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의 한중일 생활이야기] 김밥은 신선음식·김초밥은 발효음식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의 김밥이 틱톡 영상을 통한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동났다.’
미국 NBC 방송이 6일(현지 시각) ‘김밥 열풍’을 ‘블록버스터급 인기’라고 소개한 기사 제목이다. 트레이더 조스는 미국 전역에 500여 개 매장을 둔 식료품점 체인이다. 트레이더 조스는 지난달 초 한국 중소기업으로부터 수입한 냉동 김밥 제품을 출시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 매장에서 매진됐다. 11월 추가 입고될 때까지 먹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NBC는 이제 이곳에서 김밥을 구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인이 H마트 등 한인 마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놀랍다. 서양인은 해초를 즐기지 않는다. 해초를 ‘바다의 잡초’ 취급했다. 미국 사람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 김을 먹지 않았다. 김을 먹는 한국·일본 사람을 보고 “검은 종이를 먹는 야만인”이라며 조롱했다. 최근에 건강식품으로서 해조류 효능이 알려졌다. 해조류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 K팝과 K-드라마 열풍이 불면서 K-해초음식 소비도 급격히 늘어났다. 김부각은 김스낵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최고의 간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양인에게 친숙한 음식인 김밥은 역시 거부감이 없다. CNN이 김밥을 한국 대표 길거리음식으로 소개하는 등 언론에도 자주 노출되었다.

그렇다. 한국은 ‘김밥천지’에 산다. 길거리에 나가면 ‘김밥천국’, ‘김밥세상’, ‘김밥나라’, ‘김밥민국’ 등 각양각색인 김밥 가게를 만날 수 있다. 김밥 가게만 다양하게 아니다. 김밥은 카멜레온이다. 맛과 취향에 맞춰진 다양한 맞춤 김밥이 있다. 김밥 전문점의 메뉴판을 보자. 꼬마·달걀·태극·누드·김치·채소·치즈·돈가스·참치·샐러드·김치·피클·버섯·유부·모둠·과일·달걀노른자·흑미·불고기·소고기·회 김밥…….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식용 금가루를 뿌린 김밥이 ‘금밥’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했다.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다. 김밥의 변신 능력에 감탄을 자아낸다. 누드김밥은 역발상의 진수다. 김으로 밥을 마는 게 아니라 밥 속에 김을 말아 넣는다. 모양의 변신도 변화무쌍하다. 삼각김밥을 비롯하여 공처럼만 폭탄김밥, 만들 때마다 모양이 달라진다는 못난이김밥, 썬 김밥의 양쪽 끝을 모은 꼬투리김밥 등 날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명품 김밥은 충무김밥이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충무김밥은 고명 없이 맨밥을 만 김밥이다. 김밥에 따라 나오는 아삭한 무김치와 매콤한 오징어무침이 고명을 대신한다. 고명을 반찬으로 대신한 이유가 있다. 통영은 습기가 많은 해안지역이다. 선도 유지가 쉽지 않아서다. 충무김밥은 우리나라 최초의 패스트푸드다. 통영 마을 여인네가 선원 상대로 팔았다. 이것이 상업화된 김밥의 효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김을 식용했을까. 우리가 김을 먹은 최초 민족일지도 모른다. 해초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삼국유사》다. “연호랑이 해초를 따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났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명나라의 의약서인 《본초강목》에 의하면 신라인이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바다에 들어가 해초를 채취했다. 당시에는 김, 미역, 다시마, 감태 등으로 세분화하지 않았다. 그저 해초였다. 조선 초에 와서 김이 토산품으로 인정받았다. 그즈음에 해초의 분화가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분화된 김은 ‘복을 부르는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동국세시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정월 대보름에 오곡밥을 해안지방은 생김에, 내륙지방은 배추에 싸 먹었다. 풍년과 풍어를 비는 ‘복쌈이’ 풍습이다. 해안지역에서는 복쌈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으로 복쌈이를 하면 눈이 좋아진다고 믿었다. 복쌈이 풍습은 김의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양식을 통해 공급을 확대했을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수산지》에 의하면, 18세기부터 김 양식을 했다고 한다.
김밥과 유사한 음식으로 일본의 노리마키(海苔券)가 있다. 마키즈시(巻き寿司)라고도 한다. 노리마키는 밥을 나팔 모양으로 김에 말아서 만드는 김초밥이다. 마키즈시는 김밥처럼 만 김초밥이다. 모양이 비슷하다고 같은 음식이 아니다. 김밥과 김초밥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음식이다. 김으로 밥을 싸고 고명을 올린 점을 제외하면 유사성을 찾기 어렵다. 김초밥은 식초와 설탕을 가미한다. 시큼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이유다. 김밥은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한다. 고소한 맛과 향이 난다. 식초와 참기름은 모두 살균 효과가 있다.
조미 방식의 차이는 음식의 성격의 차이를 암시한다. 노리마키는 일종의 보존식품이다. 밥에 식초를 섞으면 발효 효과로 인해 금방 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김밥을 만다고 표현한다. 반면 일본은 김초밥을 ‘담그다(漬る)’라고 표현한다. 담그다는 발효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주방을 다이도코로 혹은 스케바라고 한다. 스케바는 ‘(음식을) 담그는 곳’이라는 뜻이다.
노리마키는 스시의 일종이다. 스시 중에서도 노리마키의 위상은 높은 편이다. 고명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데카마키(참치), 호소마키(박고지), 다테마키(달걀), 살몬마키(오이) 등이 가장 흔한 노리마키다.
일본인은 스시에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일본 3대 음식(스시, 낫토, 미소시루), 외국인이 맛봐야 할 4대 음식(스시, 라멘, 덴뿌라, 니혼쥬), 에도시대의 3대 음식(스시, 장어구이, 덴뿌라)에 포함되는 유일한 음식이다. 스시 요리사가 되는 험난하고 긴 과정을 보면 스시의 위상과 의미를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스시 요리사는 밥 짓는 데 3년, 생선 다루는 데 3년, 밥을 쥐는 데 3년 그리고 다시 1년의 내공을 쌓아야 한다. 10년 동안의 수련을 거치고 나면 ‘이타마에’라는 칭호를 받는다. 정식 스시 요리사라는 의미다. 10년 동안의 준비 끝에 스시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단 3초. 스시 요리사를 ‘10년을 준비하고 3초에 승부하는 사람’이라는 부르는 이유다.
스시의 참맛은 무엇일까. ‘육감적 맛’이라고 한다. 한 줌의 샤리(밥)와 두툼한 생선회(사시미) 한 점이 어우러진 맛, 그리고 입안에서 밥알이 부서지면서 생선회를 살살 녹이는 미감을 그렇게 표현한다. 즉 밥, 생선, 요리 방법, 이 세 가지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뤄질 때 육감적인 미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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