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을 쓰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
치매 전문의인 김희진 한양의대 교수가 건강서 한 권을 출간했다.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앵글북스)이 그것이다. 치매 치료를 위한 의학적 처치와 함께 인지 기능을 높임으로써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식단과 식사법 등을 제시했다. 그중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천천히 젓가락으로 식사하기’다.

젓가락 식사를 권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많았다. 젓가락을 사용하면,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보다 느리게 밥을 먹게 된다. 식사를 시작한 뒤 약 15분경부터 식사가 주는 만족감을 느낀다. 이때부터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 렙틴이 분비된다. 천천히 먹어야 과식과 폭식을 막을 수 있는 이유다. 과식과 포식이 원인인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숟가락을 이용하면 국물에 손이 자주 가게 된다. 건더기 위주로 먹게 되는 젓가락질이 나트륨 과다 섭취를 줄인다.
젓가락질이 뇌 운동을 활성화한다. 젓가락질할 때 30여 개 손, 팔 관절과 60여 개의 근육이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뇌를 자극한다. 뇌의 운동 피질을 활성화한다. 그만이 아니다. 집중력과 근육 조절 능력, 감성지수도 높여준다. 이를 통해 치매 예방은 물론 어린이의 두뇌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단다.
그렇다면 젓가락을 쓰는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 천천히 식사한다면 행복이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생각보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30%에 불과하다. 한·중·일 등 동북아시아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젓가락을 사용한다. 대체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다. 포크를 사용하는 인구도 30%다. 손가락을 식사 도구로 사용하는 인구도 40%나 된다.
젓가락질은 치매 예방과 두뇌 발달에 큰 도움
그럼 젓가락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그 역사는 유구하다. 무려 3,000년~5000년 전,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제례 혹은 조리용 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식사 도구로는 한나라 때부터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스승이던 장량이 유비가 밥을 먹던 젓가락으로 그림을 그려 정국을 설명했다는 기록 <사기>에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도 청동기시대부터 젓가락이 숟가락과 함께 사용됐다.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제 젓가락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 유래로 지금도 금속제 젓가락을 많이 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기원전 3세기경 중국으로부터 벼농사와 함께 젓가락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서양의 식사 도구인 포크는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일반적으로 사용됐다. 우리가 잘 아는 수학자 파스칼로 밥을 먹다가 손가락을 깨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가 17세기 사람이니깐 그때까지도 가정집에서는 포크 대신 손가락 식사를 했다는 얘기다.

사실상 젓가락은 한·중·일 공통 문화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젓가락과 일본 바시(箸), 중국 콰이즈(筷子)는 닮은 듯 다르다. 제각각의 문화적 특징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각 민족의 식문화에 적응하면서 차이를 낳은 것이다. 특히 음식 재료와 식사 방법의 차이도 젓가락 사용법이 달라진 이유로 꼽힌다.
우선 세 나라 젓가락 길이가 다르다. 식사 방법이 만든 차이다. 중국 젓가락은 우리보다 길고 일본 젓가락은 우리보다 짧다. 중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오대동당(五代同黨)이라고 한다. 5대 가족이 한 상에 모여 식사하는 것을 뜻한다. 당연히 커다란 식탁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음식과 거리가 멀어서 식사가 불편하다. 이런 약점을 보완한 게 좐판이다. 중국 식당에 가면 식탁 위에 돌아가는 원판이 있다. 그것이 좐판이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젓가락이 길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은 식사할 때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 사람은 독상을 받는다. 독상을 ‘치부다이(卓袱台)’라고 한다. ‘독상 식사’를 ‘이치닝마에(一人前)’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한 손으로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밥을 상 위에 놓고 먹으면 가난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그것을 ‘이누구이(犬食い·개처럼 고개를 숙이고 밥)’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밥그릇을 들고 먹으면 식사 예절에서 벗어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처럼 밥그릇을 들고 먹기 때문에 굳이 젓가락이 길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도 불과 50여 년 전에는 독상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처럼 그릇을 들고 먹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의 중간 크기의 젓가락을 쓰게 된 것이다.
