼저 나서 한국에 공장설립을 요청했다. 막대한 보조금을 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관세를 피하고자 미국에 짓는 자동차 공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향후에도 미국과의 경제통합은 다양한 기술 분야에서 더 깊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방과 바이오산업이 다음 순번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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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홍은 KAIST를 졸업하고 광운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경영대학장과 경영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인사조직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지식경영학회 및 한국중견기업학회 회장을 지냈고, 삼성그룹, 포스코, 한국전력, CJ그룹 등에서 자문교수로 활동했다. 정부혁신관리위원장, 사업재편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현재는 한국이해관계자학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비즈니스의 맥', '세종에게 창조습관을 묻다', '국가경쟁력, 중견기업에서 답을 찾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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