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DB형 비중 50% 이하로 축소

(자료 = 근로복지공단 제공)
(자료 = 근로복지공단 제공)

확정급여형(DB) 중심이던 국내 퇴직연금 시장도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소비자들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처참한 수익률 탓이다.

2024년말 기준 확정급여형(DB) 적립액은 215조원으로 전체의 50%, 확정기여형(DC)은 118조원으로 27%, 개인형(IRP)은 99조원으로 23%를 기록했다. DB형은 줄어들고 IRP가 증가하며 올해 9월말 기준으로는 DB 46%, DC 27%, IRP 26%를 기록하며, DC형과 IRP의 비중이 54%까지 올라왔다.

IRP의 경우 연간 납입금액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이 있다는 게 장점이기에 최근 5년 동안 매년 30% 이상 증가하는 추세다. 연간 최대 납입금액 900만원 한도로 납입액의 13.2%나 16.5% 세액공제 혜택이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의 10년 장기 수익률은 연 환산 2.6%이다. 원금 보장 상품은 2.2%에 불과하며 원금 비보장 상품 역시 4.2% 수준이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금융시장이 반등했고,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실적 배당형(원금 비보장) 운용 비중이 늘어난 점 등으로 5년과 3년 수익률은 각각 연환산 3.5%, 5.4%로 개선됐다.

원금 비보장 상품의 경우 5년은 5.9%, 3년은 11.6%로 높아진다.

퇴직연금 수익률 부진은 다양한 원인을 얘기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가입자가 개별적으로 퇴직연금사업자와 계약을 맺는 구조보다 해외 사례처럼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연금’이라는 성격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투자가 이뤄지기보다 과거에는 주로 예적금과 같은 원금 보장상품 중심으로 투자가 편중돼 있던 점이 낮은 수익률의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그에 반해 기금형 방식은 제도를 설정하는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주로 수탁기관이 전문성을 갖고 관리 책임을 지는 구조다. 외부 위탁운용관리(OCIO)를 통해 전문가에게 자산운용을 맡기고, 자산별 포트폴리오를 설계해 주식·채권·대체투자 등 다각화된 운용을 추진하는 구조다.

이때 투자 원칙이나 리스크관리, 성과 평가 등의 주요 의사결정권은 기금운용위원회에 있는데, 경우에 따라선 이 위원회에 근로자대표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금형 퇴직연금은 여러 기업이나 개인의 적립금을 통합 운용하면서 운용비용 절감과 투자기회 확대가 가능하다는 점이 본질적 강점이다.

개인이나 작은 규모 기업 단위에선 접근하기 어려운 인프라나 대체투자 등에도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때 운용 성과에 따라 수탁기관이나 OCIO의 보수가 달라지는 성과연동형 구조를 가져올 수도 있으며, 이들의 수익률이나 비용, 운용 성향 등을 공시하도록 하면 시장 경쟁을 유도할 수도 있다.

가령 미국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나라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401(k)’ 역시 기금형 신탁 구조를 갖는다. 이외에도 세계 최대 기금형 퇴직연금 중 하나로 자산 500조원 이상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400조원 규모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 300조 규모 뉴욕시 공적연금(NYC Pension Funds) 등은 물론, GM·보잉·IBM·AT&T 같은 대기업도 자체 기금형 연금을 운용한다.

이는 1974년 ERISA(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법에 따라 모든 기업과 기관의 퇴직연금은 독립된 신탁(Trust)에 의해 운용되도록 규정한 것으로, 세계서 가장 강력한 신탁법을 기반으로 ‘가입자의 최선의 이익만 고려’해야 하는 수탁자 책임과 독립된 기금운영위원회 거버넌스가 특징이다.

그런가 하면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은 세계서 가장 성공한 기금형 퇴직연금 모델로 회자된다. 모든 근로자가 의무 가입해야 하는 완전 기금형 제도다. 장기 수익률은 연평균 6~8%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금형 퇴직연금이 주로 기업이나 직역별 기금형인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국내에도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의 실험이 진행형이다. 근로복지공단이 2022년 9월부터 운용하고 있는 ‘푸른 씨앗’은 30인 이하 중소기업을 위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푸른씨앗은 2023년엔 6.97%, 2024년 6.52%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9월말 기준 연환산 9.28%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정부 지원을 받는 제도이기에 정책 변화에 따라 향후 운영수수료 등의 추가 발생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아직 장기적인 가능성이나 안정성이 미지수다. 이 역시 규모의 확대가 가능해야 하지만,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또한 고위험·단기투자 등 선택의 자율성을 원하는 이들에게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생리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취약점이다. 이는 국내 주식투자 성향에 대한 분석에서도 잘 드러나는 경향성이다.

9월말 기준 적립금 규모가 1조2545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은 본질적으로 푸른씨앗은 실험적인 제도라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 본질적으로 발휘될 수 없는 구조다.

한편 퇴직연금 제도는 앞서 언급한 기금형 도입 등을 비롯해 민주당 안도걸·한정애·박홍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3개의 법 개정안이 국회서 논의 중에 있다. 실제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기까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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