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방문자 약 120만명 불편 초래

지난 17일 발생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 마비 사태로 온 국민이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공공기관의 민원서류 발급이 먹통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군·구청과 주민센터는 물론 온라인 민원 사이트 ‘정부 24′의 서류 발급이 온종일 중단되는 대란이 벌어졌다. 집 계약하는 날 등본을 못 떼고, 서류 급한 시민들은 발만 동동 굴리며 패닉 상태에 빠졌다. 

사진: 지난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 관련 복구 상황 등을 점검하며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사진: 지난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 관련 복구 상황 등을 점검하며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정부24’의 하루 평균 방문자는 약 120만명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거래, 자동차 매매, 금융 거래 금융권 대출 등에 필요한 각종 서류 발급이 중단돼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에 따라 정부 발급 서류가 필요한 은행·부동산 거래는 진행되지 못했고, 전입신고도 되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 강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주민등록등·초본과 인감증명서조차 뗄 수 없는 전산망 사고가 일어난 것은 바로 재난이다. 

문제는 이번 마비 사태의 원인과 언제 완전하게 복구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주말 동안 복구 작업을 거쳐 19일에서야 시스템이 사실상 복구됐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 보여준 정부의 대처는 불안하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19일까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IT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행정부가 전산망 오류가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나도록 그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전산망은 전국 공무원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전자정부 핵심 시스템이다. 2007년 전국 시·군·구에 보급됐는데 15년이 넘은 시스템을 제때 정비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스템이 노후화되면서 신규 서비스 도입은 한계에 도달했다. 한 시스템에 전국 지자체의 여러 서버가 엮여 있어 복잡한 상황이라 당연히 정비가 요구되는 것이다.

역대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구현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고 행정 전산화를 추진해왔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란 위상을 자부했다. 더구나 사고 발생 당시 주무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디지털 정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해외출장 중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에 더욱 민망스럽다. 이 장관은 지난 12일 출국하면서 “대한민국은 디지털 정부 선도국가”라며 “지난 9월 발표한 대한민국의 디지털 권리장전이 세계의 디지털 정부 표준규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일정 도중 급거 귀국한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가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정보관리원)의 관리 부실에서 촉발됐다는 점은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보관리원이 사고 전날 밤 통합전산센터 서버의 보안 패치를 업데이트한 이후 오류가 시작됐다고 한다. 정보관리원은 국가기관 주요 서비스의 서버와 통신·보안장비 등 정보자원을 관리하는 정부 데이터센터다. ‘디지털 정부’를 떠받칠 핵심 기구가 신속한 복구는커녕 명확한 원인조차 밝히지 못했다.

국가기관 전산망 불통은 이번만이 아니다. 정부 행정 전산망의 마비는 올해 들어서만 세번째다. 지난 3월 법원 전산망이 먹통이 되면서 재판 일부가 연기되고 전자 소송, 사건 검색 등 사법 서비스가 전면 중단됐다. 지난 6월엔 4세대 초·중·고교 교육 행정 정보 시스템(NEIS·나이스)이 개통하자마자 오류가 발생해 학교 현장에 혼란이 발생했다. 2021년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 과정에서도 시스템 오류로 많은 이용자가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작년 10월 ‘카카오 먹통’사태가 일어나자 카카오에 대한 감시·조사를 대폭 강화하겠다며 ‘카카오 먹통 방지법’까지 만들었지만 행정망 오류에 대해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이 먹통이 된 것도 문제지만, 이럴때를 대비한 비상 매뉴얼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해 우왕좌왕한 것도 큰 문제다. 

천재지변 등의 국가 비상사태가 아닌데도 공공기관의 민원서류 발급이 전면 중단된 것은 중대한 재난 사건이다. 행정망이나 전력망·통신망 등 국가 기간망의 작동 불능은 안보 분야에서도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북한발 해킹이 반복되는 국방·안보 분야를 비롯해 긴급구조·응급 대응의 소방, 의료·방역에 이르기까지 공공부문 전체의 작동 불능에 대비한 대응책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특히 원전, 전력시스템과 지하철·공항·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온라인망도 매우 중요하다.  

최 충 웅(언론학 박사)
최 충 웅(언론학 박사)

정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관련자와 책임자 처벌은 물론 유사 사태의 재발을 차단해야 한다. 특히 북한과 주변국의 사이버 공격에 대비해 완벽한 해킹 차단 시스템을 갖추는 등 이중 삼중의 방화벽을 구축해야 한다. 차제에 어떠한 국가 비상사태에도 빈틈없는 기간망 구축에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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