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밉상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라는 의정은 뒷전이다. 욕지거리에 싸움질만 한다. 단독입법, 탄핵 난발, 방탄 국회, 돈다발 살포, 당리당략, 상대 비방, 정쟁, 자기편 감싸기….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국가의 미래와 민생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이미 멀어졌다. 그것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자기 이익’에 관련된 사안에서는 여야가 국민 눈치도 안 본다. 의기투합한다. 세수가 무려 59조 원 펑크가 났는데도 말이다.

국회에서 사용하는 의자
국회에서 사용하는 의자

지난 17일에는 멀쩡한 ‘의자 교체’를 바꾸기 위해 예산 배정했다. 사용하는 의자에 앉으면 허리가 아프다는 게 그 이유다. 국회사무처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보였다. 불편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국회의원의 고집에 국회사무처도 물러서고 말았다. 결국 국회 운영위 회의실에 비치된 의자 100여 개에 대한 교체를 추진키로 했다. 원가는 개당 100만 원 정도란다. 국회의원 권위를 생각해 최고급 의자를 사용하고 있단다. 그래도 염치는 있는 것일까. 이번에 개당 60만 원짜리로 바꾼단다. 낮아진 의자 가격만큼 국회의원 권위가 더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오늘의 소재가 무엇인지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 의자다. 의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생활을 상징하는 생필품이다. 입식 생활을 하는 중국과 서양은 물론 좌식 생활하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의자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의 의자는 가구가 아니었다. 권력이고 권위였다. 권좌, 왕좌, 옥좌, 용상, 체어맨과 같은 단어가 이를 방증한다. 권력의 크기에 따라 의자의 모양과 장식이 달랐다.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면 등받이가 달린 의자에 앉을 수 없었다. 평민은 등받이가 없는 긴 의자(bench) 혹은 판자로 만든 평상(stool)에 앉았다. 개인용 의자가 없었다는 얘기다.

일상적 생활 가구로 역할을 한 것은 언제일까. 중세를 지난 뒤 가옥구조와 산업 형태의 변화에 적응하면서라는 게 정설이다. 서양 사회에서도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품격 있는 의자가 보편적 문화로 정착된 것은 까마득한 과거가 아니다.

중국도 본래 우리와 같이 좌식문화였다. 《초한지》나 《삼국지》 등 고전 사극을 보면 극중 인물이 의자 생활에 친숙한 듯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제대로 고증된 설정이 아니다. 적어도 한나라 시대까지는 돗자리를 깔고 바닥에 앉았다. 황제도 화려하고 멋진 의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의자가 중국에 선보인 것은 5호16국 시대다. 한족(한나라)이 쫓겨난 중국 중원에 5개 이민족이 16개의 나라를 세워 분할통치하던 시대다. 이때 유목민족인 선비족이 호상(胡床)이라는 의자를 사용했다. 이동에 편리한 일종의 휴대용 의자였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폴더형 의자다. 엉덩이를 의자에 댄 채 발을 땅바닥에 대고 다리를 늘어뜨려 앉는 현대식 의자와 유사한 형태였다. 이것이 수당 시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스타일이 의자가 생겨났다. 특히 권위를 상징하는 고좌(高座·황제, 고관대작이나 선사, 원로 등이 앉는 높은 의자)가 다양한 형태로 태어났다. 그렇다고 여성까지 의자에 앉아 생활했던 것은 아니다. 남송 시대의 시인 육유가 쓴 《노학암필기》에 의하면, (송나라의) 사대부 부녀가 의자에 앉으면 법도에 어긋난다고 비웃었다.

5호16국 시대에 중국에 들어온 의자는 후한 시대에 하나의 생활문화로 정착되기 시작됐다. 당송시대에 들어와 의복도 의자 생활에 편리한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호상을 접한 지 무려 500여 년이 걸린 셈이다. 

