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민경 수습기자, 사진 FIBA, 전일본고등학교체육협회 공식 홈페이지]= 코로나19로 일정이 연기, 취소되었던 국제 스포츠 대회가 정상적으로 개최되기 시작하며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오랜만에 매우 바쁜 상반기를 보냈다. 특히 여자대표팀은 VNL(배구), 월드컵(축구) 등 각 종목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회와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는 아시아컵(농구) 등이 잇달아 열리며 기대도 부담도 가득했던 2023 상반기를 마쳤다. 그러나 그 성적표는 다소 아쉬웠다. 여자배구대표팀은 VNL 전패,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다. 여자농구는 아시아컵 창설 이래 최초의 4강 진출 실패라는 쓰디쓴 결과에 프랑스 올림픽 진출이 좌절됐다. 여자축구는 마지막 경기 세계랭킹 2위 독일에 비기며 승점 1점을 기록,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두 대회 연속 0승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세대교체 실패?

세 종목은 모두 ‘세대교체’의 숙제를 안고 있었다. 여자배구는 김연경, 양효진 등 황금세대가 도쿄올림픽 이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도쿄올림픽에서 4강이라는 성과를 냈던 여자배구 대표팀의 국제대회 성적은 황금 세대 은퇴 직후 추락했다. 2022년, 2023년 연속 VNL 전패라는 기록 속에 세계랭킹도 함께 곤두박질쳤다. 도쿄올림픽 당시 14위였던 세계랭킹은 2023년 현재 34위까지 떨어졌다(2023년 7월 기준). 이제는 올림픽 출전을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자축구대표팀 역시 2023 월드컵이 지소연, 조소현 등 황금세대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 속, 많은 관심을 받으며 호주로 출국했다. ‘고강도’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체력과 몸싸움에 방점을 찍은 여자축구대표팀의 평균연령은 28.9세였다. 이는 출전국 32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케이시(07년생), 천가람(02년생) 등 젊은 선수들이 독일전에서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희망을 남겼지만, 황금세대의 존재감을 대체할 다음 선수로 충분한가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여자농구는 아시아컵에서 김단비(90년생), 강이슬(94년생), 박지수(98년생) 등 주요 선수 쏠림 현상과 이로 인한 후반부 체력 저하 문제를 노출했다. 1차전 뉴질랜드전의 64점 중 50점이 세 선수의 득점이다. 3차전 중국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 패배한 뒤 4강 진출 플레이오프인 오스트레일리아전에서 27점 차로 대패한 데에는 주요 선수들의 체력 문제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하이파이브 하는 강이슬(좌)과 박지수(우). 사진 FIBA
하이파이브 하는 강이슬(좌)과 박지수(우). 사진 FIBA

교체할 유망주가 없다

여성 구기종목은 이미 중, 고, 대학부에서 세계적 수준과 격차를 보이고 있다. 여자배구는 U19에서 2015년 13위, 2017년 11위, 2018년 13위 (24팀 중)을 기록했다. 여자축구는 9차례 개최된 U-20 월드컵에 6번 진출해 매 대회 최소 1승 이상은 기록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2010년 지소연 세대가 3위라는 성적을 낸 이후 최근 세 대회에서는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거나 월드컵 진출 자체에 실패했다(2016년 조별리그 탈락, 2018년 월드컵 진출 실패, 2022년 조별리그 탈락). 여자농구 역시 U20에서 2021년 13위, 2019년 9위, 2017년 15위를 기록했다(16팀 중). 2023년에는 대회 진출 자체에 실패했다. 

질적 격차 외에 양적 격차도 심각하다. 세 종목은 모두 고질적인 선수 수급 문제를 겪고 있다. 2023년 대한배구협회에 정식 등록된 여자배구 고등부 팀은 18팀으로 남자부보다 5팀 적다. 특이한 것은 대학부다. 여자 대학부 팀은 6곳으로 15곳이 등록된 남자부의 1/3 수준인데 이는 여자부 규정상 대학 선수는 프로 드래프트 참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자부 드래프트 규약에는 드래프트 자격이 있는 선수를 ‘해당 연도 시즌 개막전에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선수로서 드래프트를 신청한 선수’로 명시하고 있다. 규정으로 대학 선수의 드래프트 참가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는 야구, 축구, 농구의 남녀부를 통틀어 여자배구가 유일하다. 

