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갑진년이 저물고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아왔다.

역사는 돌고 돈다. 1905년 을사년엔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되고 통감부 설치로 인해 행정권도 상실,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전락한 을사 보호 조약이 체결됐다.

당시 나라가 어수선하고 슬픈 분위기를 빗대어서 ‘을사년스럽다’는 말이 나왔고 이 말이 변형되어 ‘을씨년스럽다’라는 말로 고착되었다. 새해 들어 전국의 체육관 관장들도 현재의 침체된 분위기를 반영하듯 을씨년스럽다는 말로 많이 묘사하고 있다.

그만큼 경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을사년인 올해도 정치권에서 허구헌날 정쟁만 일삼고 있는 참담한 현실에 비춰볼 때 새롭고 힘차게 시작해야 될 새해가 새롭기는커녕 왠지 우울하고 답답하게, 말 그대로 을씨년스럽게 시작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대한복싱협회 최초의 공식 1호 링아나운서 김종섭 위원
대한복싱협회 최초의 공식 1호 링아나운서 김종섭 위원

얼마 전 필자와 친형제처럼 지내는 대한복싱협회 이용장 심판위원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 지난해 어느 날 대한복싱협회가 발족된 지 백년사에 최초로 '공식 1호 링아나운서'로 경주 출신의 김종섭 심판위원이 임명되어 최찬웅 대한복싱협회 회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는 희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듣자 수년 전 대한복싱협회 심판위원 김종섭 위원을 경기장에서 만나 오랜 시간 동안 담화를 나눈 지난날의 추억이 문득 스쳐 간다.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는 청록파 시인 박목월을 비롯, 황순원과 함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김동리, 그리고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저술한 유시민 작가의 탄생지이다.

두체급 세계챔프 최점환과 김종섭 심판위원(우측)
두체급 세계챔프 최점환과 김종섭 심판위원(우측)

김종섭 위원과 대화 속에서 필자는 경주시가 이청준, 한승원(한강의 부친), 송기숙, 이승우 등 명망 높은 작가들을 배출한 장흥과 견줄 만한 문학의 고장이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60년 11월 경주 태생의 김종섭은 경주 상고(현 경주정보고) 재학 시절 정창구, 김윤헌과 삼각편대를 형성, 복싱 불모지 경주를 복싱의 고장으로 발전시킨 선구자다.

이 세 명의 복서는 전국체전, 대통령배 대회 등에 경북 대표로 출전 메달을 획득하면서 위용을 과시했다.

특히 김윤헌은 1982년 동아대 재학 시절 대학선수권 라이트급에서 우승과 함께 최우수복서(MVP)로 선정되면서 기염을 토했고, 플라이급에 출전한 정창구는 1978년 학생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문성길(목포 덕인고)을 꺾고 결승에 진출, 비록 권채오(천호상전)에게 판정패를 당했지만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 자리를 빌려 오래 전 교육자로 근무하다 타계한 김윤헌 선배의 명복을 빈다.

이들과 어우러져 전국선수권 대회 등 각종 대회에 라이트 플라이급으로 출전 빠른 스피드를 이용, 4차례 준결승에 진출해 천금 같은 동메달을 획득 복싱 불모지 경주상고 를 부각시키는 데 한 축을 담당한 복서가 바로 김종섭이다. 

여담이지만 경주상고 복싱부는 이들 3명의 복서가 졸업한 1980년 4월, 최점환이란 걸출한 복서가 혜성처럼 등장, 그해 10월 전국체전 코크급 결승전에서 전남 대표 허영모를 꺾고 우승과 함께 4관왕을 달성, 경주상고 돌풍을 몰고 왔었다.

경주상고 졸업 후 해병대(439기)를 만기 전역한 그는 산업 전선에서 활동하다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복싱계에 컴백, 1992년 경북 심판 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리고 이듬해 공명정대한 포청천으로 명성을 얻으면서 경북 최우수 심판상을 수상한다.

이를 발판으로 1996년 경상북도 심판위원장에 올라 6년간 경북복싱이 전국 상위권을 유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임기가 끝나고 나서는 2004년 경북 안동에서 치러진 전국선수권대회에서 타임 키퍼로 변신, 마이크를 잡는다.

이용장 심판위원과 김종섭 링 아나운서(우측).
이용장 심판위원과 김종섭 링 아나운서(우측).

