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만보(전 경찰서장. 소설가)

지난 23일, 경찰에는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설치하려는 데에 대한 반발로 경찰의 중견 관리층인 경찰서장 계급 총경들이 모임을 가진 것이다. 

경찰청 650여 명 총경 중 56명이 직접 참석했고 온라인 상으로 참여한 총경들도 133명이나 됐다고 한다. 회의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모임의 취지에 동조, 지원하는 의사로 화분을 보낸 인사도 350여 명에 이른다.

이번 총경 모임은 앞서 하위직 모임인 경찰 직장협의회 회원들의 삭발 등 연쇄시위에 이은 '제2탄'의 성격이 강하다. 한 마디로 전체 경찰 중 경무관급 이상을 제외한 조직원의 80% 이상이 총경모임을 지지하고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경찰이 이처럼 유례없는 반발을 하고 나선 데는 과거 경찰이 지나온 길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대한민국 경찰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미군정청 경무국으로부터 권한을 이양 받아 내무부 치안국으로 출발했다. 이승만 정부는 정권 유지를 위해 내무부 장관의 지휘체계로 경찰권을 십분 활용했던 것이다.

4.19 혁명 당시 발포는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최인규의 명령으로 일어났던 일이다.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서도 정권 유지를 위해 경찰을 동원한 것은 전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찰이 내무부 치안국에서 떨어져 나와 업무의 독자성을 부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74년 치안본부로 승격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때도 부서는 별도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치안본부장을 군장성 출신이나 정치인을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경찰을 통제하였기에 경찰의 정치적 예속성은 여전했다.

경찰이 내무부에서 지금의 경찰청으로 독립한 것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었다. 이때부터 경찰업무는 경찰청장의 단일 지휘체제로 운영되면서 인사, 예산 등에서 자율권이 인정됐다. 정부 수립 후 40여년 만이다.

이로써 경찰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과 중립성도 인정받게 됐지만, 새 정부가 행안부 내에 ‘경찰국’이라는 부서를 만들어 경찰을 장관의 예속 하에 두려고 시도하면서 파장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우리는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민주화시대에 살고 있다.(적어도 직접적으로 처벌은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상민 장관은 취임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싯점에서 ‘경찰국’ 설치로 경찰을 장악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그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가 지적하고 싶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 내정자를 장관 면담으로 정하고, 총경 이상 간부의 인사권을 장관이 쥐고, 예산 편성과 감찰권을 갖고 경찰을 지휘하겠다고 하니 경찰의 반발을 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상민 장관은 ‘경찰국’을 설치하면서 수사권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

문제는 경찰국 설치가 경찰 내부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의 일상생활과도 직결된다. 인사와 예산, 감찰권을 쥐고 있는 자의 의도가 경찰의 큰 권한인 수사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가 않다.

장관은 또한 검찰의 수사권 제한, 이른바 ‘검수완박’으로 상대적으로 비대해진 경찰의 권한을 통제하기 위하여 장관이 나서는 것이라 하는데 이 또한 말이 안되는 소리다. 경찰의 권한 행사는 국민 다수의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행사되는 것이다. 결코 경찰권을 지배하는 권력이 남용을 지시하지 않는다면 경찰은 스스로 그 힘을 법의 한계를 넘는데 까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또 과도하게 커진 권력은 국민이 나서서 통제하거나 국회에서 법을 제정, 규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 어째서 정치인 장관이 나서야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서장급 모임이 있자 윤희근 경찰청장 내정자는 모임의 주동자인 류삼영 총경을 즉각 대기 발령시키고 회의 참석자를 색출 감찰을 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경찰다운 신속성이다. 윤 내정자나 류 총경이나 모두 조직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윤 내정자는 모임에서 결의한 내용도 들어보기 전에 감찰권부터 먼저 사용해 본때부터 보이고자 하니 이러고도 10만 조직을 제대로 이끌런지 자질에 의심이 간다. 지금 경찰청장 내정자를 포함해 경찰 수뇌부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기강 다잡기에 나서고 있다.

이는 얼마 전 검수완박 법안 통과 시 검찰 수뇌부에서 먼저 모임을 갖고 부당성에 대해서 의견을 모아 대통령, 장관에게 전달했던 일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러고서도 검찰에서는 처벌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이상민 장관에게 전직 경찰서장으로서 충고하고 싶다. 다 자란 소(牛)를 송아지 때 키우던 비좁은 우사에 억지로 넣으려 한다면 살을 베어내고 코뚜레를 잡아끌어야 한다. 그리되면 소는 죽거나 발광을 한다. 소를 잘 부려먹으려면 우사(牛舍)를 키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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