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각한 수준이다. 2024학년도 대학 수시모집 결과, 서울대 등 주요 10개 대학 의대 평균 경쟁률은 45.6대 1이었다. 지난해 의대 경쟁률 44.7대 1 보다 더 올라갔다. 반면 반도체 등 첨단학과 경쟁률은 16.5대1에 그쳤다. 의대를 뺀 이과대 평균 19.2대1 보다도 낮다. 반도체학과 평균 경쟁률이 의대를 뺀 이과대 평균에도 못 미친 기형적인 참담한 수준이다. 의대가 블랙홀처럼 인재를 빨아들이면서 기초과학과 첨단 분야 인력 공급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올해 첨단학과 정원을 1829명 늘렸지만 의대 쏠림을 막지는 못했다. 2023학년도 서울대 이공계열 정시 합격 점수는 사상 처음으로 고대·연대에 역전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가기위해 다른 대학을 선택한 결과로 보인다. 기껏 신설해 유치한 첨단학과 학생들도 1~2년 뒤면 의대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의대 논술 경쟁률이 최고 660대1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의대 쏠림이 아니라 ‘의대 블랙홀’ ‘의대 광풍’인 셈이다.

지난해 입시에서 ‘SKY’ 대학 정시 합격자 10명 중 3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연세대와 한양대 반도체 관련 학과는 1차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부분 의대로 몰려간 것으로 보인다. KAIST를 포함해 국가 지원을 받는 5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에서 최근 5년간 1105명이 자퇴했는데, 이들 역시 상당수가 의대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고려대 의대가 수시 모집에서 62명 모집에 8명이 미등록으로 인원을 채우지 못하는 이변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고대 의대 미달 사태가 이례적인 현상이지만, 고대 의대에 합격하고도 더 좋은 상위권 의대에 동시에 합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다. 의대는 학교 이름보다는 연계 병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서울대학교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을 보유한 서울대, 연세대는 의대 입시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 소위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삼성서울병원, 가톨릭중앙의료원, 서울아산병원과 연계된 성균관대, 가톨릭대, 울산대 의대가 ‘의대 빅5′로 여겨진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최상위권 이공계 대학에 합격해도 수시나 정시에서 의대에 복수 합격하여 빠져 나가는 인원이 상당하다. 이과학생이 늘어나고 있지만 상위권 학생들은 상당수 의대 진학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의대 입학을 위해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 공대를 중퇴하는 학생도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자퇴생은 1874명으로 이 중 76%가 이과생이었다. 대다수가 반수 재수를 통해 의약학 계열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킬러 문항 배제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의 변별력이 크게 낮아진 올해 이공계 탈출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한국 학생들이 의대 입시에 매달리고 있을 동안에 인도의 인재들은 공대 입학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 8월 23일 인도가 개발한 찬드라얀 3호가 세계 최초로 우주개발 강국인 러시아, 일본도 실패한 달 남극에 착륙했다. 더구나 찬드라얀 3호의 개발·발사에 든 비용은 총 7500만달러(약 900억원)이다. 미국 정부가 2021년 달 착륙선 예산으로 항공우주국(NASA)에 배정한 예산 8억5000만달러(약 1조1228억원)의 약 11분의 1이다. 2013년 개봉한 조지 클루니 주연의 우주 재난 영화 ‘그래비티’의 제작비 1억달러에도 못 미친다. 

인도 우주개발 성공 비결 그 중심엔 인도공과대(IIT)가 있다. 바로 IIT 힘이요, 우수한 과학 인재들이 바탕이다. IIT는 인도 국부 네루가 1959년 “굶주림과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설립한 대학이다.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 IBM 대표 아르빈드 크리슈나 등 실리콘밸리 거대기업의 여러 수장을 배출한 공대다.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엄존한 인도에서 IIT 입학은 곧 바로 신분 탈출구다. 입학과 동시에 신분의 상승에 들어선다. 고액 연봉과 꿈에 그리던 글로벌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린다. 매년 고3과 재수생을 포함, 2400만여 명의 수험생 가운데 최고의 인재 1만6000명만 입학한다. 2차 최종 시험과목은 수학, 화학, 물리 단 3개다. 1차 시험을 통과해야 볼 수 있는 2차 시험 응시 기회는 평생 단 두 번만 주어진다.

IIT 한 해 졸업생 1만6000명 가운데 3000여 명은 정보기술(IT) 분야 인력이다. 인도에서 연간 배출되는 전체 IT 관련 대학 인력 10만 명의 약 3% 비중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저비용 고효율’이 인도 IT산업 경쟁력이 근간이다. 영화 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예산으로 달 남극에 탐사선을 보낸 원동력이다.

국내 반도체에서만 2030년까지 5만 4000명이 부족하다는 진단이 나와 있고, 정부 추산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첨단 분야 인력 수요는 32만 명이다. 그러나 국내 인재들은 해외 기업들이 스카우트 해 가고 뒤를 이을 후배 세대는 첨단 분야보다는 우선 안정된 수입의 의대 쏠림 현상에 빠져있다. 뿐만 아니라 의대 블랙홀 안에서조차 피부과·성형외과 등 또 다른 블랙홀이 존재하고 있는 현상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학과만이라도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디지털 절벽과 인재 편중에 대비해야 한다. 의대 정원도 크게 늘려 인재 쏠림 현상을 막아야 한다. 인도 등 다른 나라 우수 인재들이 우주와 실리콘밸리의 CEO를 꿈꿀 때 우리 인재들은 병원 진료실에 갇혀 안주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해 질뿐이다.  

최충웅 언론학 박사
최충웅 언론학 박사

기술 강국 만든다는데, 우수학생은 의대로 쏠려 의대 광풍으로 인한 인재 양성의 불균형은 국가 경쟁력에 막대한 악영향을 초래한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을 끌고 갈 경쟁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심각한 인적 자원 왜곡과 대한민국 성장동력 훼손으로 이대론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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