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는 11월 남양주 복싱협회 회장에 취임할 박영배 차기 회장을 취재하기 위해 구리복싱 김민기 관장과 동행, 남양주시 마석역에서 그를 만났다.

박영배 회장과 김인창관장(우측).
박영배 회장과 김인창관장(우측).

박 회장과 필자와 첫 인연은 지난 7월 남양주시 퇴계원읍 다목적회관에서 개최된 생활 체육대회에서 김인창 덕현 체육관 관장의 소개로 이뤄졌다.

1963년 이 고장 남양주시 태생의 박 회장은 1979년 서울체육관 (관장 김경선)에서 복싱을 시작한 복서 출신이다.

서울체육관은 그해 신인왕 출신 안상렬을 비롯 아마츄어 국가대표 출신의 조인주(동국대) 윤승희 (경희대)를 배출한 체육관이었다.

박 회장은 이 체육관 에서 운동하면서 2년 선배 안상열의 도움으로 복싱의 기본을 체계적으로 배워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 1961년 7월 경기도 이천 출신의 안상열은 1979년 제9회 MBC 밴텀급 신인왕 결승에서 배덕환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테크니션이었다.

안상렬과 호흡을 맞추며 그의 전담 스파링 파트너로 활약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 급성장을 이룬 박 회장은 여러 차례 대회에 나가 9전 7승(4KO) 2패의 준수한 성적을 일궈내자 복싱 명문 한영고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다. 

구리복싱 김민기관장 남양주 복싱협회 박영배회장(우측)
구리복싱 김민기관장 남양주 복싱협회 박영배회장(우측)

당시 남양주시에서 일반 학교에 다니던 박영배는 1980년 한영고에 2학년으로 편입(編入) 본격적인 선수 생활에 들어간다. 박영배는 한영고 재학시절 5차례 전국대회에 밴텀급과 페더급에 출전했지만 4차례나 메달권에서 탈락한다.

절치부심(切齒腐心) 한 박영배는 1981년 7월 전국체전 선발전에 출전 페더급 결승에서 오른다. 그러나 준결에서 당한 손목부상에도 굴치 않고 서울체고 정유성과 치열한 타격전을 펼쳤지만 3ㅡ2로 패하면서 본선 진출이 좌절되자 그는 미련 없이 31전 22승 (8KO) 9패를 전적을 훈장처럼 남기고 복싱계를 떠난다.

서울체고 정유성은 안영수 이해정 방승현과 함께 서울체고가 전국 무대를 재패할 때 주축선수였다. 복싱을 하면서도 공부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박영배는 2년 후 경희대 체육학과에 84학번으로 당당히 합격 지난날의 복서 생활의 아쉬운 미련을 깔끔하게 털어낸다. 

이후 사업가로 변신 탄탄하게 기반을 구축하자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으로 11월 남양주시 복싱협회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40년 만에 복싱계에 컴백 하게 된다. 그가 남양주시 복싱협회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남양주시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김인창 김종원 두 선배의 격려가 큰 힘으로 작용했다.

박영배 회장의 한영고 직계선배인 이들은 침체기에 빠진 남양주시 복싱발전을 위해 매사에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일처리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박영배를 회장으로 추대하는 승부구를 던진 것이다.

필자는 박 회장과 담화를 나누면서 복싱에 대한 그의 폭넓은 식견과 혜안(慧眼)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와 난 한영고 출신 복서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열거하면서 지난 추억을 공유했다.

1976년 킹스컵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박찬희 와 조철제전무(좌측부터)
1976년 킹스컵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박찬희 와 조철제전무(좌측부터)

 한영고 복싱 역사의 선두주자는 박찬희다.

1957년 3월 대구태생의 박찬희는 선린중 3학년때 동신 체육관에서 복싱을 수학하다 김남수 선배의 도움으로 1973년 한영고에 입학하면서 한영고 찬란한 복싱 역사가 펼쳐진다.

그해 서울 신인과 전국신인을 재패한 박찬희는 1974년 4월 테헤란 아시안게임 선발전 라이트 플라이급 결승에서 육군대표 김치복을 꺾고 17세 1개월 만에 국내 복싱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에 발탁된다.

