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성과·과오…불행한 역사 되풀이않게 할것"...군사쿠데타 핵심이었지만 전두환과는 달랐던 '보통 사람' 노태우

[서울=뉴스프리존]모태은 기자= 26일,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책임자 이기도한(사진) 89세로 숨졌다.

반란사건의 책임자 이기도한 노태우 씨는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오면서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대표(왼쪽)가 전두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대표(왼쪽)가 전두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편, 정치권에서 국민의힘은 26일 "오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며 "영면을 기원하며 아울러 유가족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이날 구두 논평에서 "고인은 후보 시절인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였고, 헌정사상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었다"며 "재임 당시에는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북방외교 등의 성과도 거뒀다"고 말했다.

군부 쿠데타의 주동 세력, 시대의 변화를 읽은 북방외교 실행자, 직접선거로 당선된 첫 대통령, 그리고 보통 사람.

평가가 상반되는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26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후 4공화국에서 육사 동기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한 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며 한국 정치사에 등장했다.

전 전 대통령 집권 후 정치인으로 전향해 2인자로 지내던 노 전 대통령은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 대선후보로 나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됐다.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는 말은 오랫동안 회자됐다.

전 전 대통령과 함께 군부 쿠데타의 핵심인 노 전 대통령이 87년 항쟁 뒤 직선제 개헌의 과실을 취한 배경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후보 단일화 실패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는 슬로건도 이들 민주화 세력의 대척점에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반대파로부터 '물태우'라 불리는 수모를 감수하면서 군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관리했다. 실제로 그의 재임기에는, 그간 억눌려 왔던 각계의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면서 노동계 파업 등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5공 숙청'이라는 명분으로 전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면서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재임 중 성과로는 단연 북방외교가 꼽힌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기 소련이 붕괴하면서 동구 공산권 사회가 해체됐다. 노 전 대통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산권 국가를 상대로 외교를 추진해 45개국과 수교를 맺었다. 냉전적 인식에서 탈주한 외교 성과일 뿐 아니라 거대한 중국과 소련이라는 거대 시장을 확보해 현재 대한민국의 수출 경제의 기틀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기 경상수지는 연평균 7억6천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동시에 노 전 대통령은 성장일변도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농어촌부채 탕감, 토지공개념 도입, 대기업 비업무용 토지 매각, 주택 200만호 건설 등 복지와 형평 우선주의 기조도 도입했다.

남북 대화가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띈 것도 노 전 대통령 재임 때다. 88년 7.7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했고 89년에는 여야 4당 합의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마련했다. 91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한 화해, 상호 불가침, 교류협력을 골자로 하는 '남북 기본 합의서'가 채택됐다. 그러면서도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남북 체제에서 승리한 것도 전세계에 확인시켰다.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전 전 대통령과 함께한 12.12 군사반란 참여와 5.18 유혈진압, 수천억에 이르는 비자금 조성은 노 전 대통령이 피할 수 없는 그림자다. 퇴임 후 이들 혐의로 유죄를 받은 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과 손을 꼭 잡은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아있다.

다만 그는 추징금을 여전히 완납하지 않은 전 전 대통령과는 달리 2013년 말까지 2천 억이 넘는 추징금을 분할해 완납했다. 납부할 추징금 확보를 위해 동생과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아들 재헌씨는 재작년 두 차례 광주를 찾아 5.18 민주묘지에 참배하고 희생자 가족들과도 만났다. 재헌씨는 "그만 하라고 하실 때까지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2021.10.26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2021.10.26

다음은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남긴 주요 발언들.

▲ "이 사람 믿어주세요"ㆍ"보통사람의 시대"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의 노태우 후보의 선거구호)

▲ "부의 부당한 축적이나 편재가 사라지고 누구든지 성실하게 일한 만큼 보람과 결실을 거두면서 희망을 갖고 장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입니다.", "이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어느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199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사)

▲ "전쟁의 참화와 분단의 고통을 당해온 우리가 이제 화해와 평화의 횃불을 온 인류의 가슴속에 지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에 즈음해 국민께 드리는 감사 말씀'에서)

▲ "6ㆍ29선언과 같은 결단, 나는 두번 다시 그런 결단이 필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결단은 엄청나게 불행한 사태 속에서 목숨을 걸고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989년 한국일보 창간 35주년 기념 특별회견)

▲ "물, 그것은 마시면 들어가고 흘리면 떨어집니다. 그러나 그 물 한방울 한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는 과정을 보면 물의 힘은 참 크지요. '물대통령'이란 별명 참 잘 지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1989년 프랑스 교민 리셉션 중)

▲ "40년의 짧은 기간에 그처럼 헌정사의 단절과 파란을 겪어야 했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온전한 전직 대통령을 가지지 못해온 우리 현실에 더 뼈아픈 통한을 느꼈습니다." (1990년 '과거문제 종결에 즈음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사고에 의한 개혁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데 히말라야 산맥이 높아서인지 한반도에는 아직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만이 아니라 이 지역에도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오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990년 한ㆍ소 정상 간 대화)

▲ "북방정책이라는 것은 가까운 길이 막혀서 도저히 갈 수 없다면 우회를 해서라도 가려는 것입니다. 더 먼 길이라고 하더라도 도중에 가시밭길이 있어 다리에 피가 나더라도 그것이 통일로 이르는 길일 때에는 우리는 서슴지 않고 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북방정책의 기본 구상이며, 철학이기도 합니다." (1990년 MBC 창사 29주년 기념 특별회견에서)

▲ "내 이름은 조부께서 지어주신 것으로 '크게 어리석다'는 두 글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양극단은 서로 통한다'는 동양사상에서 보면 '크게 어리석은 것'은 곧 '크게 슬기로운 것'으로 내 이름에는 그분의 소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1990년 곤츠 헝가리 대통령 내외를 위한 만찬 중)

▲ "우리가 유엔 가입을 신청한 지 42년 8개월, 오랜 기다림 끝에 회원국이 됩니다. 이제 남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던 어두운 타율의 역사는 끝이 났습니다." (1991년 시애틀 교민 오찬 연설에서)

▲ "옛말에 남남북녀라고 했는데 우리 농촌 총각들은 신붓감이 없어 중국 동포 처녀들을 신붓감으로 구하기도 한답니다. 두 분 총리가 남북의 처녀 총각들을 중매할 수 있을 정도로 남북관계가 진전됐으면 좋겠습니다." (1991년 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 접견 중)

▲ "국회는 어디까지나 여당이 이끌어 나가는 '여의도'가 되어야지, 야당에 끌려 다니는 '야의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지난날 여소야대의 국회가 주는 교훈입니다." (1992년 제14대 총선 민주자유당 공천자 공천장 수여식)

▲ "나는 그동안 당총재로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아왔습니다" (1992년 민주자유당 총재직 사퇴선언)

▲ "'참고' '용서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참용기입니다." (1992년 6ㆍ29선언 5주년 기념 '보통사람과의 대화'에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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