성실성을 인정받아 대한복싱협회 운영위원으로 등용되어 활발하게 활동한 김종섭은 2006년 제87회 전국체전에서 경북대표팀 주무로 참가, 경북대표팀이 종합 2위를 차지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를 전환점으로 2007년 김성은 회장 재직시절 대한복싱협회 심판 자격증을 취득, 중앙무대에 본격적으로 입성한다.

2010년 국내에서 처음 개최된 W.S.B(월드 시리즈 복싱)이 개최되었을 때 행정을 담당, 깔끔하게 일 처리를 하면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복싱방송팀장>이란 중책을 맡아 일익을 담당했다.

그리고 그해 7월 복싱이론에 몰입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급하는 경기지도자 2급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2014년 세계여자선수권(제주) 대회, 2015년 세계군인선수권(문경)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링 아나운서로 발탁되어 왕성하게 활동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2022년 6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주최하는 체육지도자 자격검정실시 구술시험의 심판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그렇게 그는 20년 동안 대한복싱협회 임직원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김종섭 위원이 1994년 그의 나이 34세 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전치 16주 부상을 입고 14개월 만에 퇴원한 지체장애인이란 점이다.

일주일간 대수술을 받고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극적으로 깨어난 그는 이런 신체적 핸디캡을 복싱을 통해 단련된 불굴의 투지와 의지로 극복하고 당당하게 다시 일어선 터라 복싱인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더 그가 자랑스럽다.

김종섭 위원에 관해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은 길고 때로는 고된 순간들이 찾아오며 넘어지는 과정을 누구나 겪게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런 위기가 찾아올 때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찬웅 회장으로 부터 공식 링아나운서 임명장을 받는 김종섭 위원(우측).
최찬웅 회장으로 부터 공식 링아나운서 임명장을 받는 김종섭 위원(우측).

그 긴 세월 동안 음지에서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그는 이에 대한공로로 마침내 2024년 새롭게 출범한 제23대 최찬웅 대한복싱협회 회장에 의해 대한복싱협회 공식 링 아나운서 1호로 인정받아 지난해 4월 울산에서 개최된 제38회 전국 체고 대항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임명장을 받았다. 

1964년 울산 태생의 최찬웅 신임회장은 지난 파리올림픽에 출전권을 획득한 선수들에게 천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했고 올림픽 금메달 1억, 은메달 5천, 동메달 1천만 원의 공약을 한 뒤 이를 실행한 인물이다.

한편 지난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최찬웅 회장에게 임명장을 받기 위해 절뚝거리면서 링에 오르는 그의 모습을 현장에서 감명 깊게 지켜보면서 필자는 가슴이 일순 뭉클해졌다.

지난해 12월 전남 화순에서 벌어진 제12회 한국 실업 복싱협회장배 대회에 참석한 김종섭 위원과 2024년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임애지 양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불현 듯 '최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최초의 공식 <링 아나운서 1호> 김종섭 위원과 함께 등장한 임애지 양 또한 바로 여자복싱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 최초란 상징성을 공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최초이자 최고이고 싶어 한다.

파리올림픽 동메달 임애지선수와 김종섭 링아나운서 (우측).j
파리올림픽 동메달 임애지선수와 김종섭 링아나운서 (우측).j

 ‘최고’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나 ‘최초’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경처럼 최초라는 상징성은 영원불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는 속일 수 없는지 김종섭 위원은 아들도 복서 출신이다. 그의 외아들인 1992년생 김동현 군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수로 출전, 경북 신인대회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시발로 소년체전 경북 대표(라이트 플라이급)로 출전, 호부호자(虎父虎子)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엘리트 복서출신 김동현군과 김종섭부부(우측).j
엘리트 복서출신 김동현군과 김종섭부부(우측).j

경북체고, 용인대를 거치면서 복싱계 명장 곽귀근 감독과 김진표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황금의 체급 밴텀급에서 활약한 김동현은 여러 차례 전국 무대에서 입상, 엘리트 복서로 위용을 과시했다.

김동현 군은 한평생 복싱 외길을 걷는 부친과 달리 현재는 복싱과 연을 끊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끝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라 그리고 그길을 걸어라'라는 오프라 윈프리의 명언을 몸소 실천하면서 복싱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걸어가는 김종섭 대한복싱협회 심판위원의 무궁한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 복싱전문기자
조영섭 복싱전문기자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1980년 복싱에 입문했고 현재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 복싱인이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2018년 서울시 복싱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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