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한겨울 깊은 밤의 야식 때만 그런 게 아니다. 누군가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 한 젓가락이라도 뺏어 먹고 싶어진다. 식욕을 돋우는 특유의 냄새, 팔팔 끓는 양은 냄비에 파마머리를 한 쫄깃하고 탱탱한 노란 면발,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 먹는 소리만 들어도 군침이 돈다. 거기다가 값도 싸다. 요리도 간단하다. 라면은 입안의 행복을 주는 야릇한 음식이다.

제주 한국 라면집(좌측)과 일본 라멘집(우측) 모습
제주 한국 라면집(좌측)과 일본 라멘집(우측) 모습

한국 라면이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라면이 K-푸드 선봉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인의 한국의 라면에 흠뻑 빠졌음은 숫자가 입증한다. 올 10월까지 1조 원 넘게 해외시장에서 팔렸다. 지난해 동기 대비 24.7% 늘었단다. 해외 공장 생산까지 포함하면 국내 라면 수출 규모는 2조 원가량이란다. 한국 라면을 수입한 나라는 128개국이나 된다. 지난 20일 발표한 관세청 무역통계 자료에서 옮긴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 영향으로 ‘즉석요리’의 수요가 폭발한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여기다가 K-컬쳐의 인기에 편승, 한국 라면에 세계적 관심이 커진 것도 한몫했다. 컵라면을 즐기는 BTS의 영상 노출, 2020년 미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기생충’에서의 ‘짜파게티’도 한국 라면에 대한 호기심을 높였다.

한국 라면이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오늘날 한국 인스턴트 라면은 한·중·일 삼국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일본에서 ‘발명’됐다. 그게 바로 ‘낫싱 치킨라멘’이다. 당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의 상처에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식량난이 극심했다. 미국의 밀가루 원조를 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식량 대체재로 개발한 게 낫싱 치킨라멘이다.

한국라면(좌측)과 일본라멘(우측)
한국라면(좌측)과 일본라멘(우측)

일본 라면 즉 라멘은 중국의 라미엔((拉麵)을 일본화한 것이다. 라미엔은 밀반죽을 손으로 잡아서 늘린 국수, 즉 수타면이다. 라미엔 반죽에 소금 성분의 용액인 간수를 섞어 만든 면을 일본에서는 모두 ‘라멘’이라고 한다. 이 라멘을 튀긴 게 바로 인스턴트 라멘이다. 인스턴트 라멘을 착안한 사람은 안도 모모후쿠다. 일본 ‘덴뿌라’ 혹은 중국 마른국수 튀김에서 발상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밀가루 면을 증기로 익힌 뒤 기름에 튀겼다. 익힌 면발에는 수분이 남지 않는다. 장기 보관이 가능한 이유다. 그것을 다시 물에 끓이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원리를 적용했다. 인스턴트 라면 탄생의 비밀이다.

라면의 탄생은 세계를 바꾼 하나의 사건이다. 세계의 식문화를 바꿨다. 지난 20일 영국 매체 가디언은 지난해 세계 50여 개국에서 1,212억 그릇의 인스턴트 라면을 먹었다고 보도했다. 1984년에 영국문화원에서 지난 80년 동안 세계를 바꾼 80대 사건을 뽑았다. 음식 중에 유일하게 라면이 꼽혔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인스턴트 식품 어떤 경로와 과정을 통해 도입된 것일까. 꼭 60년 전인 1963년 일이다. 당시 한국인의 삶은 비참했다. 끼니를 걱정하면 살았다. 삼양식품의 창업자인 고 전중윤 회장은 싸고 쉽게 살 수 있는 일본 라멘을 떠올렸다. 하지만 일본 회사는 배타적이었다. 제면기 가격을 터무니없이 요구했다. 6만 달러였습니다. 당시 미국이 한국에 준 경제원조 규모가 10만 달러다. 전 전 회장은 당시 일본은 일본에 건너가 묘조(明星)식품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과 단판을 벌였다. 한국과 일본은 곧 가까운 이웃이 될 것임을 호소했다. 결국 제면기를 2만7,000달러에 샀다. 특히 당시 묘조식품의 비밀병기라고 할 수 있는 건조 수프 기술도 배워왔다. 드디어 1963년에 삼양라면이 출시됐다. 당시 라면 한 봉지에 10원이었다. 꽤 비싼 편이다.

혹시 일부 독자는 이런 질문을 할지 모르겠다. “안도가 발명하고 닛산식품이 생산한 라멘 기술을 묘조식품에서 도입한 것이냐”고. 그렇다. 인스터트 라멘을 식량의 대체품으로 여긴 안도는 기술특허를 내지 않았다. 사업 장벽을 제거한 것이다. 식량난 해소를 위한 결정이었다.

한국에 도입된 라면은 일본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정부의 혼식 장려 운동과 맞물리면서 급속도로 소비가 확산했다. 인스턴트 라면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하면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2022년에 1인당 73개를 소비했다. 베트남 87개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럼 한국인이 라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는 맛이다. 라면이 중국 라이멘을 베이스로 한다. 일본으로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인스턴트 라면 맛은 큰 차이가 난다. 중국의 인스턴트 라면은 소고기 국물을 기초로 하는 게 특징이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중국 음식문화에 비쳐 보면 상당이 특이하다. ‘새로운 맛’으로 승부를 건 것이다. 돼지고기 국물 대신 소고기 국물로 맛을 냈다. 일종의 ‘우육면’을 변형한 라면을 만든 셈이다. 그게 먹혔다. 중국에서는 소고기 국물 라면이 대세다.

일본은 인스턴트 라면보다 생면을 끓인 라멘을 선호한다.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미소라멘, 돼지고기 국물로 만든 돈코츠라멘이다. 지역마다 라멘이 특화되어서 굵기, 꼬불거림, 탄력에 따라 그 종류만도 수백 가지가 넘는다. 심지어 라멘이 향토 음식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일본에서는 얼마나 많은 ‘지역특산 라면’을 먹어봤느냐가 식도락의 기준이다. 심지어 라멘 투어 택시가 있다. 라멘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본의 국민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술 먹은 뒷날은 해장음식으로 첫손에 꼽는 게 라멘이다.

일본 인스턴트 라멘은 우리 것보다 훨씬 덜 꼬불꼬불한 게 특징이다. 라면이 꼬불꼬불한 데는 이유가 있다. 뜨거운 물이 닿은 면적을 넓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면이 빨리 익는다. 마치 에어컨 라디에이터에 관을 구부려 놓는 것과 같은 원리다. 꼬불꼬불한 정도는 일종의 기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인스턴트 라면만을 라면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다양한 조리법을 활용해 라면의 다양한 맛을 내고 있다. 급기야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에 소개된 ‘짜파구리’라는 새로운 음식을 탄생하게 됐다.

짜파구리는 인스턴트 짜장면, 짜파게티와 봉지라면, 너구리를 섞어서 함께 요리하면 한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여기에 소고기를 넣어 ‘강남 짜파구리’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문화는 유행을 만든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이튿날 11개 국어로 짜파구리 조리법이 유튜브에 공개됐다고 한다. 미국 뉴욕의 한 유명식당에서는 한정판으로 기생충에서 보여준 조리법으로 만든 짜파구리를 판매했단다. 몇 년이 지났지만 전 세계에 짜파구리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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