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석 거제시의원

거제시는 지금 조선업의 회복과 지역경제의 재도약이라는 중대기로에 서 있다.

이같은 골든타임에 거제시가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에 각각 연간 100억원 씩 5년간 총 1000억원의 지역 상생발전기금을 출연하라고 요구한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상생이라는 이름 아래 민간기업에 금액까지 명시한 거제시의 일방적인 요청은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 정책적 현실성도 부족하다고 본다.

우선, 이 사안은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 발표였다. 변광용 시장은 해당 공약을 4.2 재선거 과정에서 내세웠고, 당선 이후 곧장 기업 경영진을 찾아 출연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업과의 실질적 교감이나 합의는 전무했다.

양사의 입장은 “사전에 어떤 조율도 없었다”, “출연 여부는 미정이며 내부 검토 중”이라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해 100억원, 5년간 500억원이라는 액수는 민간기업이 외부 용도로 부담하기에는 막대한 금액이다.

기업의 경영 판단과 재무 운영에 대한 외부의 개입이나 압박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작금의 조선업계는 겉으로는 수주 대박이라 하나, 이는 결코 온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양대 조선사의 실질적인 내부 상황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수주 단가는 형편없는 수준으로 알고 있다. 이에 따른 협력업체 단가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실정이다.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외형적으로 수주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내실은 전혀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생협력 지원이라는 제안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다시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수년간 이어진 구조조정과 하청업체 폐업, 인력 이탈 속에서 가까스로 조선업을 유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1000억원의 기금 출연은 기업 내부는 물론, 현장의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납득되지 않은 요구다.

아직도 임금 체불과 고용 불안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외부를 위한 거액 지출은 자칫 노동현장의 반감과 지역 갈등을 유발 할 가능성도 높다.

문제의 핵심은 기금의 불명확한 사용처다. 거제시는 지역 회생 프로그램, 지역인재 채용 확대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기금이 어떻게 집행 될지, 어느 부분에 얼마가 배분 될지 구체적인 계획은 전무하다.

기금을 통한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취지는 환영 할만 하지만, 명확한 재원 운영계획 없이 단순히 ‘출연부터 하라’는 접근은 행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자칫 이 기금이 정치적 이벤트에 소모되고 기업만 희생양이 되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지역 상생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상생이란 강요가 아닌, 협의와 조율의 산물이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역시 자율성과 신뢰 위에서 실현되는 것이며, 강제나 일반적 요구로 이뤄질 수 없다.

기금 조성에 앞서 행정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지역 산업 구조의 안정, 하청 노동자의 고용 보호, 그리고 골목상권의 회복을 위한 실질적이고 체감도 높은 정책 수립이 우선이다.

행정은 정치적 상징보다 경제적 실효를 중심에 둬야 하며, 반드시 시민과 산업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접근은 이와는 정 반대다. 시장은 후보 시절 '기업하기 좋은 거제'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금액까지 특정한 채 민간기업에게 일방적으로 기금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은 그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업과의 신뢰 없이 이뤄지는 요구는 투자유치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오히려 기업이 떠나고 싶게 만드는 도시, 외면당하는 산업 기반 도시로 전략할 수 있다는 점을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조선업을 전공한 시민을 대표하는 시의원으로서 나는 기업에 대한 일방적 기금 강요 방식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지금이라도 거제시가 정책의 방향을 다시 설정할 것을 촉구한다.

기업을 징수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지역과 함께 성장할 신뢰의 파트너로 존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상생의 출발이라 할 것이다.

(기고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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