식사 방법과 음식 재료에 의해 달라진 젓가락 사용법
젓가락의 굵기도 세 나라가 다르다. 중국 사람은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다. 음식이 쉽게 미끄러진다. 젓가락이 굵고 뭉툭해야 힘을 쓸 수 있다. 일본은 생선회, 생선구이, 채소 절임 등을 즐겨 먹는다. 젓가락이 가늘지 않으면 이런 음식을 집기에 불편하다. 우리 젓가락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 굵기다. 대신 깻잎, 콩자반, 김치같이 굵기와 크기가 다양한 음식을 두루 집기 편하도록 젓가락 끝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나무젓가락을 쓰는 중국과 일본과 달리 쇠젓가락을 쓴다. 쇠젓가락은 재질 자체가 미끄럽다. 나무나 사기 젓가락보다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절묘한 힘 조절이 필요하다. 서양인은 물론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쇠젓가락으로 김치 찢는 것, 깻잎 한 장씩 떼어먹는 것, 묵이나 순두부같이 연한 음식도 집는 걸 보고 감탄할 정도다. 그 때문일까. 한국인의 손재주는 정평이 나 있다.
중국과 일본은 아무 젓가락을 사용한다. 중국은 대나무를, 일본은 삼나무를 애용한다. 중국인이 소비하는 나무젓가락을 충당하기 위해 연간 2,000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 대표적 나무젓가락은 쪼개 쓰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인 와리바시(割箸)다. 와리바시는 에도시대에 만들어졌다. 1657년 대화재로 도쿄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 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그 뒤부터 대형 화재를 ‘도쿄의 꽃’이라고 불렀다. 도시재건 사업에 독신 남성 노동자가 대거 투입됐다. 그들은 식당에서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식당도 원활한 식사와 식사 뒤처리를 위해 머리를 짜냈다. 그 과정에서 와리바시가 탄생했다.
일본과 중국에서 젓가락 장단을 치면 생기는 일은?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하시오키’(箸置き)라는 젓가락 받침대를 사용한다. 하시오키 위에 손잡이 부분이 오른쪽을 향하도록 젓가락을 가로 방향으로 놓는다. 일본인이 젓가락을 가로로 놓는 것은 서양인이 식사할 때 손을 탁자 아래로 내려놓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서양인들은 식사할 때 칼을 사용하기 때문에 손이 보이도록 내놓고 식사하는 것이 예법이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필자의 학창 시절 때까지만 해도 젓가락은 일종의 악기였다. 대폿집에서 젓가락 장단을 치며 노래도 하곤 했다. 젓가락은 비트를 만드는 최고의 악기였다. 그 장단에 맞춰 김민기의 노래를 부르며 카타르시스를 해소했다. 독재정권에 억압받는 민중의 한을 달랬다.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벼락이 떨어진다. 예의 없는 행동으로 여긴다. 중국에는 ‘젓가락 6계명’이라는 게 있다. 젓가락을 들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 지침이다. 젓가락 장단, 젓가락 춤 등이 포함된다. 그런 행동은 거지가 구걸하는 모양과 비슷하다고 여긴 때문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젓가락을 높이 쳐드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젓가락으로 그릇이나 상을 두드리면 귀신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친근함의 표시로 젓가락으로 음식을 주는 일이 있다. 일본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면 큰 질책을 받는다. 빨리 죽으라는 재촉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죽은 사람을 화장한 뒤에 젓가락으로 뼈를 수습하기 때문에 금하는 행동이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젓가락은 길상(吉祥)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을 위한 답례 선물로 가장 흔하게 사용된다. 또 조상이 쓰던 젓가락을 조상의 영혼으로 여긴다. 그래서 조상이 쓰던 젓가락을 지붕 밑 모퉁이에 엇갈리게 걸어놓고 이를 조상신으로 모신다. 우리나라 사람이 식당 입구에 마치 황태와 실타래를 매달아 놓고 액막이를 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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