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난다. 정치인은 말로 비전을 제시한다. 그 비전이 국민 마음을 움직인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정치인은 ‘자신의 언어’를 갖는 게 일반적이다. 그 언어에는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팬덤이 정치를 지배하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잦아졌다. 팬덤의 주인공은 정치인이 아니다. 팬덤의 일원이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오직 좋고 싫음만이 그들의 관심이다. 일부 정치인은 대중의 심리에서 벗어났다. 팬덤에 포위됐다. 팬덤의 영향력은 감정적이고 파괴적이다. 좋아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후원금을 보낸다. 한발 더 나아가 정당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당원이 됐다. 당 운영에도 개입한다. 그들에게 잘못 보이면 정치생명이 끊기는 아픔을 맛봐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인은 팬덤에게 고양이 앞에 쥐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갖은 감언이설을 쏟아낸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다. 거기다가 귀를 의심케 하는 막말과 험담도 불사한다. 대통령 탄핵 발언이 일상이 됐다. 대통령이 장관의 호칭을 생략하기도 한다. 재판 중인 야당 대표를 죄인 취급한다. 거기에 대해 팬덤의 칭찬과 찬사 그리고 환호와 박수가 폭발한다.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 팬덤의 칭찬, 찬사, 박수, 환호는 팬덤정치의 덫이다. 뇌관이 팬덤의 심리라면 막말은 폭약을 터지게 하는 불이다.

팬덤정치의 덫에 걸려 막말 구설수로 수모를 겪은 정치인은 의외로 많다. 막말과 악담 퍼레이드가 이어지고 있다. 막말이 돌림병이 됐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팬덤정치에 ‘더 길든’ 민주당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언론에서 회자 되는 김은경 전 혁신위원장, 최강욱 전 의원, 송영길 전 대표(탈당) 등이 대표적 사례다. 김은경 전 위원장은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젊은이들과) 똑같이 표결하느냐”고 말했다. 노인의 표결권을 제한하겠다는 초헌법적 발상이었다. 송 전 대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해 ‘어린놈’, ‘건방진 놈’이라고 비방했다. 전형적인 ‘라데’ 어법이다. 최강욱 전 의원은 김건희 여사를 향해 ‘설치는 암컷’이라고 비하했다. 특정인에 대해 분노, 혐오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노인, 청년, 여성을 비하하는, 일명 ‘막말 3종 세트’ 사례다. 그들 발언의 맥락을 하나하나 따져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치인 말의 품격은 어디 갔는가. 국민의 명예와 자존심은 어디에 갔는가. ‘정치인의 수준이 저 정도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군중심리》의 저자인 구스타브 리본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개인이 집단에 속하게 되면 개성은 사라지고 집단의 사상이 그를 지배한다. 집단의 행위는 이의가 없으며 감정적이고 지능이 낮다”라고 말했다.

아니 ‘낮은 지능’이라는 비난도 감수하는 듯하다.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 전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을 내렸다. 사안이 중대하다면서 당 윤리심판원의 판단을 거치지 않았다. 최고위가 비상 징계를 한 것이다. 실효성 여부는 따지지 말자. 최 전 의원의 징계에 대한 반응이 가관이다. “이게 민주주의야, 멍청이야”라는 게 그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조롱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당 지도부의 결정에 대해서도 수긍하지 않는 최 전 의원을 편을 드는 정치인이 속출하고 있다. 팬덤 눈치를 보면서 숟가락 얻기를 시도하는 셈이다. 거기에 팬덤도 호응하고 있다. 팬덤의 댓글에는 “암컷이 아니면 여성님이라고 해야 하나”, “조국, 추미애, 김남국 버리더니, 이제 최강욱이도 버리느냐”와 같은 비아냥이 도배하고 있다. 팬덤이 문제의 정치인에 대한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일련의 전개는 팬덤의 긍정적 에너지를 축소한다. 해당 정치인을 통해 지향성과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긍정적 취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팬덤 정치문화의 부작용을 여실히 드러냈다. 팬덤정치는 진영논리에 기반한다. 진영논리의 핵심은 적대 정치다. 경쟁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해야 팬덤의 지지는 높아진다. 막말, 악담, 비난과 야유, 모욕주기가 횡행하는 이유다. 팬덤은 상대방을 제압하는 정치인에게 쾌감을 느낀다. 이 같은 동질감이 팬덤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일체화된다. 팬덤의 결속은 강화된다. 그게 바로 정치의 양극화로 가는 길이다. 양극화된 정치는 분노의 정치다. 분노의 공간에는 증오의 언어, 갈등을 빚는 비판, 적대적 감정밖에 없다. 결국 정치인의 말이 정치의 양극화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셈이다. 그만이 아니다. 정치인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맹신하는 팬덤 지지는 맹목성을 띤다. 맹목성은 정치의 역할 공간을 축소한다. 맹목적 찬성 혹은 지지는 정책적 에너지가 될 수 없다. 비판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은 부드럽고 아름다워야 한다. 온기가 있어야 한다.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말에 무게와 힘이 생긴다. 정치인은 갈등의 중재자이자 조정자다. 정치인은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직업인이다. 조정 능력은 말이 격조에서 나온다. 품위 잃은 정략적 언사는 적대와 분열을 증폭한다. 막말하는 정치인이 조정자와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있겠는가. 존중과 절제, 인정의 말은 협력과 연대를 확대한다. 협력과 연대 없다면 민주주의는 활기를 잃는다. 숱한 희생과 고난을 겪고 일군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은 더 이상하지 않길 바란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미시간 졸업 축사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정독을 부탁한다. 막말이 왜 위험하지를 갈파한 연설이었다.

“‘사회주의자’나 ‘소련과 같은 통치’, ‘파시스트’, 혹은 ‘우파 꼴통’과 같은 말들을 던지는 것은, 우리 정부와 정치적 반대자들을 독재 정권 내지는 살인 정권에 비유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중략> 진정한 문제는 이런 종류의 비방이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막아버린다는 데 있다. 민주적 토의를 허약하게 만든다. 서로에 대해 배우는 것을 막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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