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선수들 이야기

몬트리올 올림픽을 앞둔 황철순
몬트리올 올림픽을 앞둔 황철순

복싱 올림픽 국가대표 출신 황철순 감독과 필자는 사랑했던 날들보다 미워했던 날들이 더 많았던 애증(愛憎)의 관계였다.

리라공고 사령탑을 담당한 그분과 신생팀 용산공고에서 선수들을 지도한 필자는 1989년부터 6년간 각종 대회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필자가 소속된 용산공고는 결정적인 경기에서 억울한(?) 패배를 연례행사처럼 수없이 반복했다.

황철순 감독에 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즉 인탠지블 파워(Intangibie power) 부족도 한몫을 크게 차지했다. 그러나 필자가 1997년 서울체고에 입성해선 전세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반전됐다.

특히 전국체전 서울시 선발전 고등부 12체급에서 서울체고가 10체급을 석권할 때 황철순의 리라공고는 플라이급의 배성호 한 선수만 선발됐고 나머지 한 자리는 미들급의 김정욱(용산공고)이 차지했다.

그때 황 감독이 바퀴벌레 씹은 표정으로 “야! 이제 앞으로 전국체전에 서울체고를 단일팀으로 해서 내보내라”고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돼듯 세상살이도 팽이처럼 돌고 도는 게 우리네 삶인가보다. 1954년 7월 경남 고성 출신의 황철순은 1977년 대한체육회 선정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은 화려한 스펙을 보유한 스타 복서다.

리라공고 감독시절의 황철순.
리라공고 감독시절의 황철순.

1982년 지도자로 변신한 황철순은 비둘기 같은 선량함과 뱀 같은 지략, 호랑이 같은 용맹함을 두루 겸비한 팔방미인 지도자였다.

복싱계 마키아벨리라는 별명처럼 그는 뛰어난 용병술을 발휘, 소속팀 (리라공고, 서울시청)을 정상권에 올려놓았던 명장 중에 명장이었다. 그런 화려한 이력을 보유한 황철순은 1969년 배명중 재학시절 야구선수 출신이었다.

그때 같이 운동했던 동료가 바로 국가대표 출신의 전 LG 트윈스 야구 감독 이광은이다.

그러나 야구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황철순은 1970년 복싱으로 전환, 1972년 전국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주목을 받는다.

1973년부터 고교생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국제무대에 출전한 그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은메달,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8강, 1977년 10월 아시아선수권 최우수선수,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1979년 킹스컵과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우승 제1회 뉴욕월드컵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간판 복서로 활약했다.

한편 1955년 서울태생의 이광은 선수는 2년 전 복싱 대통령 장정구 챔프의 소개로 필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LG 트윈스에서 활약하던 시절의 이광은(중앙)
LG 트윈스에서 활약하던 시절의 이광은(중앙)

그리고 작년 봄에 이광은 감독 모친상에 장정구 챔프, 박치순 호텔 인트라다 회장과 동반 참석 빈소에서 누님인 국가대표 농구선수 이옥자 님과 신동파 농구 감독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날 빈소엔 나의 친구이자 이광은 감독의 연세대 후배인 조계현도 참석하여 조의를 표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지켜본 이광은 감독은 친형님같이 편하고 자상하신 분이다. 

배재고 시절 그는 하기룡과 신언호와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 팀을 정상권으로 끌어올리면서 김일권, 양종수(군산상고), 권영호(대건고), 김용희(경남고), 장효조(대구상고), 박상렬(동대문상고)과 함께 고교대표팀에 뽑혔다.

특히 그해 벌어진 제28회 청룡기 야구대회에서 패자 부활전 준결승(군산상고)까지 5일 연속 59이닝을 던지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까지 치면서 고군분투했다.

그야말로 일당백(一當百)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패자 부활전 15회 배재고 투수 이광은은 군산상고 톱타자 김일권에게 15회 통한의 결승타를 맞고 2ㅡ1로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대회에서 이광은은 감투상을 받았다. 그해 12월 축구와 야구등 일부종목은 일부 대학팀이 올해 고교를 졸업하는 우수선수를 둘러싸고 치열한 스카웃 싸움을 벌인 해였다.

