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기 하심(屈己下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자기 자신을 굽히고 마음을 겸손하게 갖는 것입니다.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고 늘 부족하다고 겸손해 하면서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높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채근담(菜根譚)>에 심덕승명(心德勝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마음에 덕을 쌓으면 운명도 바꿀 수 있다.’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이지요.
우리가 덕을 베풀지 않고 어찌 좋은 사람들이 인연을 맺으려 할 것이며, 어찌 행운이 찾아 들 것이고, 어찌 복과 운이 찾아올까요?
옛날 신라 시대 자장율사(慈藏律師 : 590∼658)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이 고승이 관세음보살을 꼭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백일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9일 째 되는 날, 얼굴이 사납게 생기고, 한쪽 눈과 한쪽 팔,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 거지 같은 꼴을 하고 도량에 들어와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요.
“이놈 자장 너 있느냐? 얼른 나와 봐라.”라며 큰소리를 지릅니다. 이에 상좌들과 불목하니가 말리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큰 스님께서는 지금 기도 중이시니 내일 오십시오.” 사정 사정하고 달래느라 조용하던 도량(道場)이 순식간에 야단법석 난리가 났습니다.
이때 기도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가던 자장율사가 점잖게 말합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내일 다시 오시오” 하며 자신의 방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그 거지가 소리소리 지릅니다.
“네 이놈 자장아! 이 교만하고 건방진 중놈아! 네놈이 나를 보자고 백일 동안 청해 놓고 내 몰골이 이렇다고 나를 피해? 네가 이러고도 중 질을 한다고?”라고, 큰소리로 비웃으며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 버렸습니다.
순간 자장율사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나를 찾아온 관세음보살을 외모만 보고 자신도 모르게 젖어 든 교만하고 편협한 선입견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잣대 질 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바랑 하나만 어깨에 메고 스스로 구도의 길을 떠나게 되었지요.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자신의 수호 천사와 보살을 못 알아보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일까요?
첫째, 사람을 잘 분별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잘 분별하여 가려 사귀지 못하고, 덕이 부족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클 수가 있습니다.
둘째, 문제는 내 안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즉, 나에게 문제가 있으면 우선 그것부터 고치는 것입니다.
셋째, 성공은 환한 대낮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꾸준히 노력해 경험과 지혜(智慧)가 쌓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슬그머니 곁에 다가와 미소 짓는 것이 성공입니다.
넷째, 심신(心身)의 건강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성공은 거의 없습니다. 저처럼 건강엔 자신이 있다고 천하를 뛰어다닌 사람도 결국 다리에 문제가 생겨, 이제는 뛰어다니며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곧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공덕은 눈곱 만치도 짓지 못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상대가 아무리 저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이라도, 분명 저보다 잘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겸양이 모든 미덕의 근본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것을 시켜도 되겠지, 이 사람은 이 정도는 이해하겠지, 이 사람은 이 정도는 서운하지 않겠지, 이 사람은 이 정도는 빼앗아도 되겠지, 이 사람은 이 정도는 없어져도 모르겠지, 이 사람은 이 정도 속여도 모르겠지, 하지만 세상에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습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며, 보듬어 주는 보살과 수호 천사를 이렇게 버려서는 안 됩니다.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 라는 하심(下心)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 좋은 운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덕(德)이라고 부르고, 겸양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얻으려고 만 하지 마라, 기대려고 만 하지 마라, 기만하고 속이려고 하지 마라, 횡재나 요행을 바라지 마라,’ 하늘에 뭔 가를 간구(懇求)하고 갈망(渴望)할 때는, 나는 이웃을 위해, 세상을 위해, 하늘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려고 노력하였는가? 또한 나는 누군 가의 뜨거운 감동이었는 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통장 속에 잔액은 쓰면 쓸수록 비어져 가지만, 덕과 운은 나누면 나눌수록, 베풀면 베풀수록 커지고 쌓여가는 법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이고, 도리이며, 인류 애가 아닐까요?
우리 곁에 좋은 도반(道伴) 동지(同志), 좋은 친구는 곁에만 있어도 향기가 납니다. 우리 굴기 하심으로 말 한마디라도 세상을 빛내는 언행(言行)을 하면 어떨까요!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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