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애 칼럼]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 : 글로벌 기업인과 국내 정치인

경제 성장이라는 단어를 국가와 연계해 검색하면 대한민국(South Korea)이라는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많이 등장한다. 특히, 반도체를 위시한 IT/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산업 등은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최근에 K-방역과 K-문화로 인해 과거와 달리 한국을 모르는 세계인이 없을 정도이다. 과거 기성세대들이 외국의 선진기술을 전수받는 과정에서 당한 굴욕적인 일들은 하나의 무용담처럼 여기게 되었다.

故정주영 명예회장이 조선업의 투자를 받기 위해 거북선이 그려진 오백원 지폐를 보이며 투자금을 받아 세계 제일의 조선강국을 만든 이야기나, 이름 없는 회사제품을 팔기 위해 자신의 소변을 정수기에 거른 물을 마셔 중동국가에 수출을 한 이야기나, 반도체 강국 이전 일본과 미국의 전자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갖은 멸시와 차별 등을 당한 이야기들은 우리 MZ세대에게 귀감이 된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라떼는 말이야’라고 말하며 추억을 회상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OECD국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선진국이 되었다. 심지어 근래에 있었던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규제에 대해서도 당당히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맞서며 극복하기도 하였다. 재벌기업이 소수 오너의 일탈과 위법적 행위로 부정적 이미지가 있기도 하지만, 그들의 성과와 노력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어 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이름 없는 수많은 기업인, 노동자의 노력, 성실함, 그리고 애국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글로벌화의 노력을 하는 경제계와는 달리 세계화에 대한 한국 정치인들의 역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국 국회 화상연설을 했다. 여기서 한국 정치인은 국제적, 경제적 위상과는 달리 부족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그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도쿄 연합뉴스 제공)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후 24번째로 한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 국회연설이었다. 다른 여타 선진국과는 달리, 300명 중 50여명의 국회의원들만이 참석했다. 물론 대한민국이 처한 분단 상황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는 변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격에는 한참 모자라는 참석자 수였다. 특히 전쟁의 참상을 어느 국가보다도 잘 아는 나라이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국회의원들이 대다수가 참석함으로 반전에 대한 공감을 국민과 세계에 표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대한민국의 경제계는 기술과 혁신으로 세계를 선도하며 선진국의 위상을 찾아가는데 반해 한국 정치는 국내라는 지정학적 한계를 뛰어넘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3월 23일 일본 국회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 연설이 있었 다.(사진=도쿄 교도 연합뉴스 제공)
3월 23일 일본 국회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 연설이 있었 다.(사진=도쿄 교도 연합뉴스 제공)

3월 23일 일본 국회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15분 화상연설이 있었다. 짧은 연설을 듣기 위해 일본의원들 뿐만 아니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등 일본 각료들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을 청취하였다. 이에 대해 현 일본이 군사대국화 및 해외파병에 대한 명분과 실리를 얻기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에 참여했다는 평에 대해 틀렸다고 반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러한 일본의 전략적인 정치관점보다는, 경제계와 달리 정치의 세계화가 잘 이루어지지 못한 한국 정치인과 일본 정치인의 관점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에 일본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도쿄 교도 연합뉴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에 일본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도쿄 교도 연합뉴스)​

일본은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된 탈아입구(脫亞入歐) 전략이 야기한 서구화가 일본의 근대화의 동력이 되었고, 이때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비단 이것은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일본은 경제인보다 정치인들이 먼저 세계화에 나섰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눈을 바탕으로 일본은 근대화의 시작과 더불어 차츰 세계 속의 일본이 되어 간 것이었다.

같은 시기에 한국은 안타깝게도 조선 후기 쇄국정책을 비롯해 근현대사를 주도한 정치인들의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인해 오늘날 한국의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왔다. 현재 한국 정치인들도 국내 현안만 볼뿐, 세계를 바라보는 거시적인 관점은 부족하지 않은가? 경제 강국이 된 한국이 이제는 국제정치 및 외교에 G7(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과 같은 선도적인 역할은 아니더라도 여기에 참여를 하며, 점차 선진국으로써의 면모를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아쉬움과 부족함이 있다. 덧붙여 강한 경제력과 더불어 점차 국제적으로 통일한국의 입지를 다져야 하는 시점임에도, 강대국에 둘러싸여 어쩔 줄 몰랐던 과거 구한말 정치 관료들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하였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하며,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 말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남녀노소가 정치적 사안에 민감하며, 정치가 술자리의 손쉬운 안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정치는 잘 변하지 않으며 혁신을 잃어버렸는가? 또한 국민들은 왜 이러한 대가를 대대에 걸쳐 받아야 하는가?

지난 3월 24일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기념촬영 한 사진이다. 여기에 유일하게 비 대서양 나라이자 아시아 국가인 일본이 참여하였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3월 24일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기념촬영 한 사진이다. 여기에 유일하게 비 대서양 나라이자 아시아 국가인 일본이 참여하였다. (연합뉴스 제공)

일본이 몰락한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 나오고, 심지어 한국이 국제적 지위에서 일본을 대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가 바뀌지 않는 한 반세기 동안 삼성 등 기업이 일군 결과로 인해 미국 대통령이 먼저 찾아 도움을 청하는 그런 상황을 마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제는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세계화에 동참해야 한다. 얼마 전 G7회의에 한국이 옵저버(Observer)로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다. 단지 일회성 사건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세계가 대한민국의 역할을 차츰 요구하는 일련의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국 정치인들은 국제적 감각을 갖추고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국격에 걸맞는 수준 높은 정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인애/통일비 내리는 날 교육팀장

이제는 기성정치인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통섭적 능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나와야 한다. 특히 같은 세대인 2030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다른 어떤 영역보다 강한 기득권의 생태계가 존재하지만, 투쟁적 사고가 아닌 보편타당한 국가관을 가지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2030은 의무와 책임감을 가지고 도전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는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 사고를 갖춘, 역량 있는 젊은 정치인들이 나올 대한민국 정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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