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애 칼럼] 장애인과 여성을 향한 ‘공정과 정의 그리고 상식'의 정치로 돌아가야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전장연은 독선을 버려야 하고 자신들이 제시하는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서울시민을 볼모 삼아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아집을 버려야 한다.”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여성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 온라인에서는 보일 수 있겠으나 실제 투표 성향으로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본다.”

위 발언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의 발언이다. 이를 가만히 곱씹다보면, 마치 장애인과 여성에게 상당히 질렸다는 감정이 느껴질 만큼 이들을 향해 날 선 비판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소수에게 주어지는 일련의 혜택과 우대에 대해 매우 반감을 지녀왔다. “소수자 정치의 가장 큰 위험성은 성역을 만들고 이에 대한 단 하나의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게 틀어막는다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동안 많은 기성 보수 정치인들이 장애인에 대해 무관심했고, 전통적인 유교적 가족주의 가치관에 의거해 여성을 과소평가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런데 ‘공정과 정의’를 도구 삼아 젊고 새로운 이미지로 빠르게 정치 입지를 다졌던 이 대표에게서도 사회로부터 부당함과 때론 매장함을 당했던 장애인과 여성을 향한 ‘공정과 정의 그리고 상식’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대표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오후 6시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사실 이 대표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책을 낼 정도로 꾸준히 ‘공정’과 ‘경쟁’을 강조해왔다. 지난 2021년 7월 ‘토론 배틀’을 통해 선발된 신임 대변인들에게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청와대 1급 비서관과의 경쟁도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경쟁은 이 대표의 정체성(identity)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정과 정의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보다는 외려 ‘공정한 경쟁’이라는 신념에 더욱 굳건한 그에게 장애인과 여성은 어떤 존재일까?

이 대표가 보기에 정당하게 경쟁을 해야 하는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은 사회적 약자이기 전에 불공정한 특혜를 받는 사회의 불공정한 존재들이다. 또한 상식적이고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훼손하는 대상이기에 반드시 ‘투쟁’해서 싸워야 할 존재인 것이다.

과연 이들을 향한 이 대표의 분노를 개인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같은 2030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대표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공정과 경쟁은 흔히 2030세대, 90년대생, MZ세대에게도 중요한 이슈이다. 이 대표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 치열한 경쟁의 생태계 속에서 최소한의 공정함을 부여받기 위해 투쟁의 길을 걸어왔던 2030의 특성을 투영하는 결집체인 것이다. 한 마디로, ‘이준석’이라는 인물은 2030의 사회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2030은 어렸을 때부터 무수한 경쟁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과거 박정희 시대 엘리트 교육 체제가 8~90년대 이후로 공고화되고 부모인 586세대의 계층화와 함께 자녀인 2030 역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속에서 2030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기에, 투쟁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2030의 투쟁적인 성격은 정보화로 인해 SNS가 발달하며 더욱더 발전되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각자 속한 영역적 한계 속에서 경쟁을 해왔다면, 디지털 시대로 전환된 이후 인터넷 세상 안에서 마주친 모든 사람이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현 2030은 온/오프라인에서 쉴 새 없이 경쟁해야 하는 현실을 살아내어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계속되는 경쟁 속에서 실패한 2030들은 엄청난 열등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러한 감정이 축적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2030들은 비록 작은 부분일지라도 본인의 노력이 아닌 권력과 부에 기반한 부정한 방법과 방식으로 누군가가 어떤 목표를 성취할 경우, 이를 매우 부당하게 여기며 격하게 분노하게 된 것이다. 반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는 ‘실력있는 자’로 규정하며 인정하고 동경하기까지 한다.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철저히 적자생존해야 했던 2030들로서는 공정한 경쟁을 소리높이 외쳐야 나름의 공정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므로 투쟁적인 성격이 발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 때문에 2030은 투쟁적으로 모든 사람과 상황을 인식하는 이준석 대표와 결코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국가에서 사회적 약자나 특정 집단에게 부여하는 기회를 특혜로 인식하여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2030에게, 특히 이대녀들(20대 여성)에게서 군대나 여성할당제 등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여기는 상당수의 이대남들(20대 남성)에게 이준석이란 인물은 속 시원한 ‘사이다’인 것이다. 바로 이 대표가 자신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대남들도 극한 경쟁의 현실을 비판하고,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을 꾀하는 이 대표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투쟁적’인 그의 말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표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실력 있는 자들을 위한’ 공정과 경쟁이라는 점이 2030이 분명히 알아야 할 ‘실체적 진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최소한의 기회를 부여받아야 할 대다수의 2030을 위함이 아니란 것이다.

이 대표 본인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진 자’로서 승리한 인물이기에, 대다수의 ‘없는’ 2030이 겪는 불평등한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대표는 젊은 세대의 ‘투쟁’을 대변하는 것이지, 2030이 국가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어려운 현실에 대한 ‘보호와 최소한의 기회 제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대표가 2030같은 젊은 세대를, 그 중에서도 특히, 이대남들이 자신들을 대변하리라 보는 것은 소망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선의의 공동체적 가치를 무너뜨리면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허울 속에서 각자도생의 사회를 향해 더 극단적으로 몰아가려는 이 대표와 같은 인물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제 2030들은 무엇보다 이 대표의 선택적 공정에 대한 투쟁적인 성격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고, 진정으로 2030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대변해 줄 수 새로운 정치 세력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부디 2030이 투쟁적 성격을 극복하고 바른 시각을 가져 정의와 공정, 그리고 상식이 일반화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이인애/통일비 내리는날 교육팀장
이인애/통일비 내리는날 교육팀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