의자 문화를 가진 나라 사람은 앉는 모습이 한결같다. 아니, 다를 수가 없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처럼 좌식문화를 가진 나라는 나라마다 앉는 자세가 차이가 난다. 한국은 엉덩이와 넓적다리를 바닥에 댄 채 한쪽 다리를 책상다리처럼 접어 모으고 앉는 게 예의를 갖추고 앉은 자세로 여겼다. 양반다리라고 한다. 유식하게 말하면 결가부좌다. 그 자세로 눈만 감으면 묵상 혹은 참선하는 자세가 된다. 이 자세는 부동자세는 아니다. 간혹 몸을 좌우, 앞뒤로 흔들기도 한다. 이를 부라질이라고 한다. 

반면 일본은 무릎을 꿇고 그 위에 엉덩이를 얹은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는 자세를 취한다. 거기다가 발끝을 모아서 붙인다. 세이자(正坐)다.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를 ‘바른 자세’로 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일본의 예의 바른 앉는 자세(세이자)는 ‘다도의 시작’이라는 얘기가 있다. 다도에서 유래됐다는 얘기다. 다도의 도량인 다실은 아주 좁다. 이를 잘 보여주는 단어가 있다. 쓰메갸쿠(詰め客)다. 직역하면 ‘밀어 넣은 손님’이다. 다실에 제일 나중에 도착한 사람을 이렇게 불렀다. 그만큼 다실이 비좁다는 뜻이다. 좁은 곳에서 여러 사람이 앉기 위해서는 최대한 공간을 좁혀서 앉아야 한다. 좁은 다실에 여러 사람이 모이면 느슨하게 다리를 뻗거나 팔짱을 낀 채 앉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는 이어령 선생이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한 얘기다. 새삼 동감이 간다. 

한국의 양반다리와 일본의 세이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수양 방법이다. 그 자세에 선비정신과 사무라이 정신이 담겨 있다. 이 때문이지 조선시대에 결가부좌를 하지 못하면 품위와 품격이 떨어지는 선비로 조롱받았다. 양반의 체통이 손상된다고 여긴 것이다. 정조 때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낸 홍낙영이 대표적으로 자세 콤플렉스에 시달린 양반이다. 그는 ‘숏다리’였다. 결가부좌를 틀지 못했다. 그는 “광대들의 신기에 가까운 기예와 유연한 몸짓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라면서 “더 많은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다짐의 글을 남겼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자. 입식문화와 좌식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있다. 발에 대한 인식이다. 좌식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발을 남에게 보여주는 게 큰 흠이 될 일이 없다. 맨발을 드러내는 것에조차 너그러운 편이다.

일본 사찰에 가면 스님들은 거의 맨발 차림이다. 고승조차도 대웅전과 같은 법당 안에서도 양말을 신지 않고 지내는 일이 다반사다. 중국인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도 꽤 의아하게 여길만한 장면이다.

일본 신칸센을 타면 신발을 벗은 채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사람을 흔히 본다. 신칸센 탑승객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신발을 벗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좌식문화를 가진 사람이 신발을 벗는 행위는 무의식적 행동일지도 모른다.

입식문화에서 발은 숨겨야 하는 대상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이 있다. 지난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마침 생일을 맞은 그는 류성룡 종택인 충효당에서 생일상을 받았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투명한 살색 스타킹을 신고 있던 여왕의 발은 세상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영국 언론은 여왕이 대단한 용기를 보여줬다고 대서특필했다.

왜 서양 언론은 이런 수선(?)을 피운 것일까. 입식문화 일단을 보여주는, 중국 영화 <붉은 수수밭이>가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구월(공리)이 가마를 타고 수수밭을 지나간다. 문둥병 걸린 양조장 주인에게 시집가는 길이다. 돈에 팔려 가는 신세였다. 구월은 도발적인 행동을 한다. 가마 밖으로 하얀 두 발을 내민다. 이를 본 가마꾼 중 한 명은 잠시 가마를 내려놓고 쉬는 시간에 구월을 어깨에 메고 붉은 수수밭으로 사라진다. 구월은 저항하지 않는다. 아니 반항할 일이 없다. 자신이 원한 일이니까. 중국에서 여인이 발을 보여준다는 것은 곧 몸을 허락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문화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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