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천안에서 귀한 손님이 필자가 거주하는 강동구를 방문하였다.
주인공은 투타임 동양 챔피언을 역임한 대광건설 정순현 회장이었다. 방문 목적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두 딸이 사위와 함께 7년 만에 귀국, 만남의 장소로 강동구를 택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강동구에는 정순현 챔프의 중학 동창이자 (사)대한민국 방송 코미디언인 김학래 회장과 임미숙 부부가 운영하는 정통 중식 요리집인 차이나 린찐이 있어 그곳에서 필자와 함께 만남을 가졌다.
1952년 천안 태생의 정순현은 복싱사상 대표적인 비운의 복서다. 1978년 11월 12일 정순현은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복싱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 매치에서 눈 부상의 핸디캡을 무릅쓰고 선전했으나 견고한 가드에 송곳 같은 스트레이트로 무장한 챔피언 카르도나에게 15회 2ㅡ1 판정패를 당했다.
콜롬비아 국적의 챔피언 카르도나의 인접국인 베네주엘라의 루이스 슬브란 이란 사람이 케스팅 보트(Casting vote) 역할을 하는 주심으로 배정된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당시 4회 기습적인 원투 공격으로 팽팽한 균형을 깬 정순현은 6회 눈 부상에도 불구하고 9회 결정적인 카운터를 성공시키면서 상대를 압박, 3포인트 정도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판정패가 선언되자 격분한 관중들에 의해 한여름에 때아닌 우박이 쏟아지듯 소줏병이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험악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카르도나는 링 바닥으로 숨는 촌극을 연출했다. 잠시 후 분함을 참지 못한 트레이너 김준호 선생은 가위를 들고 링에 올라 주심 루이스 슬부란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홈 링에서 억울한 판정패를 당한 정순현의 패배는 지난 1976년 8월 WBC 슈퍼밴텀급 타이틀전 염동균 대 리아스코전, 1976년 10월 WBA 밴텀급 타이틀전 홍수환 자모라전에 이은 한국에서 발생한 3번째 경기장 소동(騷動)이었다.
결국 WBA(세계권투협회)는 정순현 측 제소가 받아들여 7개월 후 같은 장소에서 정순현은 카르도나와 재대결을 벌인다.
정순현은 카르도나와 벌인 재대결에서 1차대전 모습이 담긴 필름을 도돌이표처럼 다시 보는듯한 경기를 펼쳐 또다시 판정패를 당한다.
이번 경기도 콜롭비아 인접국인 베네주엘라와 파나마 심판이 부심으로 배정되어 긴 한숨을 토해내면서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마 프로를 막론하고 심판 판정은 공명정대 해야 한다. 왜냐면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이 왜곡 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정순현은 1983년 복싱계를 떠나 사업가로 변신했고 비슷한 시기에 중학 동창인 김학래 회장은 미사리에서 <루브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때 정순현 챔프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으로 김학래 회장이 운영하는 카페를 왕림하면서 활발한 교류를 가졌다.
세월이 흘러 정순현 챔프가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대광건설 회장을 역임하면서 상호 간에 왕래가 뜸했지만, 지난 주말 정순현 챔프가 가족 모임을 통해 김학래 회장과 오랜만에 해후를 하였다.

학창시절 정순현 챔프 성품에 대해 묻자 김학래 회장은 그 친구는 책가방에 복싱 글러브를 가져와 교실에서 친구들과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활발한 성격의 친구였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에 대해 정순현 챔프는 조용한 성품의 학래는 한마디로 공부 잘하고 예절 바른 모범생이었다고 말하면서 방송계로 진출해 석사(碩士) 출신 희극배우로 톱스타 반열에 오를 줄은 전혀 몰랐다고 화답했다.