그리고 본선에서 홈링의 이란 선수를 샌드백 때리듯이 일방적으로 난타하면서 판정승 대망의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 금메달은 1958년 동경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기수(성북고)에 이어 2번째로 탄생한 고교생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1975년 전국체전 플라이급 결승에서 전북 대표 김완수(군산동고)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듬해 복싱 명문 부산 동아대학으로 진학한 박찬희는 그해 킹스컵 복싱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최우수복서(MVP)로 선정되었다.

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인창과 황충재(우측부터).
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인창과 황충재(우측부터).

박찬희의 바통을 이어받은 복서가 동갑내기 김인창이다. 박찬희의 한영고 1년 후배인 김인창은 졸업반인 1976년 제26회 학생선수권 제6회 대통령배를 비롯 4관왕을 달성한다.

1977년 한국체대 1기로 당당하게 입학한 김인창은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라이트급에서 한국체대 1년 후배 황충재(웰터급) 와 함께 동반 금메달을 획득 한국체대 복싱 감독 박형춘 선생의 지도에 보은(報恩)한다. 탄력을 받은 김인창은 이후 국제대회 3관왕을 달성 국제적인 스타로 급부상했다. 

김인창의 바통을 이어받은 복서는 그의 1년 후배 장흥민이다. 1957년 부산태생의 장흥민은 1975년 한영고에 입학 그해 개최된 제7회 전국 신인대회 코크급 결승에서 서울체고 김철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김철규에 판정승을 거두는 한영고 장흥민(우측)
김철규에 판정승을 거두는 한영고 장흥민(우측)

1976년 제26회 학생선수권 1977년 제 1회 김명복배를 차례로 석권한 왼손잡이 복서 장흥민은 그해 벌어진 대통령배 결승에서 국가대표 마수년과 격돌 판정승을 거두면서 성인무대를 접수한다. 1978년 한국체대에 진학한 그는 1980년 전국체전에서 전국대회 3관왕 출신 조종득을 판정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 실력을 재검증받는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선발전에 출전한 장흥민은 홍진호 장정구 김명환 홍동식을 박대천 역대급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라이트 플라이급을 평정 모스크바 올림픽 대표로 발탁된다. 장흥민의 바통을 이어받은 복서가 1960년 12월 강원도 화천 출신의 장한곤 이다. 1977년 한영고에 입학한 라이트 미들급의 장한곤은 1978년 제28회 학생선수권 우승 1979년 제1회 세계청소년 선발대회 우승을 차지한 1960년 강원도 화천 출신의 복서다. 

본선(일본)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1980년 한국체대에 진학한 장한곤은 1983년 제6회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금메달과 그해 제1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 국위를 선양했다.

아시안게임 복싱 국가대표 장한곤 감독
아시안게임 복싱 국가대표 장한곤 감독

이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2천년 제29회 전국소년체전에서 인천팀을 이끌고 출전 기록적인 5체급을 석권 종합우승을 차지하면서 주가를 올렸다.

그리고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출전 한국 여자복싱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오연지를 전담 조련 지도력을 검증받았다.

특히 남자 7체급 여자 3체급 등 총 10명이 출전 오연지 한명이 유일한 메달을 목에 걸었던 대회여서 장한곤의 탁월한 지도력이 새삼 돋보였다.

한영고는 이들 명복서 이외에도 1977년 아시아 선수대회(일본)에서 황철순을 꺾고 국가대표(밴텀급)로 발탁된 임병진(중앙대)을 비롯하여 김명복배 최우수상을 받은 오경묵과 청소년 대표 원점도(홍익대) 전국선수권대회 우승자 김종원과 김종선(이상 한국체대) 학생선수권 3연패를 달성한 이방헌 아시아선수권 금메달을 획득한 유장현(동국대) 킹스컵 대회 동메달리스트 양설석(경희대) 프로복싱 동양 웰터급 챔피언 박정오 한국웰터급 챔피언 김찬수 전(前) 서울복싱연맹 심판위원장 방윤석등 숱한 명 복서들이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 들처럼 반짝반짝 쉼 없이 탄생했다.

추억이 묻어난 한영고 복싱팀 복서들 지난날의 추억을 반추하면서 그들의 건승을 바란다.

복싱전문기자 조영섭
복싱전문기자 조영섭

글쓴이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1980년 복싱에 입문했고 현재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 복싱인이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2018년 서울시 복싱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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