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발 관세전쟁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미·영 간의 관세협상과 중국에 대한 90일 관세유예 그리고 이후 벌어진 일들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미·영 관세협상의 경우 보편관세 10%는 유지하되 품목관세는 유연하게 한 것이 특징이다. 영국산 자동차에 대해 10만대까지 무관세가 적용됐다. 25%로 매겨졌던 철강·알루미늄, 제트엔진, 항공기 부품 등도 무관세로 타결됐다. 자동차, 제트엔진, 항공기 부품은 영국의 주력 수출품목이다. 대신, 영국은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평균 관세율을 5.1%에서 1.8%로 낮추었고, 미국산 소고기, 기계류, 농산물에 대해서는 시장을 더 열기로 했다. 일부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는 것도 포함됐다.
미·영 관세협상의 의미는 명확하다. 보편관세 10%는 나라에 상관없이 불변이라는 점이다. 최우방국인 영국에조차 예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품목관세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보였지만 모든 나라에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영국은 대미 무역수지 적자국임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2024년 유럽이 미국에 대해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낸 것과 달리 영국은 119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영국은 대미 관세율을 대폭 낮추었고, 미국상품에 대해 더 많은 시장을 개방했다.
그 대가로 통상 연 10만대 정도 수출되는 자동차와 제트엔진 등에 대해 무관세 적용을 받았다. 이들 품목의 대미 수출은 지켰지만, 수입개방 폭도 늘어나 대미 무역수지 적자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 대해 흑자를 내는 나라의 경우 영국보다 더 좋은 협상결과를 얻기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미국과 중국 간의 관세휴전은 예상치 않게 갑자기 이루어졌다. 미국은 145%의 중국에 대한 관세를 30%로 낮추고 중국은 미국에 대해 10% 관세를 부과하는 선에서 90일간 관세를 유예하기로 했다. 이런 깜짝 쇼가 일어난 이유는 두 나라 정상이 모두 급했기 때문이다. 우선 트럼프가 급했다. 자신의 지지율이 다른 미 대통령 집권 초기 지지율과 비교해 역대 최저치인 42%까지 떨어지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대로 관세전쟁을 끌면 내년 11월 상·하원 선거가 불리해질 수 있음을 감지했다.
미국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매우 중요하다. 1년간 힘든 삶을 산 미국인들은 이 시기 쇼핑하는 맛으로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푼다. 만일, 이 기간 매대에서 물건이 사라지고 가격이 폭등하면 이들의 트럼프에 대한 불만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선거는 하나 마나다. 시진핑도 급했다. 두 나라의 휴전조건을 뜯어보면 중국에게 몹시 굴욕적이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 30%는 보편관세 10%에 펜타닐 관세 20%를 더한 것이다. 중국은 누누이 펜타닐 마약을 미국에 수출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 무역은 상호주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펜타닐 관세 20%와 여기에 중국의 대미 관세 10%보다 훨씬 높은 30% 관세를 받아들였다. 미국이 만나자고 해 할 수 없이 나왔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중국도 관세로 인해 자국 사정이 심하게 어려워졌음을 암시한다.
두 관세협상을 통해 트럼프의 향후 행보를 읽을 수 있다. 첫째,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의 관세협상은 조기에 종료하려 할 것이다. 영국에 대한 속도전이 힌트다. 관세로 인한 미국 금융시장 교란도 트럼프가 협상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세 불확실성이 커지자 미국은 국채가격 하락, 달러가치 하락, 금리상승이라는 초유의 일을 겪게 되었다. 특히, 금리상승이 뼈 아프다. 미국은 4월 기준 누적 정부부채가 36조2000억 달러로 미 국내총생산(GDP)의 120% 수준이다. 거대한 부채를 진 만큼 고금리는 큰 짐이다. 4.5%의 기준금리에 못 미치는 4% 금리만 적용해도 미 정부가 지불해야 할 이자만 최소 연 1조4500만 달러다. 2024년 기준 무역수지 적자가 9184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금리가 상승하는 이유는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 때문이다. 미 연준의장 파월은 자신이 낮추어 놓은 물가를 트럼프가 다 올려놔 금리 인하를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문제는 고금리임에도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있음이다. 미국의 금리가 다른 나라보다 높으면 달러 가치는 올라가야 한다. 이 공식이 깨졌다. 달러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다는 풍문이 있지만 오해다. 환율하락으로 미 상품 가격이 내려도 혜택을 볼 수출품목이 많지 않아서다. 미국 제조업의 취약성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하락하자 미 국채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다른 나라에 국채를 팔며 살아왔다. 이들은 강달러를 원한다.
고금리를 받아도 달러가 약세면 환차손을 입는다. 이렇게 되면 미 국채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고금리와 달러 약세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금리가 높으면 미국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진다. 여기에 달러까지 떨어지면 수입물가가 올라 관세와 더불어 서민의 물가 고통이 배가된다. 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제일 싫어하는 시나리오다.
둘째, 중국에 대해 트럼프는 이중적 접근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세휴전 중에도 중국을 자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 중국 화훼이가 만든 AI칩을 수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중국이 제3국을 통해 미국산 AI칩을 우회수입하는 것을 더 철저히 막기로 했다.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미 월마트에 채워질 서민용 물품에 대해 대중국 관세를 대폭 낮추어 주는 것이다.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은 상원 100석 중 52석(민주 48석), 하원 435석 중 220석(민주 213석, 공석 2석)을 차지하고 있다.
상·하원 모두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 근소하게 앞선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선택지는 좁다. 자신의 지지층인 서민에게 물가 폭탄을 안길 수는 없다. 하지만, 첨단기술이나 안보를 위협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미·중 관세협상은 이런 트럼프의 이중적 태도에 중국이 얼마나 반발하느냐에 달렸다. 중국 역시 미국의 고관세로 서민경제가 말이 아니다. 이들을 달래려면 미국의 이중전략을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은 격렬해지고 꽤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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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홍은 KAIST를 졸업하고 광운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경영대학장과 경영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인사조직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지식경영학회 및 한국중견기업학회 회장을 지냈고, 삼성그룹, 포스코, 한국전력, CJ그룹 등에서 자문교수로 활동했다. 정부혁신관리위원장, 사업재편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현재는 한국이해관계자학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비즈니스의 맥', '세종에게 창조습관을 묻다', '국가경쟁력, 중견기업에서 답을 찾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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