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은 흔히 ‘침묵의 살인자’라고 한다. 당뇨병은 사전 증상과 징후가 없다. 위험 감지가 어려운 질병이다. 이 때문에 ‘현대인의 병’이 됐다. 한국에 570만 명이 앓고 있다(2022년 한국당뇨병학회). 전 세계에서 한 해 치료비로 800조 원을 쓴다.

하지만 매년 약 400만 명이 죽어간다. 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부작용 없는 ‘천연 인슐린’을 찾아냈다. 천연 인슐린? 세종대 이상협 교수 연구팀이 ‘미인풋고추’에 혈당을 강하시키는 AGI(알파글루코시다제 억제제) 성분이 함유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지난 4일 발표된 한국원예학회지 논문에 게재된 내용이다. 논문에 따르면, 미인풋고추 1개에 포함된 AGI 성분이 의약품 아카보스(당뇨환자에게 많이 이용되는 혈당 강하 의약품) 40mg과 동등한 효능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현존하는 관련 연구 중 가장 많은 양에 해당한다고 한다. 류경오 아시아종묘 대표는 “하루 4개의 미인풋고추를 먹으면 당뇨약 한 알의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고추에 AGI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추를 얼마만큼 먹어야 당뇨 치료 효과가 있는지 몰랐다. 그것을 찾아낸 성과였다. 미인풋고추를 개발한 아시아종묘는 지난 4일 미인풋고추를 활용한 천연물 소재 건강기능식품 원료 ‘일릭시(ILIXY)’도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고추의 약용 효과 대단........‘건강한 마약’으로 불려
사실 고추는 다양한 약물적 효능을 가진 ‘메디컬 푸드’다. 고추는 천연 진통제로 통한다. 고추에 다량의 캡사이신이 함유되어 있다. 고추가 매운맛을 내는 것은 캡사이신 때문이다. 우리 뇌는 매운맛을 통증으로 느낀다.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엔도르핀을 분비한다. 엔도르핀은 통증을 완화하는 호르몬이다. 산모가 산통을 견딜 수 있는 것도 출산할 때 분비되는 엔도르핀이 때문이다. 출산 때 나오는 엔도르핀은 몰핀주사 200대와 맞먹는다. 매운 고추를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역시 같은 원리다. 캡사이신은 통증 완화와 스트레스 해소 효과만 있는 게 아니다. 몸의 신진대사를 돕는다. 대사 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지방을 태워 없앴다. 체내에 지방이 축적을 막는 것이다. 만병의 근원인 비만 예방에 도움이 된다. 고추에 ‘건강한 마약’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이유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매운 음식의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느 나라보다 매운맛을 즐긴다. 국민의 1인당 한 해 고추 소비량은 약 4kg이다. 물론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요즘은 종전보다 더 많은 고추가 소비될 듯하다. 라면, 감자탕, 닭요리, 김치, 고추장, 참치통조림, 치킨, 앞에 ‘매운’이 들어가지 않으면 인기 상품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혀가 마비될 만큼 매운 ‘마라탕(麻辣湯)’과 ‘불닭’ 열풍이 불고 있다. 마라탕이나 불닭 맛을 보면 고추의 옛말이 ‘고초(苦草)임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렇다. 우리 민족은 독종이었다. 통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그 근성이 어디 가겠는가.
한국 음식의 진심이 된 고추
전 세계 60개국에서 1,600여 종의 고추가 재배되고 있다. 그 모양새와 매운맛의 강도, 쓰임새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 사람도 매운 풋고추를 맨입으로, 그것도 고추장에 찍어 먹지는 않는다. 통고추를 소스에 찍어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외국인이 이런 모습을 보면 기겁하면서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고추장이 고추의 매운맛을 약화한다. 고추장에 찍어야 훨씬 수월하게 통고추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매운맛은 미감이 아니라 통증이다. 고추장이 입안에 점막을 형성하여 ‘통점’을 코팅하는 역할을 한다. 혀는 어느 정도 매운맛에 무디어진다. 거기다가 고추장의 발효 향미는 고추의 풋내도 잡아준다. 외국의 매운 고추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고추는 상대적으로 매운 편이 아니며, 당도는 훨씬 높다. 적당히 매운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한국 고추이기에 맨입으로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외국 고추는 우리 고추보다는 작은 편이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운 게 많다. 1970년대 고추 파동 때 동남아시아 고추가 대량 수입된 일이 있다. 그때 ‘작은 고추가 맵다. 수입 고추는 더 맵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청양고추는 4000~1만 스코빌 정도다.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인 인도의 ‘부트 졸로키아’는 청양고추보다 100배, 방글라데시의 ‘도셋 나가’는 80배나 맵다. 중국에도 ‘조천초’라는 매운 고추가 있다. 너무 매워서 고추기름을 만들어 먹는다.