축구의 박종원(경신고) 허정무(영등포공고) 야구의 이광은(배재고)이 주인공이다. 연, 고대의 치열한 스카우트 열풍 끝에 1974년 이광은은 연세대에 입학한다, 그리고 맞이한 졸업반인 1977년 신입생 투수 최동원이 입학한 연세대는 이광은, 김봉연, 박해종, 양세종, 정진호로 연결되는 미사일 타선으로 연세대는 4관왕을 휩쓸었고 이때 최동원은 기록적인 23연승을 기록했다. 대학야구에서 연세대학 최고의 전성기로 기억되는 한해였다. 이광은 감독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79년 포항제철팀 소속으로 실업리그에서 타격 1위인 4할 6리를 기록 (타격왕)을 차지했으며 이후 공군에 입대 김재박 천보성 김정수 등과 화모니를 이루면서 대립각을 세운 장효조 김시진 서정환 김용철이 포진된 맞수 경리단과 각축전을 벌이면서 팀을 정상권에 끌어올렸다. 

2000년 LG 트윈스 감독시절의 이광은.
2000년 LG 트윈스 감독시절의 이광은.

1982년 LG 전신인 MBC 청룡에 입단하여 은퇴할 때까지 4차례나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한 이광은은 1986년 타격 3위에 타점과 홈런 4위 프로야구 최다 안타왕에 올라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고 1987년엔 최다 득점왕에 올라 2년 연속 타이틀 보유자로 등극 위용을 과시한다.

5툴 플레이어의 원조격인 이광은은 1990년 LG가 한국시리즈에서 LG가 우승을 차지할 때 팀 고참으로 리더쉽을 발휘 우승에 일조한 만능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2000년에는 MBC, LG 선수 출신으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현역시절 원조 호타준족에 타고난 재능에 성실한 노력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이광은 감독의 누님은 가드의 전설로 불리는 이옥자 님이다.

국가대표 농구선수 이옥자선수
국가대표 농구선수 이옥자선수

그녀는 1952년 서울출생으로 무학여중, 숭의여고를 거쳐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시절 5년간 농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면서 코트의 마술사로 불린 선수였다.

이옥자님 역시 동생 이광은처럼 운동 DNA를 타고난 선수였다. 163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찬스 포착에 뛰어난 두뇌 플레이어로 특히 인터셉트가 발군이었다.

박찬숙, 조영란, 정미라, 조영순, 강현숙 등과 어우러지면서 대표팀의 한축을 담당한 이옥자 님은 1970년 FIBA U-18 아시아 농구선수권 금메달 72년 제4회 아시아선수권(대만) 금메달, 73년 모스크바 유니버시아드, 74년 아시아 여자선수권 금메달 제7회 테헤란 아시안게임 은메달, 75년 제7회 콜롬비아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 76년 아시아선수권 은메달을 획득 국위를 선양했다.

 1978년 이옥자 님은 은퇴 후 숭의여고 용인 대학 감독 생활을 거쳐 2004년 일본 여자농구 샹송 화장품팀을 맡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대표팀코치로 발탁된 그녀는 2007년에 한국여자농구 대표팀을 아시아선수권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태릉선수촌 지도위원을 거쳐 마침내 2012년 구리 KDB 생명이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1998년 출범한 여자 프로농구 사상 첫 여성 감독 1호가 되었다.

이옥자님의 화려한 농구 스펙이 동생 이광은보다 더 화려한 선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1973년 국가대표 선발전(플라이급)에서 김충배를 꺾고 국가대표에 발탁된 황철순은 필자와 담화에서 태릉 선수촌에서 훈련할 때 이옥자 님이 동생(이광은) 친구라는 인연 때문인지 황철순과 얼굴을 마주치면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회고했다.

스포츠 잡지 표지모델로 등장한 이옥자선수
스포츠 잡지 표지모델로 등장한 이옥자선수

 이옥자 님과 황철순 선수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 농구 국가대표와 복싱 국가대표로 출전하였는데 이옥자 님의 한국여자농구팀은 중국의 장벽에 막혀 은메달을 복싱의 황철순 선수는 밴텀급 결승에서 북한의 구영조에 아깝게 판정패,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훗날 농구의 조영순은 축구의 김재한과 결혼하며 국가대표 커플 1호를 장식하였다.

그리고 복싱의 황철순은 조혜정, 심순옥, 유경화, 변경자와 함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배구 국가대표로 출전해 사상 최초로 구기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정순옥과 결혼하면서 국가대표 커플 2호를 기록했다.

어느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이라 말했다. 고희를 훌쩍 넘은 70년대 사각의 링(황철순)과 농구코트(이옥자) 그리고 그라운드 (이광은)에서 맹활약한 스타플레이어들의 지난 화려한 플레이를 집중조명 추억하면서 이번 주 스포츠 칼럼을 마무리한다. 

글쓴이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1980년 복싱에 입문했고 현재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 복싱인이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이 지속가능한 저널리즘을 만듭니다.

정기후원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