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Y병원 공판이 드러낸 구조적 붕괴
대리·유령수술 논란은 더 이상 예외적 일탈이 아니다. 최근 법정에서 확인되는 증언과 기록의 불일치는 의료 현장의 구조적 붕괴를 노정한다. 비의료인의 핵심 술기 개입, 집도의 표기와 실제 인력의 괴리, 과다 수술 건수가 만들어내는 생산라인식 운영은 의료를 공공적 신뢰가 아닌 수익 논리로 재편하고 있다. Y병원 사건은 이러한 변질이 어떻게 제도와 관행의 빈틈을 타고 일상화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MBC 프로그램 ‘히든아이’가 고(故) 권대희 씨 사건을 다시 소환하자, 대리·유령수술은 더 이상 업계의 음성적 관행이 아니다. 환자의 동의조차 없이 비의료인이 수술에 개입하고, 실제 집도의가 아닌 이름이 진료기록에 올라가는 풍경은 의료가 아니라 산업화된 “라인 작업”에 가깝다. 그 한복판에 Y병원 K 원장 사건이 있다.
지난 9월 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7차 공판은 4개월 만의 재개였다. 기일 변경, 변호인 교체, 연기 신청이 꼬리를 물며 재판은 지지부진했고, 그 사이 사회적 피로와 불신은 누적됐다. 사건이 공론화된 지 3년이 넘었지만 1심은 아직 결론에 닿지 못했다. 정의가 늦어질수록, 피해는 환자와 대중에게 전가된다.
법정에서는 충격적인 증언이 이어졌다. 한 달간 수술실을 오간 순환간호사는 영업사원들이 상시 출근하듯 수술방을 드나들었고, 단순 보조를 넘어 절삭·벌림·임플란트 삽입·망치질까지 직접 수행했다고 진술했다. 의사가 손을 떼면 영업사원이 이어받는, ‘원팀’ 같은 동선이었다는 묘사는 의료행위의 경계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봉합을 PA 간호사가 맡았다는 구체적 정황, 현황판상 집도의 표기와 실제 수술 인력의 불일치 의혹은 기록의 진실성마저 흔든다.
검찰은 비의료인의 의료행위 금지와 진료기록의 진실작성 의무 위반, 파견 관련 법령 위반을 지적한다. 반면 병원 측은 순환간호사의 관찰 범위로는 수술 전 과정을 단정할 수 없다며 신빙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미 다수 사건에서 반복 확인된 패턴과다한 수술 건수, 상주 영업사원의 실질적 술기 개입, 허위 기록 가능성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 역시 ‘예외’로 보기 어렵다는 회의가 커진다.
핵심은 숫자다. 연간 3천 건이 넘는 인공관절 수술 청구는 정상적인 인력·시간 구조로는 소화하기 힘들다. 과도한 건수는 곧 라인화된 술기, 역할 쪼개기, 그리고 기록 상의 ‘정합성 포장’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수술은 의료에서 생산으로 전환되고, 환자는 치료 대상이 아니라 처리 대상이 된다.
지연된 재판은 2차 피해를 부른다. 증거는 희미해지고, 증인은 피로해지며, 사회는 체념을 배운다. 법은 증인 불출석 제재 등 절차적 수단을 갖고 있지만, 실효적 집행 없이는 ‘시간 끌기’ 전략을 억제하지 못한다. 정의의 속도는 때로 정의 그 자체다.
더 큰 문제는 구조다. 수술실 출입 관리와 기록 체계는 허술하고, 비의료인의 역할 경계는 모호하며, 과다 청구를 가르는 경보장치는 둔감하다. 수술실 CCTV 의무화는 시작일 뿐, 전자로그 기반의 출입·역할 추적, 집도의 실명·구간별 전자서명, 보험 청구의 이상치 탐지와 선제 심사가 결합되지 않으면 ‘공장식 수술’은 형태만 바꿔 재현될 것이다. 내부고발 보호와 증인 보호의 실효성 강화 없이는 진실은 다시 침묵한다.
Y 병원 사건은 고립된 사례가 아니다. 부산 365병원, 김해 강일병원, 파주·울산·광주·강남 등 전국 각지에서 유사한 대리수술 사례가 적발되었으며, 일부는 환자 사망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으며, 불법 수술은 의료현장에서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12월 15일 예정된 다음 공판은 분수령이다. 증언의 교차검증, 진료기록과 보험 청구의 데이터 포렌식, 출입기록과 CCTV·마취기 로그의 정합성이 맞물려야 한다. 재판부는 ‘관찰자의 한계’라는 변론을 넘어, 다수 증언의 일치성과 객관 자료의 결을 함께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판결은 제도 개선의 신호탄이어야 한다. 면허 제재의 실효성, 과징·환수의 억지력, 병원 책임자에 대한 형사·행정 연동이 구체적 기준으로 제시될 때 비로소 현장은 바뀐다.
이번 재판은 의료계 전반에 만연한 불법 수술 관행을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범죄적 의료 행위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실체적 진실 규명과 엄정한 판결, 그리고 제도 개선이 시급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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