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원내각제 타령에 부쳐

“저주에 걸려있는 제왕적 국회”

중앙일보 <퍼스펙티브(전망)>에 진중권에 이어 이상돈이 등장했다(2021.1.11). 중앙대 명예교수에다 전 국회의원 직함을 내건 그가 저주에 걸려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버리고 의원내각제를 하자고 한다. 다음 대선에서는 누군가가 의원내각제를 공약으로 내거는 이가 나왔으면 한단다.

차제에 대통령이 아니라 “저주에 걸려있는 제왕적 국회”에게 부탁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나라의 주인인 민초에게 국민개헌발안권부터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이 빼앗아버린 것인데, 촛불 혁명이 시작되던 그 무렵부터 명색이 모든 권력의 주권자인 민초에게 다시 돌려줄 것을 줄곧 요구해왔으나, 국회에서는 마이동풍, 귀를 막고 있는 것이다. 사팔뜨기 국회의원들 눈에는 한쪽으로 국회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이것은 여야를 막론한다.

국민개헌발안연대 창립식 2020.1.15 (사진출처: 연합뉴스, 2020.3.8)
국민개헌발안연대 창립식 2020.1.15 (사진출처: 연합뉴스, 2020.3.8)

코로나로 영세자영업자는 물론 밑바닥을 헤매는 민생이 줄도산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는 다시 의원들의 보수를 인상했다. 국회는 자신이 받을 보수조차 스스로(셀프) 결정하고, 아무 데서도 견제받지 않는 국회는 온 나라 민초가 ‘디비지는데도(꺼꾸러지다)’ 자신이 받을 보수를 인하가 아니라 인상했다는 말이다.

10여년 전 그리스에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그리스는 하층 서민이 아니라 고위 공직자 및 교수(그리스의 대학들은 거의 다 국립이다)들의 봉급을 삭감했다. 풍문으로 듣기는 1/3 정도가 삭감되어 가진 자들이 난감해했다고 한다. 거기다 큰 집 같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가난에 허덕이는 이를 위해 ‘빈민세(재산 있는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니, 재산세 혹은 부유세의 개념이다)’를 추가로 내야 했다. 그래서 가진 자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그 생활이 쪼그라들었다. 당장에 큰 집을 유지할 연료비부터가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 국회의원 나리들에게 이런 사례는 먼 나라 이야기, 잠꼬대 같은 것이다. 그뿐 아니다. 북부 유럽 나라들에서 국회의원 세비가 민초의 평균 임금을 크게 웃도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우리나라 의원들이 누린다고 하는 200여 가지가 넘는 특권 같은 것도 없으며, 어느 나라에서는 의원 보수까지고만 부족하여 ‘투 잡(두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다 잠꼬대같이 듣기는 것이다. 그래서 ‘ 제왕’과 같은 의원의 특권을 하나도 내놓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코로나 난리법석에도 국회에서는 자신들이 받을 보수만큼은 셀프로(스스로) 올렸다.

태만과 월권의 국회는 검찰공화국을 닮았다

하는 일이나 제대로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공수처 설치 한다고 법이 통과된지가 1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출범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맡겨놓으니, 뭐가 제대로 되는 일이 없고 온통 쌈박질로 하세월이다. 180석 육박하는 의석을 가지고도 이런 지경이니, 민초가 보기에 국회는 여야가 짜고치는 고스톱판 같다.

하긴, 공수처가 생겨도 난감한 일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저질러온 공직자의 비리가 어떻게 여야를 가릴 것이며, 비리의 온상이 어디 검찰뿐이야! 법원, 국회, 행정부를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숱한 세월 쌓여온 비리를 어떻게 일개 사정기관인 공수처가 다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면 대책이 서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공수처가 생겨도 문제, 안 생겨도 문제, 그래서 이렇듯 공수처가 과감하게 설치되지 못하고 지연되고 있는 듯하다. 그 지연은 야당의 훼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이렇듯 하는 일은 신통치 않으면서도 더 많은 권력만 탐하는 국회는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또 세상에 아무 데도 없는 분에 넘치는 특권을 누리는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하더니만, 정작 의원내각제를 하자고 주장할 때는 부지런히 외국의 사례를 끌어대는 것을 보노라면, 이들이 한쪽만 보는 사팔뜨기인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의 권한까지 탐하는 국회는 권력이란 권력을 죄다 한 손에 움켜잡고서 안하무인,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거듭나고 싶어 한다. 중앙일보를 앞세우고 이상돈을 앞세워 의원내각제 운운하고, 숫제 앞으로 있을 대선공약까지 들먹이면서 분위기 띄우는 것이 그러하다.

모든 권력의 중심에 국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회의 소행은 요즈음 드러나는 검찰 공화국의 행패를 닮았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정책을 무차별 공격하는 검찰 공화국 말이다. 그 검찰의 선별적 월권 행위에 대해서 입법부 국회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거기다가 '저주에 걸린 대통령제'라고 하면서 대통령의 권한까지 국회로 넘기라고 한다. 이 같은 국회의 소행은 딱히 여야 간 차이를 두기도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여당 의원 중 많아야 스무 명 남짓한 의원을 제외하고 말이다.

