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지도(中和之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덕산재(德山齋)》 거실에는 『중화지도(中和之道)』 라고 쓴 휘호(揮毫)가 걸려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봉사하던 「원불교 청운회(靑耘會)」 회장 직을 물러날 때, 당시 원불교 종법사님이신 ‘좌산(左山) 이광정(李廣淨)’ 종사(宗師)님께서 내려 주신 기념 휘호이지요.
『중화지도』란 무엇인가요? ‘중화지도’라 함은 한마디로 말하여, 음(陰)에도 양(陽)에도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취하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 곳에 편중(偏重)되는 것은 절대로 금물입니다. 또 편견이 있어도 안 되며, 상하, 좌우, 종 횡, 남북 할 것 없이 이 모두가 중화를 이룰 때 비로소 중심을 이루고 균형을 유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화지도야 말로 세상의 도중에 가장 중요한 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카페 「덕화만발」의 <4대 강령>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는 편협한 종교, 이념, 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지향한다.>입니다. 그리고 우리 원불교의 기본 정신의 하나 이지요.
장자(莊子)의 <추수편(秋水篇)>에 ‘정저지와(井底之蛙)’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물 안 개구리’ 라는 뜻으로, 견문(見聞)이 좁고 세상 형편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요. 이런 사람은 내가 보는 세상이 가장 크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하며, 내가 뛰고 있는 시간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는 삶이 아닌가요?
이런 사람은 암만 보아도 장자가 말하는 우물 안 개구리임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바라보는 우물 속에서 보는 하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짜 하늘을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물 속에서 바라보는 별은 우물 둘레만큼 만 보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광대한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바라볼 수가 없으니 옹졸하기 짝이 없지요. 역시 ‘추수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황하(黃河)의 신(神) 하백(河伯)이, 자신이 다스리는 황하가 물이 불어나서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고,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황하 기슭을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는, 그 광대무변(廣大無邊)함에 자기의 견식이 얼마나 옹졸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했던 생각이 무너진 것이지요.
이때 바다를 지키는 신 ‘약(若)’은, 황하의 신 하백에게 세 가지를 충고를 해줍니다. “우물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해서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井蛙不可以語海者拘於虛也). 그 개구리는 자신이 사는 공간에 얽매어있기 때문이다.
여름만 살다가는 곤충에게는 찬 얼음에 대하여 설명해 줄 수가 없다(夏蟲不可以語氷者篤於時也). 그 곤충은 자신이 사는 시기에만 얽매어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굽은 선비에게는 진정한 도에 대해서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曲士不可以語道者東於敎也). 그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르침에 얽매어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요약하면, 우물 안의 개구리는 공간에 구속되어 있고, 여름 벌레는 시간에 걸려있으며, 지식인은 지식의 그물에 걸려있다는 것이지요.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을, 존귀하게 생각하는 장자에게는, 인(仁)이나 예(禮)나 의(義)에 구속돼있는 무리와는 더불어 얘기할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장자는 이 고사(故事)를 통해, 세 가지 집착과 한계를 파괴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첫째,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을 파괴해야 합니다.
인간이 사는 지구도 우주 공간에서 바라보면 작은 티끌에 불과하지요. 넓은 세계로 나가 안목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논어(論語)》에 공자(孔子)가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등태산소천하’(登泰山小天下)‘라고 하지요. 높은 산에 오르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어 보이는 법입니다. 동해를 보고 망망대해라고 느끼던 사람은, 태평양을 나가 보아야 동해가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 인지를 알 수 있게 되지요.
둘째,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을 파괴해야 합니다.
자기가 살던 시대만 고집해서,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입니다. 설득력도 없지요. 흡사 고장 난 유성기에서 흘러간 옛 노래를 들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셋째,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파괴해야 합니다.
21세기는 지식 정보의 시대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존의 지식과 기술이 바뀌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지식만 가지고는 적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지요.
며칠 전, 국회에서 여야 대표가 하루 걸러 하는 연설을 보았습니다. 두 당 대표가 똑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 험담과 욕설로 일관하는 모습에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툭하면 ‘국민의 뜻’이라고, 국민의 이름을 팔지요.
이제 제발 여야 모두가 <중화지도>를 배우고 익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면 어떨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6월 23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