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사무총장

우리는 초기 혁신가와 얼리어답터 시장을 넘어 대중 시장으로 본격 확산되기 위한 성장통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결정적 기로에 서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산업계가 단기적 시장 상황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전기차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 방향을 재정립하고 총력전을 펼쳐야 할 때다.
캐즘(chasm)의 주요 원인으로는 여전히 높은 초기 구매 가격, 부족하고 불편한 충전 인프라, 그리고 한정된 보급형 모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글로벌 전기차 산업 정책은 다음의 세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전개돼야 한다.
첫째, 소비자 수용성 확대를 위한 전방위적 지원 강화다.
과거와 같은 무차별적인 구매 보조금 지급은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중저가 보급형 전기차 모델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생애주기비용(TCO) 관점에서 내연기관차 대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전 인프라다. 주거지, 직장 등 생활 반경 내 완속 충전기 보급은 물론, 고속도로 휴게소, 도심 주요 거점에는 초고속 충전기를 대폭 확충하여 '충전 불안'을 완전히 해소해야 한다.
충전 시설의 위치, 사용 현황, 예약 및 결제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스마트 충전 플랫폼 구축도 시급하다.
또 중고 전기차 시장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배터리 성능 평가 표준화 및 이력 관리 시스템 도입은 잠재 구매자들의 불안감을 덜어줄 핵심 과제다.
둘째, 공급 혁신을 통한 산업 생태계의 근본적 체질 개선이다.
캐즘 극복의 핵심 동력은 결국 기술 혁신과 가격 경쟁력 확보다. 특히 배터리 기술은 전기차 산업의 '게임 체인저'다.
각국 정부는 차세대 배터리(전고체, 리튬황, 나트륨이온 등)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과감히 늘리고, 핵심 소재 및 부품의 자국 내 생산 기반(미국의 IRA, EU의 핵심원자재법 등)을 강화하여 공급망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비용 절감을 넘어 기술 주권 확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또 완성차 업체들이 다양한 가격대와 성능을 갖춘 전기차 모델, 특히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급형 모델을 적극적으로 출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적 지원도 필수적이다.
사용 후 배터리의 재활용·재사용 기술 개발과 산업 생태계 구축은 원자재 확보 경쟁 완화와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장기적 비전을 담보하는 규제 합리화와 국제 공조다.
2030년대 중반을 목표로 하는 각국의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선언은 이미 강력한 시장 시그널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로드맵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 기업들이 안심하고 장기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전기차 보급 확대로 인한 전력망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마트 그리드 구축, V2G(Vehicle-to-Grid) 기술 상용화 등 에너지 인프라 고도화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나아가 충전 방식, 배터리 규격, 안전 기준 등에 대한 국제 표준화 논의에 적극 참여하여 글로벌 시장에서의 호환성을 높이고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여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힘써야 한다.
전기차 캐즘은 위기가 아닌 더 큰 도약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판도가 결정될 것이다.
각국 정부는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소비자, 산업, 인프라, 그리고 국제 협력이라는 큰 틀 안에서 유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앞당기고 지속 가능한 미래 모빌리티 사회로 나아가는 골든타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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