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생산·매출 기반 약화에 구조 전환···우리 실정도 판박이

30년의 고도성장 이후 일본 경제는 버블이 무너지며 장기침체에 들어선다. 특히 인구구조 변화 등에 따라 자국내 기반이 약화된 일본 기업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이는 금융사도 마찬가지다.
다소 시차를 두고 한국 경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다만 일본에 비해 그 과정이 압축적이고 더 빠르게 다가온다는 점이 우려된다.
이에 KB·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지주의 위상을 갖고 있는 일본 3대 ‘메가뱅크’가 추진해 온 해외 진출 전략은 시사점이 크다. 자산의 규모나 수익성 측면에서 아직 해외 진출의 쏠쏠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국내 4대 지주의 경우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일본 3대 금융은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MUFG), 스미토모 미쓰이 파이낸셜 그룹(SMFG),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Mizugo)을 꼽는다. 이들 모두 주요 은행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합병 조직이라는 점과, 그 출범 시기 등이 국내 4대 금융지주와 비슷한 모습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국내 최대 금융지주 중 하나인 KB금융그룹과 비교해 종업원 수 등 규모 면은 약 1.5~2배 가량이며, 총자산 규모로는 3~4배 가량일 것으로 추산된다. 그에 비해 수익 규모 면에선 정확한 비교가 어렵지만 2~3배 가량으로 추정되므로, 상대적으로 수익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정확한 비교가 아니라는 것 외에도, 일본과 한국의 수익 환경과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국내 시장 리테일 기반으로 예대마진이 높은 수익구조이지만, 일본은 기업과 해외 수익 중심의 구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하나금융연구소가 펴낸 ‘일본 메가뱅크가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이유’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3대 금융그룹은 전체 수익에서 해외 비중을 큰 폭으로 늘려 70%를 상회하고 있다.
2024년 기준 MUFG는 총수익의 73.5%, SMFG는 총영업이익의 70.6%, Mizuho는 총수익의 73.7%가 해외 비중이다.
이처럼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었기에 총자산 중 해외 부문의 비중도 커졌다.
자산 규모로 1위인 MUFG는 2005년 3월말 24.0%였던 게 2025년 3월말 35.5%로 확대됐다. SMFG도 2008년 3월말 15.5%로 2025년 3월말 42.3%까지 증가했다. Mizuho는 같은 기간 15.5%에서 38.3%로 증가했다.
이는 그만큼 일본 자국내에서 수익성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로 예대금리차가 1%p 이하로 축소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가령 일본의 은행 신규 평균 대출금리는 1993년 3.71%에서 2022년 0.60%까지 하락했다. 2024년 8월 이후 일본은행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기에 소폭 상승세로 바뀌긴 했다.
마찬가지로 평균 정기예금 금리도 1993년 2.09%에서 2019년 0.05%까지 하락했다. 이 역시 2024년엔 0.41%로 상승하긴 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일본 은행들의 예대금리차는 1993년 1.64%p에서 2011년 이후 1%p 이하로 축소된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시중은해의 예대금리차는 1.5%p 안팎이다. 등락이 있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대략 2%p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의 기업들은 그동안 전체 투자를 축소하며 은행 대출 등의 외부 차입을 줄이고 자기자본은 확대해 왔다. 가령 ▲자산 버블이 붕괴된 1993년 ▲우리나라 IMF 외환위기를 비롯한 동아시아 금융위기 시절인 1998년 ▲닷컴버블 붕괴 이후인 2002년 등을 기점으로 투자는 고꾸라졌다.
산업 전반의 성격도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업 등에서 정보통신업이나 서비스업 등으로 전환되면서 투자 수요가 축소된 점도 감안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 차원의 금융개혁으로 금융시장 구조가 바뀌며 은행대출 의존도는 줄고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늘어났다.
시야를 넓혀 일본 사회 전반의 변화 역시 촉매 역할을 했다. 2000년대 들어 경기침체는 본격화하는데 생산연령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고임금으로 노동생산성은 하락하면서 자국 내 생산기반은 더욱 약화됐다.
우리나라도 중장기 경제 기반은 취약해지는 상황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9년 정점을 찍고 감소하고 있다. 노동투입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하락하면서, 경제 잠재성장률도 축소 전망되고 있다.
이미 국내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의 연간 매출액이 수출액 규모를 초과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국내 시장이 아니라 해외 시장이 더 중요해진 시점이 이미 도래했다.
수출입은행과 무역협회에 따르면 2010년대부터 제조업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 전체 매출액은 국내 수출액의 100%를 넘어섰다. 팬데믹과 공급망 문제 등이 불거졌던 2022년엔 145.9%까지 정점을 찍었다.
산업과 경제의 혈관 역할을 해야 하는 금융기관의 성격을 감안하면 일본 금융그룹이 해외 진출 확대는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뿐만 아니라 본원의 수익창출을 위해서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시기별로 차이는 있지만 2007년 이전에는 주로 해외 지점 설립을 늘리며 해외 대출을 확대하는 방식의 확장이 주를 이뤘다. 2008년부터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이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했고, 2010년 이후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됐다고 한다.
이들은 현지 은행, 소비자금융, 핀테크, 비은행 금융기관 등 인수나 투자 등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 각사 마다 성향은 조금씩 다르다.
가령 MUFG는 은행이나 소비자금융, 핀테크 등 전 업권에 모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으며, SMFG는 은행 지분 투자가 주를 이룬다. Mizuho는 미국 등 선진국의 자산운용(IB)을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하나금융연구소의 평가다.
또한 동남아 지역의 경우 은행 법인을 직접 설립하기보다 현지 상위 대형 은행 지분투자 위주로 진출 전략을 잡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4대 금융지주 역시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수준의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당장 일본 메가뱅크와 같은 수준의 결과를 요구하긴 어렵다.
우선 일본의 경우 국내서 제로금리에 가까운 수준으로 자금조달이 가능하기에 경쟁력에서 차이가 있다. 일본은행에 다르면 메이저 은행의 해외 부문 이자율 스프레드는 1%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가령 본점과 지점 사이 자금거래로, 일본 현지서 조달한 자금을 저금리로 해외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갑자기 국내 4대 지주가 일본 3대 금융그룹처럼 해외 자산 비중을 30%까지 단기간 내 높여야 한다는 성장 계획은 허황되다.
따라서 수익성을 중심으로 한 해외 진출 확대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아래 표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수익률(ROA) 추이가 지역별로 상이하기에 타깃을 정할 수 있다. 실제 4대 금융지주가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은행 산업만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 발달 등으로 비은행 산업 역시 높은 성장을 보이는 지역도 요주의 포인트다. 굳이 경제 성장이나 금융시장의 발달 과정을 계단식으로 거쳐올 필요가 없는 시장이 열린 것이다.
가령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 주식시장에선 최근 MZ세대들을 중심으로 소액 주식거래가 매우 활발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도의 경우 은행보다 규모가 작지만 비은행금융회사(NBFC)가 1만개 이상이고, 성장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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