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도 하기 전에 ‘금투세 폐지라니’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8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금투세 폐지는 부자 감세가 아니고 1400만 투자자를 위한 투자자 감세”라고 에둘러 말했다.

사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시행령 개정 사항인 주식양도세 요건을 10억에서 50억원으로 완화하는 데 이어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재차 꺼내 들은 것이다. 윤정부의 국정과제인 금투세 폐지를 강하게 드라이브하고 있는 가운데, 유예된 2025년 전인 연내 입법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법 개정 사항인 금투세 폐지에 난항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금투세로 인한 세수 감소와 여야 합의사항을 단독으로 깬 것, 조세 형평성 등을 이유로 금투세 폐지에 전면 극력 반대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한 후 지난 2022년 말 여야 합의로 금투세 시행을 2년 뒤인 2025년으로 유예했다. 금투세는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2년 유예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이 지난 2022년 12월 국회를 통과하여 2025년 1월 1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투세는 말 그대로 각종 금융 투자 상품에서 발생한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여야는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국내 증시가 얼어붙은 가운데 추가 세금을 부과하면 시장 하락을 더 키울 것으로 보고 금투세 유예를 결정했다. 야당은 금투세 유예를 ‘부자 감세’라며 반대했지만 투자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유예에 찬성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지금까지는 주식 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한 대주주만 20~25% 양도소득세를 내야 했다. 대주주 외에는 주식 매매차익으로 거둔 소득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소액주주인 개미투자자들은 주식 거래 시 0.23%의 증권거래세만 부담해왔다.

금투세 추진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월급에도, 부동산 투자에도 세금을 부과해온 만큼 주식 투자에서 발생한 소득에도 마땅히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증권거래세는 금투세와는 반대로 모든 주식 거래에 일괄적으로 적용돼 투자자는 손실을 보아도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이 때문에 2020년 당시 여당과 야당은 조세 원칙에 배치되는 증권거래세를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대신에 실제 이익에 금투세 부과를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금투세는 국내 상장주식 등의 양도차익이 연 5천만원을 초과하고, 채권·파생상품 등의 양도차익이 연 250만원을 넘으면 22.0∼27.5%(지방소득세 포함) 세율로 과세하는 제도다.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사업을 해 1억 원을 벌면 24~35%의 소득세가 붙지만 금투세가 폐지되면 주식투자로 1억원을 벌어도 소득세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개인 투자자 15만 명은 당분간 세금 부담을 덜게 됐지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 원칙이 깨졌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선진국은 ‘전면적으로 과세’ 

사진: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 따르면 국회 예산정책처는 금융투자소득세가 2025년부터 시행될 경우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사진: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 따르면 국회 예산정책처는 금융투자소득세가 2025년부터 시행될 경우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수퍼개미로 불리는 자산가 약 15만 명이 과세대상으로, 전체 투자자의 1% 수준으로 예상된다. 2024년 1월 3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받은 ‘세법개정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예정처는 금투세가 기존 여야 합의대로 오는 2025년 1월 시행될 경우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제도를 시행·유지했을 때 매년 평균 1조3443억원의 세수가 더 들어올 것이라고 2022년 기준으로 추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주식시장 규모가 크고 금융시장이 세계적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선진적으로 알려진 미국, 일본, 영국, 독일의 경우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전면적으로 과세하고 있다.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본이득에 과세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9개 국가에 불과하다.경제개혁연대는 “금투세가 폐지되면 조세 형평성 제고, 금융소득 과세 합리화를 달성하지 못하고 고액 투자자의 세 부담만 덜어줘 세수 감소에도 일조할 것”이라며 “금투세 폐지를 마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책인 양 국민을 오도하고 선거에 이용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금투세와 함께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될 대목은 ‘대주주’ 자격의 완화이다. 이 또한 감세와 직결되기에 세수 부족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10억원 이상 보유한 투자자는 ‘대주주’ 자격으로 양도차익에 대해 20%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2023년 12월 26일 주식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완화했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는 윤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 공약이었지만, 아직까지 시행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최 후보자가 그동안의 여야 합의를 무시하고, 지난 1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실상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 방침을 공식화했고, 기재부는 이틀 뒤 예고 없이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였다.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인 대주주 요건이 현행 종목별 ‘10억 원 이상’에서 ‘50억 원 이상’으로 상향은 양도세 과세 대상 대주주는 현재보다 70% 정도 급감하게 되며, 대주주는 1만 3368명에서 4161명으로 9207명(68.9%) 줄어든다. 앞으로 종목당 10억 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 9200여 명은 주식을 팔아 수억 원대 수익을 내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게 된다.

그간 정부는 2000년 100억원이었던 대주주 과세 기준을 2013년 50억원, 2016년 25억원, 2018년 15억원, 2020년 10억원으로 점차 낮춰왔다. 금융투자소득세제를 무리 없이 연착륙시키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시행 이전에 10억원인 현행 대주주 기준을 더욱 낮춰야 하는 것이 순리겠지만 이번에 오히려 대폭 올려버렸다. 

사진: 정부가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발표 직후 같은 입장을 공식화했다.
사진: 정부가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발표 직후 같은 입장을 공식화했다.

연말마다 큰손들이 대주주 지정을 피하려고 주식시장에 매물을 쏟아내서 개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너무나도 궁색한 변명이다. 대주주 투매로 인한 일시적인 주가 하락은 개미투자자에게 오히려 좋은 저가 매수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대주주 여부와 관계없이 자본이득에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제가 예정대로 내년에 시행되면 대주주 지정을 피하려 주식을 투매하는 현상은 어차피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는 데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유권자는 겨우 9천여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자 감세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낙인이 찍혀 총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와 함께 금투세는 장기간 논의된 세제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어느 정도 예상하는 방향이 있었는데 충분한 설명 없이 방향을 급선회하면 그것만으로 시장에 불확실성을 야기할 수 있다. 당장 시급한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전문적인 논의를 거쳐 존폐를 결정해야 한다. 정부의 거듭된 돌발 정책 발표는 총선을 앞둔 ‘표퓰리즘’이라는 지적을 피해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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