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생활이야기

남현희 전 펜싱 국가대표선수의 결혼 발표가 있은 지 보름이 지났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막장 일일드라마를 한 편을 봤다. 희대의 사기꾼 ‘전청조’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전청조는 남현희에게 백마 탄 왕자였다. 나이와 신분, 성, 혼인(돌싱녀와 싱글)을 뛰어넘는 러브스토리였다. 재벌 3세, 15살 연하, 꽃미남, 승마선수, 롯데 시그니엘의 호화생활(월세 2,500만 원)……. 거기다가 남현희는 이혼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예상을 벗어날 때 반전의 효과는 큰 법이다. 전창조는 사기 전과자였다. 무려 10범이다. 여성이었다. 성전환 수술도 하지 않았다. 남자도 됐다가, 여자가 되기도 했다. 그 이중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남장 여성’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사진: 선수시절 남현희씨와 사기·사기미수 혐의로 체포된 전청조 씨
사진: 선수시절 남현희씨와 사기·사기미수 혐의로 체포된 전청조 씨(오른쪽 검은 옷 입은 이)

오늘의 주제는 한·중·일 삼국의 남장 여성에 관한 ‘웃픈’ 이야기다. 옛날 남장 여인이 존재했을까? 성 정체성에 관한 인식이 전무 했던 시대에 그게 가능했겠냐는 의문이다. 기껏해야 연극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 경극이나 일본 가부키에서처럼. 그 속의 크로스 코드는 남장 여자가 아니라 여장 남자였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일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조선에서 남장 여성의 출현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당연하게 여기던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시작됐다. 남성에만 주어진 국가적, 사회적 역할에 저항한 형식이 바로 복장이었다. ‘조선 최초의 여성 여행가’인 김금원도 그중 한 명이다. 1800년 초에 태어난 그는 서얼 출신이다. 기생이 될 운명이었다. 14살 되던 어느 날, 그는 “넓은 세상이 보고 싶다”, “다른 사람은 뭘 하면 살아갈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고민 끝에 남장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당시에는 여성의 여행은 불법(곤장 100대)이다. 대문 밖을 나서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14살의 소녀는 위험을 무릅쓴다.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기를 남겼다. 그게 바로 《홍동서라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스트가 김금원이었다면 최초의 의병장은 윤희숙 의사이다. 그는 일제와 싸우기 위해 남자 옷을 입었다. 그는 유인석 의병장의 조카며느리다. 시아버지 유홍석, 남편 유재원도 의병 활동을 했다. 그도 의병 가문의 영향으로 의병운동에 뛰어들었다. 1907년 고종황제 폐위와 군대해산이 이어지자 윤희숙 의사는 여성 의병 30명을 모집했다. 본격적으로 의병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여자라도 나라를 사랑할 줄 알며, 남녀가 유별해도 나라 없이는 아무 소용 없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윤희숙 의병장은 과감히 치마 대신 바지를 입었다. 비녀를 빼버렸다. 여성임을 숨기기 위해 남장하고 적진에 들어갔다. 다양한 첩보 수집 활동을 벌였다. 1911년 중국으로 독립자금 모금했다. 인재를 양성했다. 또 조선 독립단 가족부대와 조선독립단 학교를 설립했다.

남장 여자는 여성이 차별받던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에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남장 정치인이 있다. 바로 김옥선 전 의원이다. 그는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선에도 출마했다. 그는 늘 양복 차림이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맸다. 머리 스타일도 남성처럼 잘랐다. 그런 파격적 패션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양복을 입은 이유는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효심이다. 오빠가 일제 징용에 끌려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늘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막내딸인 그가 오빠를 대신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빠처럼 옷차림하는 것이었다. 옷차림은 그를 남성보다 더 강한 정치인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남자보다 더 열정적으로 국민에게 봉사했다. 또 그는 서슬 푸른 유신체제에 거칠게 저항했다. 결국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이른바 ‘김옥선 파동’이다.

가장 유명한 중국의 남장 여성은 화무란(花木蘭)이다. 화무란은 작가 미상의 대서사시 《목란사》에 나오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중국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여자의 몸으로 아버지를 대신하여 남장하고 전장에 나갔고 10년 동안 큰 공을 세워 고향으로 돌아와 여성으로 살았다는 게 서사시의 내용이다. 중국판 잔 다르크라고 할 수 있다.목란사는 1998년 '뮬란'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또 이를 2020년 실사화한 영화 <뮬란>이 제작됐다.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남장 여성이 됐다.

‘뮬란’ 못지않게 유명한 남장여자가 일본에도 있다. 바로 ‘세기의 스파이’인 가와시마 요시코다. 그는 일명 ‘동양의 마타 하리’, ‘동방의 마녀’, ‘난세의 요녀’로 불릴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가와시마 요시코는 본래 만주족이다. 청나라 황족인 숙친왕, 애신각라 선기의 14번째 딸이다. 황족인 그는 당연히 청조의 부활을 꿈꿨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일본 경찰국장의 양녀로 들어가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 일본과 중국의 가교역할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인생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니었다. 서로에게 이용당했다. 그는 나중에 중국 국민당 입법원장 비서로 일하면서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 일본에는 중국의 부역자로, 중국에는 스파이로 낙인찍혔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과는 달리 사랑이 그를 남장 여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사랑에 빠진 일본 군위 야마이에 소위와 결혼을 결심한다. 가족에게 결혼 허락받지 못했다. 그녀는 자살소동을 벌이고 머리를 잘랐다. 평생 남장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 뒤로 군복과 양복을 입고 생활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이 지속가능한 저널리즘을 만듭니다.

정기후원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