여자축구는 남녀 선수의 양적 차이가 특히 심각하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여자 초등부 축구부는 17곳으로, 남자 초등부의 4% 수준이다. 2023년 기준 한국고등학교축구연맹에 등록된 남자 고등부 팀은 클럽팀과 학원팀을 합쳐 200곳이 넘는다. 여자축구 고등부는 등록 팀을 공시한 자료가 없어 그 수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023년 대회 중 가장 많은 팀이 참가한 제22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의 고등부 참가팀이 13팀에 불과하다. (클럽팀 1곳, 학원팀 12곳)

여자농구도 그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22년 기준 전국 고등학교 여자부 팀은 19개다. 정원 12명을 채우는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다. 최소 인원인 선수 5명으로 겨우 팀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도 두 곳이나 된다. 선수가 10명이 넘는 학교도 전국에 단 세 곳뿐이다. 고등부 클럽팀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부 클럽팀은 초등부 네 곳이 전부인데, 네 팀 모두 선수가 9명 미만이다. 여자 대학부는 6팀으로, 남자 대학 1부의 절반 수준이다.

국내-세계 간 여자 유소년 선수의 질적, 양적 격차는 세대교체를 논하기 전 교체할 유망주 자체가 심각하게 부족한 여성 스포츠의 현실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허리가 ‘실종’된 상태인 것이다. 

100 또는 0… 엘리트 중심의 학원 스포츠, 사라지는 팀

대한민국의 학원스포츠는 흔히 '엘리트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직업 운동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직업 운동선수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말 그대로 '바늘구멍'을 뚫어야 가능하다. 이런 리스크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하에 엘리트스포츠에 도전하는 학생 선수들은 점점 줄어든다. 전문적인 재능이 있어도 '운동은 어디까지나 취미'라고 선을 그어두고 학교 운동부를 탈퇴하고 사설 체육학원의 취미반으로 눈을 돌린다. 그렇게 선수 수급이 안 되는 학교 운동부는 해체된다. 여기서 악순환이 발생한다. 학교 운동부가 줄어들며 전문적인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줄어들고 이는 결국 "운동하면 뭐 먹고 사냐?"는 질문을 촉발한다. 지도자, 운동부 프런트 등 직업 운동선수 외에도 학생 운동선수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미래 선택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상급 학교, 특히 대학부의 여자팀이 부족한 것도 학생 선수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직업 운동선수를 하지 않게 되어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할 때 최종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인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규정상 ‘드래프트 재수’가 불가능한 여자배구선수들이 이와 같은 문제에 자주 부딪힌다. 바로 프로에 데뷔하지 못하면 실업팀에 입단해 콜업을 기다리거나 대학에 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훈련한 선수의 능력을 살려 진학할 수 있는, 배구부를 보유한 대학이 거의 없다. 드래프트 일정이 대학의 수시 원서접수 시기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 (9월 초순) 드래프트와 대학 입시를 동시에 준비하는 것도 힘들다. 

