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온담 대표변호사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제는 몇 가지 키워드만 입력하면 AI가 자동으로 계약서를 완성해주는 플랫폼이 흔하다. 스타트업의 투자계약서, 프리랜서의 용역계약서, 심지어 부동산 매매계약서까지 ‘AI 초안’을 바탕으로 작성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거래비용을 크게 줄이고, 법률문서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AI가 대신 작성한 계약서도 법적으로 유효한가?”
계약의 본질은 ‘당사자의 의사표시의 합치’에 있다. 그리고 계약의 성립을 위한 의사표시의 객관적 합치의 정도에 대해서 판례는 “ 당사자의 서로 대립하는 수개의 의사표시의 객관적 합치가 필요하고 객관적 합치가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나타나 있는 사항에 관하여는 모두 일치하고 있어야 하는 한편, 계약 내용의 '중요한 점' 및 계약의 객관적 요소는 아니더라도 특히 당사자가 그것에 중대한 의의를 두고 계약성립의 요건으로 할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이에 관하여 합치가 있어야 계약이 적법·유효하게 성립한다”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59 판결). 즉, 문서를 누가 작성했는지가 아니라 당사자가 객관적으로 그 내용에 동의했는지가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AI가 초안을 만들었더라도 사람이 이를 검토·승낙해 전자문서와 전자서명의 요건을 갖추면 계약으로서 효력은 인정된다. 따라서 AI가 초안을 만들었더라도, 사람이 이를 검토하고 서명했다면 계약은 유효하다. AI는 단지 작성의 보조자일 뿐, 법적 주체로서의 ‘의사표시’를 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책임의 귀속이다. AI가 법률적 판단을 잘못하거나, 특정 조항을 누락한 경우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현행 법제에서는 인공지능이 법적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결국 AI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이 그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AI가 작성한 계약서에 과도한 위약금 조항이 포함되어 분쟁이 발생했다면, 계약의 효력은 여전히 인정되지만 그 결과에 대한 민사상 책임은 서명한 당사자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계약이 무효”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무에서는 ‘AI 초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AI가 만들어준 계약서의 내용을 막상 보다 보면 그 내용이 매우 그럴듯하고 설득력이 있어 일반인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는 과거의 표준계약서나 관행적 문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특정 거래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AI가 작성한 계약서의 법적 안정성은 그것을 검토한 인간의 주의의무 수준에 달려 있고 법적 책임의 중심에는 언제나 당사자의 의사와 판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제를 대비하기 위한 제도 논의가 활발하다. 유럽연합(EU)은 ‘AI 법(AI Act)’을 통해 인공지능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려 하고 있으며, OECD 역시 “AI 활용 과정에서 법적 책임의 주체는 인간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계약서를 ‘자동 작성’하는 기술보다, 계약 내용을 ‘자동 검증’하는 기술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 계약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계약은 인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성립하며, 그 신뢰는 법적 책임을 전제로 한다. 인공지능이 계약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는 있지만, 계약의 신뢰를 대신할 수는 없다. AI가 대신 써준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계약의 책임은 결국 누구의 것인가?”
<김준호 변호사 프로필>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졸업
-대한태권도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위원
-변리사, 세무사
-(현) 소방산업공제조합 비상임이사
-(현) 법무법인 온담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형사법, 재개발건축 전문분야 등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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