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품격(品格)과 품위(品位)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럼 품격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의 품성(品性)과 인격(人格)을, 품격이라 하지요. 사람이 저속(低俗)한 말을 자주 사용하면 품격이 낮은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품위를 지키고 품격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합니다.

또한 사람은 사람 다워야 하고, 사람 다움, 그것이 바로 품격이 아닌가요?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꽃에 향기가 있듯 사람에겐 품격이 있다. 그런데 꽃이 싱싱할 때 향기가 신선하듯이 사람도 마음이 맑을 때 품격이 고상하다. 썩은 백합 꽃은 잡초보다 그 냄새가 고약하다.”라고 하였지요.

사람에게는 용서와 관용, 원망과 미움을 승화 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용서하면 원망도, 미움도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편안해집니다. ‘존 셰필드’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위에 원망이나 미움이 있다면, 용서와 사랑으로 행복이 가득한 날들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토끼를 잡을 땐 귀를 잡아야 하고, 닭을 잡을 땐 날개를 잡아야 하며, 고양이를 잡을 땐 목덜미를 잡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를 잡아야 할까요?

마음을 잡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잡으면, 그 마음속에 분명히 선하고 착한 행동이 부메랑처럼 돌아옵니다. 그 마음이 우리 행복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모든 일을 완벽에 가깝게 노력할 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너 나 없이 누구나 빈틈이 있고, 허물과 허술함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아주고, 채워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요.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무조건 베풀며, 맨발로 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쓸쓸한 가슴을 쓸어주고, 안아주는 따뜻한 인간이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선량하고 착한 사람을 대할 때 칭찬으로 보답을 합니다. 선량하고 착한 품격은 칭찬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어느 멘토로 모시는 스승과 제자의 대화입니다. “스승님! 같은 이름의 물건이라도 그 품질에 상하가 있듯이, 사람의 품격에도 상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하지.” “하오면, 어떠한 사람의 품격을 하(下)라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이 짧아 언행(言行)이 경망(輕妄)스럽고, 욕심(慾心)에 따라 사는 사람을 하 지하(下之下)라 할 수 있지.” “하오면, 그보다 조금 나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옵니까?” “재물(財物)과 지위(地位)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의 품격은 하(下)라 할 수 있고, 지식(知識)과 기술(技術)에 의지(依支)하여 사는 사람은 중(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니…”

“그럼 상(上)의 품격을 지닌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자신의 분복(分福)에 만족하고, 정직(正直)하게 사는 사람의 품격이 중상(中上)이라 할 수 있으며, 덕(德)과 정(情)을 지니고, 지혜(智慧)롭게 사는 사람의 품격을 상(上)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러하오면, 상 지상(上之上)의 품격을 지닌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옵니까?” “살아 있음을 크게 기뻐하지도 않고, 죽음이 목전(目前)에 닥친다 해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며, 그것을 천명(天命)이라 여기고, 겸허(謙虛)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히 상 지상(上之上)의 품격을 지닌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최고(最高)가 되기를 바라지만, 최고보다 최선(最善)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고와 최선은 다르지요. 최고는 타인을 향하지만, 최선은 언제나 자신이 기준입니다. 최고는 남을 이겨야 얻을 수 있습니다. 최고는 최선과는 달리 한 명에게만 월계관을 씌워주고, 많은 사람을 패배자로 만듭니다.

남을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즐비한 것은 삶의 목표를 최고에 맞추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최고가 결과를 중시한다면, 최선은 과정을 중히 여깁니다. 최선은 내가 얼마나 고난을 이겨냈고,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 했는지 가 관건(關鍵)이지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고, 최선을 다해도 꼴찌를 할 수도 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朴婉緖 : 1931~2011)의 글 중에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이 있습니다. 화창한 어느 날, 박완서 작가가 탄 버스가 꼼짝 하지 않았습니다.

마라톤 대회로 교통이 통제된 까닭이었지요. 구경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선두 권 주자들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지나갔습니다. 이들이 오래전에 지나간 뒤에,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꼴찌 주자들을 보면서 작가는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작가는 그때의 묘한 감정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좀 전에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였다.” 그리고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꼴찌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습니다.

어떻습니까? 최선을 다한 삶은 아름답습니다. 충분히 박수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요?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품격 있는 삶이 아닐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8월 4일

덕 산 김덕권(길호) 합장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이 지속가능한 저널리즘을 만듭니다.

정기후원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