국회가 안하무인인 또 다른 증거도 있는데, 며칠 전에 국회에서 통과된 안꼬 빠진 찐빵 같은 지방자치법이 그것이다. 중앙에 국회만 있을 것이 아니라 각 지역, 각급 기초자치단체의 민회가 제도화될 수 있도록 법안에 명시해주십사고 민초들이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민회의 존재는 이 법안에서 자취도 없이 증발되어버렸다고 한다. 국회의 눈에는 국회밖에 안 보이고, 민초의 민회는 허깨비같이 사라져버렸다.

민회의 존재를 깔아뭉개버린 국회를 두고, 이상돈은 지금 ‘저주에 걸린 제왕적 대통령제’ 운운하며 의원내각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이상돈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 오히려 “저주에 걸려있는 제왕적 국회”를 성토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이상돈이 왜곡한 사실 두 가지

의원내각제를 말하는 이상돈은 두 가지 점에서 논리의 왜곡을 범하였다. 하나는 대통령제의 폐단을 말하면서 의회의 폐단은 은폐하고 숨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권형 정부에 대한 소망을 ‘변형된 의원내각제’ 개념으로 연동하여 바꿔치기한 것이다.

이상돈은 저 멀리 독일 헌법학자 칼 뢰벤슈타인(1891~1973)을 소환했다. 독일 뮌헨대에서 교수를 하다가 나치 정부 등장 후 미국으로 건너갔고 앰허스트대에서 교수를 지내면서 『정치권력과 정부 과정』 등의 저술을 남겼던 뢰벤슈타인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정부는 서유럽의 전통인 의회 정부, 즉 의원내각제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동시대 같은 독일 헌법학자로서 칼 슈미트(1888-1985)는 뢰벤슈타인과 반대로 의회제도가 모순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력한 행정권을 옹호했고, 나치 정부에 협조했던 것으로 회자된다.

이상돈이 의원내각제를 옹호한 뢰벤슈타인의 말만 소개하고, 의회 자체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한 슈미트를 뺀 것 자체가 사실을 편파적으로 왜곡한 결과를 낳는다. 더구나 뢰벤슈타인이 말한 것은 그냥 ‘의원내각제’가 아니라 ‘서유럽’의 의원내각제이다. ‘서유럽’이라는 말의 뜻은 아무 데서나 다 의원내각제가 좋다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말을 바꾸면, 동유럽에 속하는 독일은 물론 한국에도 똑같이 의원내각제가 좋다는 말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 수가 있다. 의원내각제 약발이 아무 데서나 다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상돈이 작심하고 왜곡한 두 번째 사안은 분권형 정부의 개념이 마치 의원내각제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변형된 의원내각제’라는 말을 지어낸 것이다. 이 말은 촛불혁명으로 새 정부가 탄생하던 무렵을 전후하여 시민단체, 정부, 국회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전개된 개헌 논의와 관련된 것이다. 20대 국회는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개헌특위를 구성해 많은 논의를 했고, 국회의원 300명 중 약 80%가 개헌에 찬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개헌의 내용에 대해 각기 의견이 달랐고, 서로 배짱이 맞지 않아서 마침내 개헌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돈은 “의원들의 절대 다수는 대통령제를 버리고 분권형 정부라고 지칭하는 변형된 의원내각제를 지지했다”고 말한다. 또 그는 “단원제 국회의 독선을 방지하기 위해 상원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여기서 이상돈은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가 곧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으로, 또 그 국회의 강화라는 것도 지금 같은 단원제가 아니라 상원, 하원을 둔 의원내각제 옹호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나름 해석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통령제 폐지, 혹은 분권형 정부의 개념은 반드시 이상돈이 말하는 국회 중심이나 의원내각제와 같은 것이 아니다. 다양하게 표출된 개헌 논의의 내용을 이상돈이 획일화하여 의원내각제를 지지했던 것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는 양원제로 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자는 등 많은 논의를 했다”는 표현이 그러하다. 양원제는 지방분권과 완전히 다른 맥락에 있음에도 이상돈은 이 두 개념을 같은 맥락으로 끌어들여 왜곡하고 있다.

이상돈의 눈에는 국회의원밖에 안 보이는 것이 확실하다. 당시 국회 바깥 각종 사회단체에서 주권자 민초에 의한 민치를 확대하고자 질러댄 아우성은 싸그리 무시해서 그늘 속으로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국민개헌발안권, 국민소환권(민초가 감시하고 잘못한 공직자를 불러내서 처벌하는 권한), 국민투표권(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권뿐만 아니라, 그외 민생 법안도 국회에서 폐기하고 뭉개버리면 다시 민초가 투표해서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투표권) 등을 요구했다. 정부 제안의 개헌안에서도 이런 제안이 들어 있었으나, 국회에서는 이 모든 요구를 싸그리 무시해버렸다. ‘제왕적 국회’에서 말이다.

단원제, 양원제(의원내각제) 가릴 것 없이 우선적으로 타도해야 할 것은 ‘제왕적 국회’ 자체의 월권과 특권이다. 할 일은 깔아뭉개면서도 더 많은 권력을 탐하는 국회, 그 국회는 자신의 보수를 스스로 올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세상에 달리 없는 국회의 특권은 제거해서 겸손한 국회로 거듭나도록 해야 하겠다. 그 국회의 권한은 기초자치단체의 민회로 이양해서 지역분권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국민개헌발안권, 국민소환권을 다시 찾고, 국민투표권을 제도화하여 민초의 뜻을 배반하는 국회를 견제할 수 있도록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또 의원내각제가 아니라 주권자 민초가 정부 권력을 견제하도록 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는 대선주자가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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