일본인은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매운맛의 정도에서는 만만치 않은 고추 품종이 많다. 고추 이름도 ‘당나라에서 들어온 매운 것’이라는 뜻이다. 도가라시(唐辛子)다. 일본 고추의 매운맛은 한국 청양고추의 3배나 된다. 특히 매운 종자인 ‘산타카’는 청양고추보다 20배나 큰 ‘통증’을 느낄 정도다. 산타카의 당도는 청양고추의 2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중화제 역할을 하는 당분이 적은 만큼 매운맛의 강도가 강하다.
일본인은 이렇게 매운 고추를 맨입으로 먹는 것을 상상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전통적으로 매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추를 먹으면 머리가 벗겨진다”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왜 이 같은 속담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운 고추에 대한 거부감이 꽤 팽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14년에 발간된 《진총담(塵塚談)》이란 책에는 “번초(蕃椒:고추)는 이빨을 훼손하는 독이 있다. 먹으면 안 된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고추를 독초로 인식한 것이다. 사실 일본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고추를 군용식품이 아니라 무기로 활용했다. 조선에 서양의학을 최초로 소개한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의 전투 장면을 묘사하면서 “고추를 태운 연기를 적진에 날려 눈을 못 뜨게 하고, 기침하게 하여 적진을 교란한 다음 공격에 나선다”라고 기록을 남겼다.

고추 문명에서 소외된 일본
독초로 여겼던 고추가 일본에서 식용으로 전환된 데는 일본인 특유의 기지 때문이다. 기존의 문화를 변형하거나 외래문화를 절충해서 ‘일본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일본인은 중화된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고춧가루, 후추, 산초, 겨자, 채종, 마 열매, 진피 등 7가지 조미료를 섞어 만든 ‘시치미도가라시(七味唐辛子)’가 그것이다. 줄여서 ‘시치미’라고 한다. ‘7가지 맛의 고추’라는 뜻이다.
시치미는 매운맛과 달콤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고춧가루와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일본 식당에서 가락국수를 먹을 때 뿌려 먹는 조미료가 바로 시치미이다. 이같이 중화된 매운맛을 만들어 낸 것은 무엇보다 일본의 전통적인 요리 방식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일본은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한다. 고춧가루 같은 강한 양념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중화된 매운맛, 시치미의 개발에 대한 반작용도 있다. 일본의 사회학자 가코 히데토시의 말대로 일본이 ‘고추 문명’에서 소외되게 만든 데 시치미가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일본 음식에서 매운 음식의 비중은 현저히 떨어진다. 고추가 어느 나라에서 들어왔든 일본은 고추 문화권에서 거의 제외된 편이다. 일본 음식 중 매운 음식으로 나가사끼 짬뽕이 꼽힌다.
중국에서 매운 요리의 본고장은 쓰촨성이다. 이 지방의 매운 요리도 18세기 이후에 제자리를 잡았다. 명나라 말기에 서역에서 고추가 전해진 뒤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고추가 들어와 전국적으로 전파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추가 전해지기 이전부터 산초 등을 식용하여 매운맛에 익숙했던 우리나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고추를 ‘독성 식물’로 여겼다.
