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8일, 대한민국의 어깨에 얹혀 있던 4천억 원의 빚이 사라졌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벌인 투자자-국가 중재절차(ISDS)에서 나온 중재판정이 뒤집힌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4천억 원의 혈세를 미국계 사모펀드이자 헤지펀드인 론스타에 물어내지 않게 되었다. 경제와 관련하여 답답한 소식만 들려오던 요즘 드물게 속이 뚫리는 희소식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현 정부가 다소 애매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석 총리와 정성호 법무부장관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한민국의 승소를 축하하며 법무부 직원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사건의 타임라인을 되짚어보자면 이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다. 론스타는 2002년, IMF 금융위기로 인해 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외환은행을 사냥감으로 삼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1조원에 매입했고, 정권이 바뀐 후 이명박 정권에서 5-6조원에 매각하려 들었다. 정부에서 절차의 문제를 들어 거절하고 외환은행은 결국 하나금융지주에 매각되었는데, 그러자 론스타는 자신들이 대한민국 정부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중재절차를 요구했다. 그것이 2012년의 일이었다.

10년만인 2022년 8월 31일 중재판정이 나왔다. 론스타의 요구는 대부분, 95.4% 기각됐다. 하지만 고작 4.6% 반영된 것만으로도 당시 액수로 3천억 원, 이후 4천억 원까지 불어났다. 외국계 사모펀드가 우리 국민의 세금 4천억 원을 그냥 가져갈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항소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돈을 내고 말 것인가? 결과를 아는 우리로서는 당연히 항소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여론은 둘로 나뉘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야권 전체, 그리고 친 민주당 성향의 언론과 유튜버 등이 입을 모아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논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ISDS는 단심, 그러니까 단 한 번의 재판으로 결정된다. 물론 양 당사자에게 한 번의 취소 소송 제기 기회가 주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단심 결정이 뒤집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심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연 이자가 붙는다. 따라서 이쯤에서 백기 투항을 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논리다.

이쯤 되면 의아한 기분이 든다. 민주당과 소위 ‘범 진보’ 계열은 밑도 끝도 없는 소송을 좋아하는, 다소 풍자적으로 표현하자면 ‘소송 애호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천정산에 국가가 터널을 짓겠다고 하자 그것을 막겠다며 도롱뇽을 소송 주체로 삼아 소송을 걸겠다고 나섰다. 제주도에 해군 기지를 짓겠다고 하자 구럼비 바위가 당사자라며 소송을 시도한 적도 있다. 애초에 승소 가능성이 0으로 수렴하는 경우에도 그들은 기꺼이 소송전을 벌여왔다.

그런데 왜 이번만은 달랐던 걸까? 이번 경우는 도롱뇽 소송이나 구럼비 바위 소송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칭 진보 세력이 옹호했던 그런 엉터리 소송과 달리, 이 경우에는 우리 정부에 확실한 대항 논리가 존재했다. 공교롭게도 그 논리의 큰 부분을 만든 사람이 바로 당시 검사였던 한동훈이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범법 행위가 있었는데, 그 중 유죄를 받은 단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론스타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하고 유죄를 받아낸 장본인이 바로 한동훈이었던 것이다.

검사 한동훈이 수사했던 사건에서 찾아낸 사실관계와 논리가 법무부장관 한동훈의 ISDS 이의신청에서 빛을 발했다. 애초에 법무부 내에서 이 사건 처리를 담당한 조직 자체가 한동훈이 설치한 것이었다. 론스타 사건을 두고 한동훈의 이름을 제외하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말이 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이 사건에서 하고 있는 일은 정 반대다. 애초에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국내에서 은행업을 할지 말지도 명확하지 않은 미국계 사모펀드에 왜 우리나라의 은행을 매각한단 말인가? 그런 의아한 결정을 내린 주체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였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최초의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의 의아한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미 우리가 여러 뉴스를 통해 확인했듯, 민주당과 친 민주당 성향의 언론, 유튜버 등은 그냥 빨리 돈을 물어주라며 다양한 경로로 여론전을 펼쳤다. 부당한 요구에 맞서는 대신 ‘어차피 맞을 매 빨리 맞자’는 식의 논리를 편 것이다. 한동훈이 ‘멋진 모습 한 장’ 찍으려고 3천억을 내고 있다며, 지연 이자를 한동훈에게 청구해야 한다고, 유튜버 김어준은 송기호 국제변호사를 앞세워 주장한 바도 있다.

대체 왜 민주당은 이런 의아한 태도를 취하는 걸까. 필자의 제한된 정보력으로는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수천억 대에 달하는 국고 손실이 벌어질 뻔했고, 그것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부추기려 한 어떤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움직임은 정치권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의혹을 검증하고 수사하며 기소하기 위해 특검이라는 제도가 있다. 대장동에 대해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여 7천억 원의 국고 손실을 막은 것과 마찬가지다. 비록 이 경우는 다행히도 국고 손실을 막았지만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대장동과 마찬가지로 론스타 역시 특검을 통해 낱낱이 의혹을 규명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돈의 정의’에 부합한다. 대장동을 특검하라. 론스타를 특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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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정태는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이다.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일보, 서울신문, 신동아에 칼럼을 기고한다. '프리랜서', '불량 정치' 등을 썼으며, '아웃라이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칩 워' 등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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