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저널리스트

인공지능(AI)이 대중화하는 거센 열풍 속에서 정반대의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 프리(AI free)’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분야에서 AI를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고 개인별 맞춤화를 앞세우는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이 직접 만들었다”는 마케팅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의 한 고급 증류주 업체는 자사의 위스키를 ‘AI free’라고 마케팅하고 있다. 제조와 숙성, 마케팅 전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운다. 인공지능에 결함이 있거나 나빠서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넘쳐날수록 인간이 만들어낸 불완전함과 개성이 고유의 특징이자 차별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이 범용화되면 ‘AI free’가 식료품 시장의 ‘유기농’ 제품처럼 특별함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과연 예측대로 ‘AI free’는 인공지능 시대의 유기농 제품이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갖게 될까? 일부 전문가들은 식품의 ‘유기농’, ‘무농약’ 인증처럼 앞으로는 제품과 서비스에서도 ‘AI free’ 스티커가 프리미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생성형 인공지능과 다재다능한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인공지능은 개인과 조직의 일상에서 필수 기술이 되고 있다. 전기나 컴퓨터없이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제품을 만들고 조작할 수는 있지만, 품질과 효율성 차원에서 경쟁이 되지 못한다. 산업현장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인공지능이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다.

어메리칸 이글이 자사 브랜드 '에어리'를 홍보하며 올린 새로운 광고이미지. (사진=어메리칸 이글 인스타그램 갈무리)
어메리칸 이글이 자사 브랜드 '에어리'를 홍보하며 올린 새로운 광고이미지. (사진=어메리칸 이글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런데 AI의 효율성과 완벽함은 사람 손길이 가져오는 독특한 불완전함에 대한 갈망도 불러온다. 거센 AI 열풍에 맞서려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자동화되는 세상에서 진정성과 연결에 대한 깊은 정서적 욕구와 맞닿아 있다. 'AI-free' 라벨은 향수와 장인 정신을 상징하며, 기계로 찍어내는 대량 생산과 자동화 사회에 대한 반항을 의미한다. 'AI-free' 라벨이 붙은 제품은 인간의 섬세한 손길, 오랜 시간의 숙성, 희소성,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고유의 인간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는 처음 등장한 현상이 아니다. 과거의 유기농 식품 운동, 슬로푸드 운동, 장인 정신의 부활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이 그 배경이다. AI가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면서 인간적 감성에 대한 욕구 또한 더욱 강해진 것이다.

  도브, 어메이칸이글 “우린 AI 사용하지 않아요” 마케팅

이미 일부 제품과 서비스는 ‘AI 사용하지 않음’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세계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는 자사 브랜드 도브(Dove) 광고에 AI 모델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여성들은 AI 이미지 생성기에 아름다움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달라는 메시지를 제출하지만 비현실적인 결과를 받게 된다.(왼쪽 사진) 유니레버는 AI시대에 새로운 컨셉의 '리얼뷰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오른쪽). (사진=유니레버 제공)
여성들은 AI 이미지 생성기에 아름다움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달라는 메시지를 제출하지만 비현실적인 결과를 받게 된다.(왼쪽 사진) 유니레버는 AI시대에 새로운 컨셉의 '리얼뷰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오른쪽). (사진=유니레버 제공)

유니레버가 2004년부터 펼쳐온 ‘리얼 뷰티(Real Beauty)’ 캠페인은 미디어와 화장품 업계가 제시하는 획일적인 여성 미의 기준에 반대하며, 다양한 여성이 저마다 고유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주창해왔다. 도브는 AI를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위협”으로 묘사하며, ‘멋진 여성’, ‘완벽한 피부’와 같은 AI 프롬프트를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의 해악성을 지적했다.

도브는 AI가 인터넷이 자신감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여성과 소녀 10명 중 9명이 “온라인에서 해로운 뷰티 콘텐츠에 노출되었다”고 답한 설문 결과를 소개했다. 2025년까지 온라인 콘텐츠의 90%는 AI에 의해 생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생성형 AI로 인한 왜곡에 맞서 인간의 고유성과 진정성을 지키겠다고 마케팅하는 곳은 화장품 기업만이 아니다. 미국의 캐주얼 패션 브랜드 어메이칸이글(American Eagle)은 10월 자사의 에어리(Aerie) 제품 광고에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인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캐주얼 의류업체 어메리칸이글은 2025년 10월 "AI가 만들어낸 사람이나 몸을 사용하지 않겠다. AI도 이미지 리터칭도 않겠다. 100% 진짜 사람만 사용하겠다"고 인스타그램에 선언했다. (사진=어메리칸 이글 인스타그램 갈무리)
미국의 캐주얼 의류업체 어메리칸이글은 2025년 10월 "AI가 만들어낸 사람이나 몸을 사용하지 않겠다. AI도 이미지 리터칭도 않겠다. 100% 진짜 사람만 사용하겠다"고 인스타그램에 선언했다. (사진=어메리칸 이글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 선언을 공개한 SNS 게시글에는 2주 만에 4만개 넘는 ‘좋아요’가 쏟아지며,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매끄러운 글쓰기를 돕는 한편, 다수의 언론은 “인공지능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AI free)는 공지를 통해 독자 신뢰를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날로그 복고 취향’과 ‘AI free’의 차이

2017년 발간된 베스트셀러 '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스 색스 지음)은 디지털 흐름을 거스르는 아날로그 제품들에 대한 선호 현상과 그 배경을 다뤘다. 디지털 음원과 스트리밍 음악 감상이 확산되는 가운데, 오히려 증가하는 LP 레코드의 판매량, 만년필과 몰스킨 수첩, 필기 메모에 대한 매니아들의 변함없는 열정, 필름카메라와 보드게임 인기 등이 ‘아날로그의 반격’ 사례로 제시됐다.

아날로그 향수가 복고적이고 과거지향적이라면, ‘AI free’는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아날로그 선호 현상이 소수의 예외적 회고 취향이라면, ‘AI free’는 전문가의 오랜 노하우와 정성이 깃든 프리미엄 제품이다.

‘AI free’ 선호는 아직 미미한 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에 새로운 가치로 각광받을 상품의 조건과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희소성은 경제학의 핵심 개념이지만, 희소한 모든 재화가 저절로 가치를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AI free’가 인공지능 범람 시대에 새로운 프리미엄으로 자리 잡는 조건을 살펴본다는 것은 단순히 희소함에 대한 선호를 넘어 인공지능의 대중화로 인해 오히려 가치가 높아지지만 공급이 희소해지는 재화의 속성을 분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이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대체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과 그것이 요구되고 구현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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