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는 입법 기능 외에 국가정책 전반에 관해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기능을 갖는다. 1988년에 부활한 국감이 대표적이다. 헌법과 국감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국정’의 개념은 ‘의회의 입법 작용뿐만 아니라 행정·사법을 포함하는 국가작용 전반’을 뜻한다. 다만 개인의 사생활이나 신앙과 같이 순수한 사적 사항은 제외된다.
국감은 정부를 상대로 한 국회의 감시활동이라는 점에서 여야는 초당적 입장에서 긴밀한 공조를 통해 민의의 전당으로서 존재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과거처럼 야당은 비판을 위한 비판에 매몰되고, 여당은 정부를 감싸는 데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될 일이다.
국감은 잘못된 행정사례를 바로잡는 기회
사리가 이러함에도 이번 국감에서도 보였듯 회의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국감이 여야는 각각 윤석열정부와 이재명정부의 실정만을 부각하며 시종 정쟁에 몰두했다. 민생과 안보 모두 위기에 처한 우리 현실에서 한심한 일이다. 국감은 ‘정기국회의 꽃’이라 불리며 새로운 스타 정치인 탄생의 등용문이었다. 그러나 거의 전 상임위에서 ‘전·현 정권 때리기’에만 몰두하다 보니 국감 스타를 찾아본 지 오래다.
중국 춘추시대 말 정(鄭)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자산(子産)은 덕망 있는 정치가였다. 경(卿)으로서 23년간 집정하면서 귀족의 특권을 제한하는 등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혁을 추진했다. 공경사서(公卿士庶) 즉 귀족과 선비, 서민들의 토지를 구분지어 주고 토지와 인구에 적합한 세금을 매겼다. 그러나 자산보다 200여년 뒤 인물인 맹자는 자산을 비판했다. 자산은 문제에 대해 임시방편적으로 대했을 뿐 대안 제시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자산이 진수와 유수라는 강에서 자신이 타는 수레로 사람들을 건네주었다.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이에 대해 맹자가 말하기를 “은혜로운 일이다. 하지만 정치를 제대로 하는 법을 모르는 소치이다. 그해 11월 농사가 끝났을 때 사람이 걸어 다닐 만한 작은 다리를 만들고, 12월에 큰 수레가 다닐 수 있는 다리를 만들면 백성은 강 건널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군자가 정치를 바르게 하고 있다면 행차하는 데 사람들을 물리치고 빨리 다니는 것도 무방한데 어찌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레에 싣고 그들을 건네주고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위정자가 모든 사람을 일일이 기쁘게 하려면 하루 종일 수레로 강을 건너게 해주어도 부족할 것이다.(故?政者 每人而悅之 日亦不足矣)”라는 말도 덧붙였다.
국정감사가 마무리된 이후도 중요하다. 국감을 하는 진짜 목적은 잘못된 행정사례들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국감기간만 지나면 종료된 게 아니라 그 후속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진행형이 돼야 한다. 의원들은 국감기간 일회성 성과에 우쭐하지 말고 더욱 정진한다는 ‘마부정제(馬不停蹄)’ 정신으로 국정을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살펴야겠다.
이번에 ‘맹탕 국감’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를 단지 정국 탓만 할 순 없어 보인다. 의원 개개인의 ‘무지’도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정책 질의는 뒷전이고 정쟁 유발성 질의에 매몰돼 있다. 공공기관의 정책수행이나 예산집행을 살펴보기보다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한 ‘한 방’에 관심이 많기에 국감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회의를 품게 한다. 국회의원들이 국감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않는 경우도 빈번했다. 의원들은 초반에만 국감장을 지키다 오후가 되면 줄줄이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수시로 정책수행‧예산집행 감사하는 제도 필요
국감이 정치 공방에 파묻힌다면 국가적 손실이다. 차제에 상시 국감 등 국감 개선에 나서야 한다. 국감은 전년도 지적사항에 대한 이행 여부의 사전 검증부터 철저히 해야 하지만 의원들은 관심 밖이다. 국정 전반을 한 번에 몰아서 감사하는 현행 국감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선 이러한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피감기관과 증인 채택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일회성 국감의 한계는 불 보듯 훤하다. 정부 부처·공공기관 등 800여 곳에 가까운 피감기관을 20여일 만에 감사하는 것은 졸속·부실 국감만 부추길 뿐이다.
수시로 정책수행과 예산집행을 감사하고, 피감기관도 선별해 집중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피감기관도 일시에 많은 자료를 준비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는 만큼, 행정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상시 국감 도입은 불가피하다. 상시 국감이 도입되면 국회가 언제든 행정부의 독선·독주를 견제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국회는 국감이란 국정을 진단하고 문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라는 본령을 인식하고 근본적 개선에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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