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과 성장의 마중물"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도 친숙하게 느껴질 어구다. 오는 21일부터 지급이 시작될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캐치프레이즈이니 말이다. 온갖 은행, 신용카드, 모바일 페이 업체들이 자신들의 계정으로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신청하라고 국민들에게 광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람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이렇게 현금을 뿌리는 것이 민생 회복, 특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될까?
정부와 여당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 본인의 의지가 있다. 대선 과정에서 '호텔경제학' 등이 숱한 비판, 심지어 조롱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았다. 물론 전국민 25만원 지급에서 차등 지급으로 바뀌긴 했지만, '재정은 이럴 때 쓰는 것'이라며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발급한다는 기조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반면 야당은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적 입장을 꾸준히 견지하고 있다. 다양한 비판이 나왔고 그 중 가장 또렷한 목소리를 낸 사람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그는 지난 16일 서울시청에서 가진 민선 8기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일시적으로 돈을 푸는 방법은 하책 중의 하책"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오 시장의 논리는 이렇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왔다든가 IMF와 같은 사태가 터졌다든가 하면 빚내서 경기 부양을 하기 위해서 돈을 푸는 게 합리화되지만 그런데 지금은 과연 그런 정도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예상 가능하다. "통화량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정확히 주택 가격이 오르는 게 전 세계적으로 공통의 현상"이므로, 민생 안정은 커녕 오히려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온다는 이야기다. 어떤 입장이 맞을까?
소매 유통업 종사자들은 환영하는 기색이다. 대한항공회의소가 올해 3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 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RBSI는 100을 기준치로 하여 이전보다 경기가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면 100보다 높은 숫자가, 그렇지 않을 경우 100 이하의 숫자가 나오는 지표다. 여기서 올해 3분기는 지난 분기보다 27포인트가 올라 102를 기록했다. 2021년 3분기에 106을 기록한 이후 계속 100을 넘지 못하던 경기전망 지수가 긍정적으로 호전된 것이다.
이러한 기대에는 근거가 없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의 효과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제1차 재난지원금은 전체 투입 예산 대비 26.2~36.1%이 매출 증대 효과를 가져왔다. 정부에서 투입한 재정의 4분의 1에서 3분의 1 가량이 자영업과 소상공인의 매출로 향한 것이다. 2020년 5월 당시 가구당 40만원에서 100만원이 지급되었으니, 가구당 약 10만원에서 30만원 정도의 추가 소비를 한 셈이다.
이 정도면 재난지원금 혹은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긍정적인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고, 다들 'IMF 때보다 힘들다'는 말을 하고 있는 요즘이라면, 이 정도 증거가 쌓여 있으니 거리낌 없이 밀어붙여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직접 현금을 제공하는 방식의 복지가 꼭 긍정적인 소비 진작 효과를 낳지만은 않는다는 데 있다.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대학원에 제출된 박사학위 논문 '코로나19 대응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소상공인에 미친 영향'(문경준, 2021)에 따르면 그렇다.
연구자는 국내 대표 신용카드사 A사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한 회원 중 1000명을 임의 추출하고, 같은 조건에서 A사로 신청하지 않은 사람 1000명을 임의추출하여, 2000명의 샘플을 확보했다. 그리고 2019년 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총 22개월간의 신용카드 이용 거래내역을 분석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얼마나 돈을 썼는지 들여다보면서 재난지원금의 효과를 따져본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부정적이었다. 논문 초록의 한 문단을 읽어 보자.
"분석 결과,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종료 이후 소상공인에서 카드 결제액 및 카드 결제건 수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이전 대비 추가 감소하면서 긴급재난지원금이 소상공인대상 소비에 부(-)의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소비자가 소상공인업체에서 사용하도록 규정을 둔 긴급재난지원금을 소진하고자 사용 가능 기간 동안 소상공인업체에서 필요 소비를 앞당겨서 구매(forward buying)하고 사용기간 종료 이후에는 소상공인업체에서 구매를 하지 않는 기간간 대체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쉬운 말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사람들은 긴급재난지원금이 들어오면 일단 그 돈으로 생필품을 구입한다. 그래서 당장은 빠르게 소상공인의 매출이 늘어난다. 하지만 그렇게 '공짜 돈'을 다 쓰고 나면 오히려 내 돈 쓰기가 아깝게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소비를 줄인다. 그 결과 긴급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을 위한 소비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재난지원금이 들어왔다 해서 하루에 세 끼 먹을 밥을 여섯 끼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매출이 반짝 늘어나는 효과를 맛볼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구입할 만큼 구입하고 나면 그만한 매출 감소를 겪게 된다. 그리하여 자영업자의 고난은 끝나지 않거나 더 심해진다.
이것은 마치 피곤하고 졸릴 때 믹스커피나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것과 유사한 효과라 볼 수 있다. 갑자기 몸에 고농도의 카페인과 당분이 투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혈당이 치솟으면서 피로가 풀리고 몸에 힘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좋은 기분은 잠시 뿐. 곧 치솟은 혈당이 뚝 떨어지면서 전보다 더 피곤한 상태가 되는데, 이 과정을 흔히 '혈당 스파이크'라 부른다.
재난지원금이라고 부르건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라 부르건 그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돈으로 해야 할 소비 일부를 정부의 재정으로 대신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돈을 생필품과 소상공인 업종에만 쓸 수 있도록 한정하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인간의 소비에는 한계효용의 법칙이 적용되기에, 생필품과 소상공인 업종에 쓸 수 있는 전체 지출액은 달라질 게 없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반짝 매출 증가 후 더 심한 매출 절벽을 경험하게 된다. 혈당 스파이크와 뒤따르는 피로가 그렇듯, 이런 경험은 경제의 기초 체력을, 건강을 망가뜨린다.
제아무리 올곧은 자유지상주의자라 해도 현재 대한민국 경제를 "그냥 냅두면 된다"고 방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이후 지금껏 위기 상태다. 그들을 그냥 수수방관해서는 사회 전체가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재정은 이럴 때 쓰는 것'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에 원론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들에게 퇴로를 열어주고, 서비스업과 유통업 전반의 품질을 향상시키며 시장 경제에서 '패배'한 이들을 끌어안고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는 종합적 정책 패키지다.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돈을 나눠주는 것은 그런 섬세한 정책과 정 반대의 길이며,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직 취임한지 50일도 채 되지 않은 만큼, 이재명 정부가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까지 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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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정태는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이다.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일보, 서울신문, 신동아에 칼럼을 기고한다. '프리랜서', '불량 정치' 등을 썼으며,'아웃라이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칩 워' 등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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