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의 NF 수첩]
일본은 세계 최장수 국가다. 65세 인구 비중이 28.9%(2022년 3월 현재)다. 10명 중 3명꼴로 65세 이상이다. 100살 이상 최장수 노인도 9만 명이 넘는다. 오는 2025년에는 격상된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일명 ‘초초고령사회’다. 인구 5명 중 1명이 75세의 후기고령자다. 2025년에는 노인 중 3분의 2가 75세를 넘는 셈이다. 일본 인구구조의 변화는 수많은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노동 인구 감소, 성장 잠재력 둔화, 고령층 부양 부담 증가, 지역소멸, 연금 재정의 고갈······

결국 고령화는 일본의 지속가능성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젊은 일본’을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기하학적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전도는 밝지 않다. 개선 여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예술’도 문제의 심각성을 그저 보고 넘기지는 않았다. 예술이 현실에 참여했다. 초고령사회에 대한 서생적 문제의식으로 다양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일본 예술계에서 초고령사회를 다룬 작품이 출품이 잇따르고 있다. 그중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은 영화 '플랜75'와 소설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같은 제목의 드라마 등이다.
하야카와 치에가 메가폰을 쥔 ‘플랜75’는 현대판 ‘우바스테야마(姥捨て山·노인 유기)’다. 우바스테야마는 아주 옛날 번주의 포고령(60세 넘는 노인은 집에 거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에서 비롯됐다. 노인을 산에다 버리는 악습이다. 식량부족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우바스테야마는 한국이 처음으로 수입한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의 소재였다. ‘일본의 고려장’으로 알려져 있다. ‘플랜75’는 정부가 입법한 제도다. 75살이 된 노인에게 2년 이내에 스스로 생사의 선택권(안락사)을 주는 법이다. 그 대상은 왕족이 아닌 사람 중에 사회에 필요한 업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즉 사회보험료를 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 법 제정의 이유는 너무 가슴 아프다. 노령인구 증가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난 사회적 비용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플랜75’ 정착을 위해 공익 광고까지 나선다.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너무 만족스럽다”라는 게 광고 카피다. 유혹적이다. 하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는 사뭇 다르다.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노인’은 살 가치가 없으니 죽어달라는 것이다.
가키야 미우가 쓴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는 출산율 제고 방안을 다루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젊은이의 짝을 정한다. 정부가 젊은이에게 보낸 통지서가 이 제도를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귀하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으로 시행되는 ‘추첨맞선결혼법’의 적용 대상자로 선정됐다. 동봉해 드리는 초대장을 지참하여 국가 주도 맞선에 응할 것을 통지한다”는 게 그 내용이다. 추첨 맞선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2명까지 파트너 교체를 요구할 수 있다. 3명을 거절하면 ‘벌칙’이 있다. 테러 대책 활동 후방지원 부대에 2년간 복무해야 한다. ‘추첨맞선결혼법’을 따르지 않으면 반정부주의 세력이 되는 셈이다. 작품 속에서 ‘통지서’를 ‘징집소집장’이라고 표현한다. 정부에 반항하지 않기 위해 ‘썸타는’ 젊은이는 결혼을 서둔다. 소개팅이 대유행한다. 정부의 정책적 목표는 성공적으로 달성한다. 정부는 ‘플랜65’를 계획한다.
소설적 상상력이 파격적이다. 일본이 걱정된다. 고령사회 문제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닿는 듯하다. 문제는 우리 처지가 일본을 걱정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한국은 브레이크 없이 초고령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일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곧 일본을 추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일본보다 사회안전망은 훨씬 취약하다.
지난달 30일엔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0명이었다. 분기별 역대 최저 기록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최저의 출산율이다. 이 같은 믿기지 않는 기록마저 하반기에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이 인구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이라는 데이비드 콜먼(옥스퍼드 명예교수)의 예언이 적중할 것 같다. 그는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2750년에 대한민국은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거기다가 현재 총인구가 감소하는 유일한 나라다. 소멸의 위기감이 그저 허언이 아니다. 우선 인구가 얼마나, 그리고 어느 정도의 속도로 줄고 있는지 수치로 확인해보자. 2020년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았다. ‘데드 크로스’다. 그 첫해인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세종시(35만 명)만큼 인구가 줄었다. 2030년까지는 충남(233만 명)이, 2040년까지는 부산(330만 명) 인구만큼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70년에는 인구가 3800만 명쯤 된단다. 서울과 수도권을 합친 인구만큼 감소한 셈이다. 물론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그렇다.

저출산과 노령화는 동전의 앞과 뒤다. 저출산 문제는 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있다. 노령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는 중위연령(전 인구를 나이순으로 세웠을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나이)이다. 2020년 43.7세이던 중위연령은 2030년에 49.8세→2040년에 54.9세→2050년에 57.9세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데드 크로스를 지난 뒤부터 ‘죽음의 계곡’을 대비해야 한다. 인구 절벽, 지역소멸로 표현되는 인구재앙이 목전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도 재앙 예방을 위해 노력했다. 2006년부터 17년간 3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출산율이 이를 방증한다. 출산율은 1.13에서 0.70으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정부의 무능을 탓할 수도 없다. 인구 감소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그동안 적용했던 정책은 인구가 늘어날 때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다가 사회적 모순들이 경쟁하듯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게 인구 감소다. 청년실업에 집중하면 노년 빈곤이 확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히 인구 정책으로 한 묶음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인구는 모든 사회적 문제를 수렴하고 있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플랜75’와 ‘추첨맞선결혼법’은 일본의 인구 정책 실패를 상징한다. 만일 우리 정부도 정책 실패를 되풀이한다면 국가 실패의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 29일 2024년 예산안에서 저출산 극복 예산으로 17조5900억 원을 편성했다. 올해보다 25.3%가 늘어난 것이다. 총지출이 2.8% 늘어난 데 비하면 파격적 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예산이 저출산 정책의 실효성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출산과 직접적 관련이 깊은 부문에 예산을 집중했다. 그저 퍼주기식 정책에 중점을 뒀다는 얘기다. 그것도 산만하기 짝이 없었다. 출산장려금과 같은 게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는 사회적 돌봄(보육), 교육, 젠더, 부동산 문제까지 고려한 예산집행을 하고 있다. 그나마 고무적이다. 하지만 보다 복합적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하나만 들자. 삶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출산율도 높다.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즉 빈곤에 시달리지 않는 젊은이의 혼인율이 높다. 강남 지역의 출산율은 2.0명이 넘는다고 한다. 결국 혼령기의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그게 출산율 제고의 충분조건이다.
충분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만일 그동안 쓴 약 400조 원 출산예산 중 일부를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양질의 일자리를 지금보다 많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지방대학을 첨단기술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벚꽃앤딩(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없어진다는 자조적 표현)’ 현상을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거기에 출산에 유리한 생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테면 안정적인 주거 제공과 같은 것이다. 유럽의 어떤 나라는 결혼을 약속한 예비부부라도 주택 자금 대출을 해준다. 그리고 자녀 수가 늘어날 때마다 대출금 탕감 규모를 늘려간다. 3명 낳으면 대출금을 안 갚아도 된다. 이 정책 도입 이후 출산율이 현저히 높아졌다고 한다. 우리도 충분히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
출산율 제고는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인구 정책의 본질은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혹시 결혼하지 않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젊은이가 있다면 페스탈로치의 말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가정의 화목은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이다. 자녀를 보는 즐거움은 사람에게 가장 성스러운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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