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현충일) 오전 모처럼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SM 체육관 22관을 방문 김주원 관장과 함께 담화를 나눴다.

91년생 트리오 김동희 김주원 김기만 관장(좌측부터)
91년생 트리오 김동희 김주원 김기만 관장(좌측부터)

1991년 1월 서울태생 김주원은 드라마틱(Dramatic)한 인생 역경을 딛고 반전에 성공한 복싱 인이다. 김주원은 2009년 서일대학교 재학시절 홍성민 대표가 운영하는 SM 체육관 본관(양천구 목동)에서 홍 대표의 지도를 받으며 2012년 서울 신인대회 (라이트헤비급)에 출전 우승을 차지한 복서다.

이때 그는 홍성원 관장이 운영하는 SM 2관(등촌동)에서 사범 생활을 병행하면서 제2의 박종팔 백인철 챔프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2016년 MBC 신인왕전에 슈퍼 미들급으로 출전한다. 하지만 4회 판정패를 당한다. 이때 그는 패배의 분함을 참지 못하고 체육관을 박차고 나가면서 방황 생활이 시작한다. 당시 그는 임대주택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5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모친은 1급 지체 장애를 입어 기초 생활 수급자로 선정되어 국가에서 지급하는 수급비용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극한 상황에 쳐하자 그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으로 SM 체육관 본관을 찾았다.

홍성민 SM 대표(정중앙)와 SM관장분들
홍성민 SM 대표(정중앙)와 SM관장분들

홍성민 대표에게 염치불구하고 인사를 올리자 홍 대표를 너그럽게 그를 받아주면서 본관(목동)에서 사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였다. 홍 대표도 15살 어린 김주원을 보면서 군 재대 후 딱히 할 일이 없던 1997년 어느 날 생수 배달과 변정일 챔프가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사범 생활을 하면서 힘겹게 생활한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을 것이다. 초창기 풍파(風波)를 딛고 홍 대표는 2004년 시드머니(Seed money)를 모아 현재 강서구 목동에 SM 본관을 차려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고 정확히 20년의 세월이 흘러 현재는 수도권에 24개의 SM 체육관을 창설 대한민국 복싱체육관 체인업계의 총수(摠帥)로 변신했다. 그곳에서 김주원은 성실하게 트레이너수업을 받으면서 1년이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2018년 9월 어느날 강동구에서 SM 체육관을 운영하는 K모 관장이 체육관을 매각(賣却)할 상황에 봉착(逢着)하자 홍 대표는 주저 없이 인수자로 김주원을 선택한다. 

SM10관 김중연(좌측)관장과 김주원 관장(우측)
SM10관 김중연(좌측)관장과 김주원 관장(우측)

당시 김주원은 SM 본관에서 1년간 트레이너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은 단돈 2천만 원이었다. 그러나 홍 대표의 주선으로 부족한 자금은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갚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체육관을 인수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다. 꽃은 가장 절박할 때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고 한다. 김주원도 극한 상황에서 굴이 무너져 갱(坑)속에 갇혀버린 광부가 목슴을 걸고 곡괭이를 휘두르듯 글을 썼다는 프랑스 문학계의 거장(巨匠)으로 불리는 오노레드 발자크의 말처럼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열정적으로 회원들을 지도한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을 흘렀다. 김주원 관장의 헌신적인 지도로 관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그는 모든 채무를 기적적으로 탕감 빚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지금도 그는 홍 대표의 자상한 배려에 의해 바닥에서 탈출 할 수 있었다 회고한다. 

인생에서 누굴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 파리의 뒤를 쫓으면 변소주위만 돌아다닐 것이고 꿀벌들 뒤를 따라다니면 꽃밭에서 노닐 것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처럼 성공한 사람 옆에 딱 붙어 배우고 익히면 같은 사람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성공한 사람을 식별(識別)할수 있는 프레임을 가져야한다. 생활이 안정된 2021년 12월 그는 지금의 아내 정지윤 씨를 만나 결혼식을 올린다. 2023년 3월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다.

SM체육관 4개를 운영하는 김주원 관장.
SM체육관 4개를 운영하는 김주원 관장.

김주원은 자신이 경영한 강동구 체육관에서 사범으로 근무했던 전 KBF 한국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출신 김동희 사범에게 구로구 디지털단지 부근에 SM 체육관 15관을 창설 운영권을 맡긴다. 김동희 관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세심한 지도력으로 엄청난 매출을 뿜어 올리면서 보은(報恩)한다. 탄력을 받은 김주원은 그해 9월 강동구 길동에 SM 19관을 설립했다. 그리고 4월에는 명일동에 SM 22관을 개관 대구체고와 경운대에서 복서 생활을 한 김기만 관장을 영입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대구 덕화중과 대구 체중에서 선수들을 지도한 김기만 관장이 합류하자 김주원은 용이 날개를 탄 파죽지세의 행보를 지속적 으로 이어가고 있다. 김주원 관장은 금강불괴(金剛不壞)와 같은 강한 멘탈로 무장하고 홍성민 대표가 걸어간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현역복서로 활동할 당시의 김주원선수.
현역복서로 활동할 당시의 김주원선수.

이채로운 점은 김주원 관장을 중심으로 김기만 김동희 관장 그리고 금천구에서 SM 복싱 10관을 운영하는 김중연 관장 등 4명의 관장이 모두 1991년에 탄생한 33세의 젊은 관장이란 점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도 나이 33세에 그리스를 넘어 페르시아와 인도에 이르기까지 대정복의 야망을 펼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듯이 이들도 복싱계에 귀감(龜鑑)이 되는 이정표를 남기길 기대한다. 이들 중 선두주자인 김주원 관장은 수년 전 파주 운정에 34평 APT를 매입했고 현재 암사동 중앙하이츠 APT에 거주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있다. 4명의 관장들을 보면서 느낀점은 모두 에너지가 넘치는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지도자란 점이다. 김난도 작가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에 이런 내용의 글이 나온다, 꽃은 저마다 피어있는 시기와 기간도 다르다. 

김주원 관장과 모친 김효정 여사(좌측)
김주원 관장과 모친 김효정 여사(좌측)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동백은 동백대로 자기가 피어야 하는 계절이 따로 있다. 이글처럼 꽃들이 저마다 조바심을 내지 않고 자신의 때를 기다렸다가 순차적(順次的) 으로 피어나듯이 4명의 관장 들도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면 적합한 시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원하는 퍼즐이 맞춰 지리라 생각한다. 김주원 관장을 지켜보면 겸손하면서 밝은 모습을 갖춘 관장이다. 언뜻 보기엔 별다른 노력 없이 성공한 관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호수에 우아하게 보이는 백조와 같은 존재가 바로 김주원 관장이다. 호수 밑에 화려한 백조의 모습 물밑에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부지런한 발동작이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간과(看過) 해선안된다. 오늘도 초연한 자세로 복싱 일선에서 심혈을 기울이며 선수지도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SM 체육관 김주원 관장을 포함한 일선 관장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조영섭 복싱전문기자
조영섭 복싱전문기자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1980년 복싱에 입문했고 현재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 복싱인이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2018년 서울시 복싱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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