1614년 이수광이 집필한 《지봉유설》에는 “남만 후추는 큰 독을 가지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당시에는 고추를 ‘남만 후추’라고 불렀다. ‘왜국(일본)에서 들어온 풀’이라는 의미로 ‘왜개자(倭開子)’ 혹은 ‘왜개초(倭開草)’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백성 사이에서는 고추가 꽤 인기가 높았던 것 같다. 《지봉유설》은 “주막에서 고추를 조금씩 심어 소주에 타서 팔았으며, 이를 마신 사람들이 더러 죽었다”라는 가슴 아픈 사연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고추는 기후와 토양 등 생육조건이 잘 맞는 한반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많은 생산량은 고추를 이용한 음식이 발달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도 농가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채소가 바로 고추다. 한국 음식에서 고추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제사 음식뿐이라고 말해도 그르지 않다. 그중에서도 김치와 고추장은 한국 음식의 대표 상품이 되었다. 한국 음식 중 이 두 가지만이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의 규격 음식으로 등재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를 만든 것은 임진왜란 이후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로 보인다. 1715년경 실학자 홍만선이 농업과 의약 및 농촌의 일상생활에 관하여 기술한 《산림경제》에 고추에 버무린 현재의 김치 모습이 처음 보인다. 그리고 50년 후인 1766년경에 발간된 《증보산림경제》에는 무려 41종의 김치 무리가 다양한 형태로 수록되어 있다. 1800년대에 출간된 《김치담금법》에는 고추를 썰어 다른 양념과 함께 켜켜이 넣었다고 기록됐다. 1827년에 발간된 《임원십육지》에도 여러 종류의 김치가 수록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고추의 사용을 권장했다는 점이다.
고추의 매운맛으로 이룬 중국공산혁명
중국도 한국만큼 매운맛을 즐긴다. 특히 후난성과 쓰촨성이 그렇다. 후난성과 쓰촨성은 한국의 영남과 호남,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처럼 경쟁의식이 강하다. 지역감정의 골도 깊다. 먹을거리 걱정이 없는 곡창 지대인 쓰촨 지방은 천부지국(天府之國:하늘이 낳은 부자 지방)으로 불렸다. 쓰촨 사람은 예로부터 “먹을 것은 중국에 있고 맛은 쓰촨에 있다”라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쓰촨성이 잘되는 것을 보고 있을 후난성 사람이 아니다. 후난 사람은 쓰촨 사람을 철저히 ‘무시’한다. “쓰촨 사람은 ‘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不怕辣)’. 후난 사람은 ‘맵지 않은 것을 두려워한다(怕不辣)’”라며 쓰촨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들곤 했다. 매운맛을 둘러싼 경쟁 즉, 나이쥬안(內卷·탈출구 없는 경쟁을 의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중국 혁명과 관련이 있다. 마오쩌둥은 후난성 출신이다. 쓰촨성 못지않게 후난성도 매운 음식을 즐기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두 지방의 사이가 안 좋아진 것은 중국공산당 혁명 1세대인 주요 인사들 가운데 다수가 이 두 지역 출신이었고 공교롭게도 그들도 정적 관계에 있었던 게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마오쩌둥, 펑더화이, 류사오치, 후야오방, 저우언라이 등이 후난성 출신이고, 덩샤오핑, 주더, 류보청, 천이, 뤄루이칭, 량샹쿤 등이 쓰촨성 출신이다. 후난성과 쓰촨성에서 이렇게 쟁쟁한 혁명가가 많이 나온 것은 매운 음식이 사람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꾸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정을 낳는다. 마오쩌둥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혁명가’라고 주장했다. 후난성이든 쓰촨성이든 출신 지역과 상관없이 혁명의 동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그 스스로 만두를 먹을 때 고추를 끼워 먹으면서 혁명 의지를 다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매운 고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붉은 고추의 노래>를 가장 즐겨 불렀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반찬 노릇이나 하는 고추는 자기 신세가 불만스러웠다. 그러던 중 배추, 시금치같이 아무 생각 없이 바보처럼 세상을 사는 채소들을 선동하여 마침내 봉기한다’라는 것이 <붉은 고추의 노래>의 가사 내용이다. 고추의 매운맛으로 공산혁명을 성공시키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일종의 ‘고추혁명가’인 셈이다. 결국 정적과 경쟁에서 최종적 승리를 거둔 마오쩌둥은 “쓰촨 사람은 고추를 통째로 먹지 못한다”라고 힐난했다. 경쟁에서 승리한 뒤 동지와 적을 통고추에 빗대어 구분한 것이다.
마오쩌둥에게 ‘고추로 혁명을 이룬 사람’이라고 이름을 붙인다면 비난거리가 될까? 고추가 혁명의 소재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고추는 가난한 사람의 음식이었다. 고추가 중국에 상륙했을 때 부유한 귀족이나 상인은 이국풍 관상식물로 여겼다. 고추를 향신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다. 구이저우(貴州)의 먀오족(苗族) 같은 가난한 소수민족이 고추로 값비싼 양념을 대체했다. 우리에도 익숙한 훠궈나 마라탕 역시 ‘가난한 도시노동자’의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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