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료현장이 심각한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의료 현장을 떠났다. 의료 활동의 주축이 자취를 감추면서 수술 연기와 진료예약 취소도 줄을 잇고 있다. 수술 연기 비율이 으로 치솟았다. 중증환자와 수술을 앞둔 암 환자들은 시각을 다투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전공의가 떠난 대형병원은 수술 50% 수준이 취소될 정도로 의료 공백이 심각한 가운데, 환자의 생명을 거래 수단으로 삼은 의사들에 대한 분노도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10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9275명(74.4%)이고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8024명으로, 의대생도 7620명이 휴학계를 냈다. 정부는 전공의 80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했다고 22일 밝혔다. 21일 오후 6시 기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57건이다. 수술 지연 44건, 진료거절 6건, 진료예약 취소 5건, 입원 지연 2건 순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중될 것이다.
정부는 전공의 이탈 장기화에 대비해 중앙사고수습본부의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해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고 군병원과 공공의료기관 활용, 비대면 진료 확대, 진료보조(PA) 간호사 활용 등 대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증·응급환자들이 제때 제대로 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의료 인프라를 동원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5대 대형병원인 ‘빅5’ 전공의들이 자리를 떠나 일대 혼란에 빠졌다. 서울아산병원은 양성종양수술을 전면취소 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술 일정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무더기로 수술 취소가 통보됐다. 그중에는 1년 전부터 예약된 자녀의 수술을 앞두고 보호자가 회사를 휴직한 경우도 있었다. 의대 교수들과 간호사들이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입됐지만 역부족이었다. 응급실도 곳곳에서 파행이었다.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며 환자를 내팽개치고 병원 문을 나선 의사의 자기 합리화는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 집단 이기주의를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 75%가 찬성하는 의대 증원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국 병원 응급의료체계의 핵심 역할을 하는 전공의들이 대거 환자 곁을 떠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의사들은 인구 감소에 따른 수요 감소, 의료 서비스 질 저하, 의료비 증가 등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 양성에 최소 10년가량 걸리는 걸 감안하면 초기 대폭 증원은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2021년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보다 크게 적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의대 증원에 찬성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도 지난해 11월 필수·지역의료 확충을 위해 의대 정원을 최소 10년 동안 1년에 1,000명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9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다. 반면 의료수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이 기간에 452만명에서 943만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현재도 의사가 5000명 정도 부족하며 의사들의 지방 근무 기피로 군 단위 아래 지역에는 거의 의사가 없는 지역들이다. 그러니 '병원 찾아 3천리'라는 말이 나온다.
인구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나라에서 19년간 의대 정원을 단 한 명도 늘리지 못했다는 것은 곧 바로 의사부족 사태를 대변해 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5년에는 노인 인구가 1520만명을 넘어 2006년(452만명) 대비 3.4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의사 수급 전망에 따르면 지금도 의사가 5000명이나 부족하고 2035년엔 1만5000명이 부족할 것이란 추산이며 연구 부처에 따라서는 부족 인원이 2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의사 증원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간호사 등 의료기관·복지시설 노동자들이 가입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지난 18일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행동 움직임을 비판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의대 증원에 맞선 의사 집단 진료중단은 국민 생명을 내팽개치는 비윤리적 행위"라면서 "환자를 살려야 할 의사들이 대화를 통한 해법을 찾지 않고, 정부를 굴복시키겠다며 집단으로 진료를 중단하는 것은 반 의료행위로서 의사 윤리강령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질타했다.
의료계와 정부가 시종 강 대 강으로 부딪치면서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로 인한 의료 공백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국민이다. 이제라도 의료계와 정부는 열린 자세로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의료계와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대화와 타협으로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의사 수를 늘린다고 의사가 집단행동을 벌이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 더구나 응급실을 비우는 행위는 다른 나라에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미국과 일본,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앞다퉈 의대 정원을 늘리고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의사들이 이를 반대하면서 집단행동을 벌인 곳이 없다. 오히려 독일과 미국의 의사단체들은 의사 정원 확대를 정부에 먼저 요구했다.
정부는 그동안 의사들이 요구한 대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으로 의료진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응급·소아·분만 등의 분야 보상 강화에 10조원 이상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의대 교육의 내실화를 기하고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전공의 처우도 개선한다는 약속도 했다. 전공의가 집단이익 관철을 위해 생명이 달린 응급실·수술실을 비우거나 진료 차질을 빚게 한 건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중증환자 수술과 항암치료를 제때 못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에 대해 끝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 강력히 대응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더 이상의 파국을 막고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사회적 중재 노력도 필요하다. 의학계와 의료분야에 전문성 있고 중량감 있는 사회 원로들이 나서야 한다. 또한 여야 정치권 역시 정치적 이해에 사로잡힌 양극화를 물리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정부·의료계 간의 대화 중재에 적극 나설 때다.
지난해 7월 간호사 파업 때 부산대병원 교수협의회는 당시 대자보에 “수많은 환자분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계신다. 어려운 질병으로 고통받으시는 분들을 위해 하루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시 의사 집단 스스로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면서 환자 곁으로 돌아오기를 다시 촉구한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가운을 입은 전공의들은 "삶의 마지막 길에서 간곡히 호소한다."는 시한부 환자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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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웅 언론학 박사 주요약력]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경남대 석좌교수 YTN 매체비평 고정 출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별 위원장 방송위원회(보도교양/연예오락)심의 위원장 방송통신연구원 부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KBS 예능국장·TV제작국장·총국장·정책실장·편성실장 중앙일보·동양방송(TBC) TV제작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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