'문무양도'강조하는 일본 학원스포츠... 엘리트 선수와 취미 선수가 함께 활동

여성 스포츠 경쟁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과 대비되는 국가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세 종목에서 가까운 나라 일본은 모두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일본 여자배구는 VNL에서 8강에 진출했고 (8강서 랭킹 1위 미국에 패배) 여자축구 월드컵에서는 8강까지 진출했다. 조별예선에서는 우승팀인 스페인을 4:0으로 격파했다. 여자농구는 아시아컵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며 은메달을 획득한 지난 올림픽에 이어 파리올림픽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일본은 학창 시절의 동아리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아리 경험을 대학 입시와 취업 면접에서 학생 인성을 판단하기 위한 주요 기준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어 동아리가 단순한 취미 생활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 2017년 기준 중학생의 91.9%, 고등학생의 81%가 동아리에 소속돼 있다. 이 중 운동부는 중학생이 70.6%, 고등학생이 52.7%이다. 도쿄대와 교육 기업 베네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여자 고등학생의 30.2%가 운동부 소속이다. 동아리 수준 또한 결코 낮지 않다. 운동부 학생들은 대부분 ‘전국고등학교종합체육대회’ 참가를 학교생활의 로망으로 생각한다. 이는 통칭 ‘인터하이’로 불리며 일본의 스포츠 만화 주요 소재로 흔히 사용된다. 인터하이에서는 전문선수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사립학교와 운동을 취미로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학교가 구분 없이 경쟁한다. 취미 선수와 엘리트 선수의 구분은 없다. 그 때문에 정식 등록된 팀과 선수의 수가 한국과 비교 불가능하다. 

2022 인터하이 공식 포스터, 사진 일본 전국고등학교체육연맹
2022 인터하이 공식 포스터, 사진 일본 전국고등학교체육연맹

일본 전국고등학교체육연맹의 공시에 따르면 2019년 인터하이 출전을 위해 정식 등록한 운동부와 선수는 여자 농구부 3,891개교 56,132명, 여자 배구부 3,852개교 57,103명, 여자 축구부 667개교 10,991명이다. 이렇게 취미 선수와 엘리트 선수의 경계가 흐린 환경에서 취미 선수 위주의 팀이 엘리트 선수 위주의 팀에 승리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2007년 야구 ‘사가키타의 기적’이 대표적이다. 엘리트 선수와 취미 선수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엘리트 선수도 일반 학생처럼 학교 수업에 정상적으로 참여하고, 취미 선수도 정기적으로 훈련에 참가한다. 때문에 프로에 지명되지 않은 엘리트 선수가 일반 입시로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하는 것, 취미 선수로 활동했으나 대회에서 좋은 기량을 보여준 선수가 프로에 깜짝 지명되거나 대학교에 체육 특기생으로 진학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 저학년 취미 선수가 좋은 기량을 보이면 엘리트 선수를 주로 육성하는 학교에서 스카우트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인터하이는 단순한 동아리 체육대회 이상의 관심을 받는다. 학창 시절 동아리를 통해 선수들의 간절함과 노력을 직접 경험한 졸업생들이 학원스포츠에 큰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직접 스포츠를 경험한 사람들이 학원스포츠, 더 나아가 프로스포츠의 팬이 되는 선순환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인터하이의 결승전은 입장권이 유료로 판매됨에도 매진되는 일이 흔하다. 학원 스포츠 최고의 인기 종목인 야구의 인터하이격인 ‘고시엔’이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었을 때 발생한 경제적 손실이 7,67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일본 학원스포츠의 핵심은 취미 선수와 엘리트 선수가 함께 활동함으로써 스포츠 인구 자체가 방대하다는 점에 있다. 이는 스포츠 산업 자체의 풀을 키워 체육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를 다양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 운동에만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구조가 아니라, 학업과 운동의 균형을 추구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부상, 기량 문제 등으로 선수가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처해도 ‘플랜B’를 보다 쉽게 세울 수 있다. 

지금은 학원스포츠 적극 육성을 통해 스포츠의 '코어근육'을 만들어야 할 때

'허리'가 실종된 현 상황이 유지된다면 대한민국 스포츠의 국제경쟁력 상실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장기적인 대한민국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서는 학원스포츠 적극육성을 통해 스포츠의 '코어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학생 선수들이 운동에만 'All in' 해야 하고, 이에 따라 진로 선택지가 좁고 리스크가 큰 현 상황은 스포츠 진입장벽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누군가는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이라는 명목하에 형성된 훈련 부족 기조가 국제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선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성 구기종목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 주장이다. 훈련할 선수가 없는데, 훈련을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오도한 것이다. 즉각적인 스타 발굴보다는 스포츠 친화적인 문화 확립을 통한 스포츠 인구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 스포츠 인구가 늘어나 스포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질 때 재능있는 유망주도 더 많이 발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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