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그토록 숙원하던 보험업 진출에 급제동이 걸렸다. 손익 과대계상을 이유로 금융감독원이 핵심 자회사 한국투자증권에 대해 칼날을 겨누고 있는데다, 이에 연루된 직원의 투신 사고까지 발생했기 떄문이다.
김남구 회장은 지난 2004년 동원증권을 품에 안고 독립한 뒤 2005년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하며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출범시켰다. 한국투자금융지주 산하에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저축은행. 한국투자캐피탈 등을 두고 있다.
이후 20년 동안 한국투자증권을 국내를 대표하는 증권사로 키워냈지만 증권업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는 아직 극복하지 못한 상태라는 게 금융권의 일치된 판단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지난해 말 연결기준으로 109조2202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이 83.1%에 달하는 90조7214억원을 차지한다.
실제 비은행 금융지주 경쟁사로 여겨지는 미래에셋그룹과 메리츠금융은 보험사 등을 소유하고 있어 한국투자금융지주에 비해 증권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낮다.
그래서 김 회장은 보험업 진출 의욕을 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주총 이후 기자들과 만나 보험사 인수와 관련해 “여러 대안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업계에서 돌던 보험사 인수 가능성을 김 회장이 직접 확인해 준 셈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국금융지주는 최근 삼정KPMG를 실사 자문기관으로 선정하고 보험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인수대상은 BNP파리바카디프생명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김 회장이 차근차근 준비하던 보험업 진출에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먼저, 지난 1일 발생한 한국투자증권 직원의 투신 사건이다. 이날 오전 9시께 회사 건물 3층에서 40대 남성 직원 A씨가 추락해 심정지로 숨졌다. 회사 일각에서는 사고 당사자가 투신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판단을 내놓고 있다.
당사자가 왜 이 같은 행동을 했을까.
사고 당사자는 재무·회계 파트에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벌어진 날 금융권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금융감독원은 한국투자증권이 외환 거래 손익 5조7000억원을 과대 계상했다는 이유로 이 회사에 대한 회계 심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 부문 부원장은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회계 심사는 이미 착수했고 (회계 처리 위반) 규모와 비율, 고의성을 살필 것”이라며 “그 이후 과정은 좀 더 봐야 한다”고 밝혔다.
회계 심사란 금감원이 기업을 대상으로 회계 처리 기준 위반 여부와 그 경위를 살피는 것인데, 사안이 중대하면 감리로 전환된다.
한국투자증권은 매출과 비용이 같이 부풀려졌기에 순이익엔 변동이 없어 매출 과대 상계 문제가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금융당국은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21일 한국투자증권은 2019~2023년의 5년치 사업보고서를 수정해 다시 공시했다. 매출이 5조7000억원 과대계상된 탓이다.
회사 재무·회계 파트는 매출 과대 상계 문제 등이 발견되며 약 한 달 전부터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 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의도성이 있으면 금융당국의 강한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결국 투신사고와 금감원의 회계 심사를 연관지어 살펴봐야 한다는 게 금융권의 판단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정에 밝은 금융권 관계자는 9일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생한 이번 일들이 김 회장의 보험업 진출에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종 결정권자인 금융위원회가 내부통제 해이 등을 이유로 한국금융지주의 보험사의 인수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금융도 지난해 우량 매물인 동양·ABL생명 인수를 목전에 뒀으나 전직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스캔들로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이에 대한 한국투자증권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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