김학래 회장은 개그프로그램이 시청률 40% 이상 장악하던 80년대에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괜찮아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여” 등 구수한 입담으로 숱한 유행어를 제조, 큰 인기를 누렸던 방송인으로 2015년 제6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또한 김 회장의 부인 임미숙 여사도 당대 최고의 개그프로그램인 <쇼 비디오 자키>뿐만 아니라 수많은 CF에도 출연, 미녀 개그우먼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건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김학래 회장은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 주변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차이니스 레스토랑을 비롯한 사업체가 번창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초창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로 인해 사업에 부침(浮沈)을 겪었지만 실패 원인을 분석 개선해나가면서 한올 한올 쌓아 올린 공든탑 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정순현 챔프 역시 초창기에 4전째에 한국타이틀전에서 최영철에게 10회 판정패를, 9전째 동양 타이틀전에서 필리핀의 릭 퀴하노에게 12회 판정패를 당했지만 이런 뼈아픈 경험을 디딤돌삼아 훈련에 박차를 가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제거하면서 8연승(6KO)을 거두면서 다크호스로 급부상 포스트(post) 홍수환으로 주목받았다.
두 분의 삶을 통해 필자는 세상이 중력과 물리적인 법칙들에 의해 작동하는 것처럼 스포츠를 포함한 우리네 삶도 정신적인 법칙들에 의해 상황이 반전(反轉)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한편 필자가 김학래 회장에게 색다른 주제로 충청도에는 매죽헌 성삼문을 비롯, 단재 신채호 만해 한용운, 고균 김옥균, 백야 김좌진, 월남 이상재 그리고 유관순 열사 등 위대한 인물들이 대거 탄생한 고장이라 말하자 김학래 회장은 우리 고장 충청도는 최양락, 김정렬, 이영자, 최병서, 남희석, 서경석, 임하룡 등 희극배우들도 많이 배출한 고장이라고 첨부했다. 1953년 12월 천안 태생의 김학래 회장은 정순현 챔프의 표현대로 건실한 성품으로 1977년 2월 홍익대학 정밀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특채로 데뷔,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정순현은 그의 친구 김학래 회장의 방송인으로 첫출발을 축하해 주기라도 하듯 그해 7월 벌어진 복싱사상 최대의 이변으로 불리는 올림픽 대표 출신의 고생근과 맞대결 9회 KO승을 거두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9전 7승 2패의 전적에 단 한 차례의 KO승도 없는 신출내기 정순현과 24전 22승(14KO) 2패를 기록한 거물급 복서 고생근과의 대결은 마치 염소와 표범의 대결로 압축 표현할 만큼 정순현은 절대적인 열세였다.
이 경기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 고생근은 이후 녹슨 전차로 전락, 1년 9개월이 지난 1979년 4월 조지탐 전을 끝으로 링을 떠났다. 반면 정순현은 1979년 현역생활을 연장하면서 결혼과 함께 잠실5단지 APT를 매입하고 슬하에 2녀를 두었다.
1982년생인 정지희 양과 1989년생인 정민기 양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국내외 유수(有數)의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생활하다 현지에서 결혼 현재 뉴욕과 뉴저지주에서 각각 생활하고 있다.
큰사위인 이경태는 1976년 경기도 광주태생으로 수원에 본사를 두고 있는 삼성전자 직원으로 현재 미국 내 삼성전자 지사 부장이란 막중한 직책을 맡으면서 국내외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둘째 사위 김택용은 1987년 중국 연변 태생으로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이색적인 중국인이다. 연변은 중국 내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 때문인지 둘째 사위 김택용 군에게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중국의 엘리트 집안 출신의 김택용은 현재 뉴욕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1983년 정순현 챔프는 은퇴를 한다. 그리고 인생 2회전을 반전의 기회로 삼고 챔피언에 등극하지 못한 한풀이를 하듯 사업에 몰두, 성공한 복싱인으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 대인관계도 원만한 정순현 챔프는 방송인 김학래 회장을 비롯 송기윤, 이계인 등 중견 탤런트분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고희(古稀)가 훌쩍 넘은 나이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변함없는 학창시절 감미로운 추억을 간직한 코미디언 협회 김학래 회장과 정순현 챔프 두 분의 변함없는 우정에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글쓴이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1980년 복싱에 입문했고 현재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 복싱인이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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