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의 한·중·일 생활이야기] 한·중·일 3국의 밥상문화
한국 음식문화, 아니 세계 음식문화의 분기점이 다가오고 있다. 쌀은 물론 소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미래의 식량이 개발됐다. 소 세포를 입힌 ‘소고기쌀’이 그것이다. 홍진기 연세대 교수 연구진의 성과다. 소고기쌀은 소고기 맛을 내는 붉은색 쌀이다. 연세대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매터(Matter)’에 게재됐다. 미국 CNN 방송·영국 BBC 방송 등은 ‘미래의 식량’이라면 극찬하고 있다. 그럴만하다. 소고기쌀은 소고기쌀 종자를 길러서 재배한 ‘배양육’이 아니다. 이미 수확한 쌀을 지지체(뼈대)로 한다. 쌀에 소 골격근과 지방 줄기세포가 붙어서 분화하고 성숙한다는 의미다. 소 세포를 함유한 쌀에는 당연히 동물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다. 무려 18.54%란다. 소고기쌀 밥을 먹으면 매일 ‘빨간 쌀밥에 고기’를 먹는 셈이다.

최근 한국인의 음식 소비에서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육류 소비(58.0kg)가 쌀 소비(56.8kg)를 앞질렀다. 2022년 일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쌀과 육류 소비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3대 육류(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1인당 소비량은 60.6㎏이었다. 쌀 소비량은 54.6㎏이었다. 더 이상 한국의 주식은 쌀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게 됐다. ‘쌀 종주국’으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쌀 종주국?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발견된 볍씨 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우리나라에서 나왔다(1998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 유적지, 탄소 연대 측정 결과 1만 2000~1만 3000년 전). 소고기쌀이 쌀 종주국으로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만일 소고기쌀이 상용화된다면 쌀 소비를 늘리면서 육식 소비도 줄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거기다가 축산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단다.
동북아 3국 쌀 문화, 하나의 가마니에 담을 수 없어
쌀 얘기가 나온 김에 한·중·일 3국의 쌀과 밥 문화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0.02g밖에 되지 않는 쌀 한 톨은 그 자체가 문화의 씨앗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동북아시아 3국을 ‘농경문화권’이라고 통칭한다. 쌀을 주식으로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3국의 쌀과 밥의 문화를 하나의 가마니에 담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 쌀과 밥이라고 다 같은 쌀과 밥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과 일본은 자포니카라는 쌀로 지은 찰기가 있는 밥을 먹는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차질 쌀을 좋아한다. 반면 중국은 길고 가는 쌀인 인디카를 먹는다. 찰기가 떨어진다. 손으로 집어 먹어도 손에 붙지 않는다. 보슬보슬한 볶음밥을 만들기에 제격이다. 밥맛이야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 나라와 민족의 오랜 입맛이라는 문화적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어릴 때 쌀밥을 옥반(玉飯)이라고 ‘높여’ 불렀다. 옥처럼 희고 빛나는 밥이란 뜻이다. ‘백리부미(百里負米)’란 말도 있다. 쌀이라면 백 리라도 지고 가 부모를 봉양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쌀밥이 주는 상징성을 컸다.
중국 사람은 동북부 지방을 제외하고 인디카라고 하는 찰기가 없는 쌀로 밥을 짓는다. 인디카를 우리는 ‘안남미’라고 불렀다. 알량하다고 해서 ‘알량미’, 피처럼 붉다고 해서 ‘피쌀’, 튀밥 같다고 해서 ‘튀밥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거지나 먹는 쌀이라고 무시도 당했다. 안남미라는 이름의 유래는 당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에 설치한 최고 군정기관이 있다. 안동도호부다. 비슷한 시기에 베트남 북서부 지방인 안남 지방에도 안남도호부다. 거기서 안남 지방에 나는 쌀을 그렇게 불렀다. 우리나라에 안남미가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 때다. 일본이 우리 쌀을 수탈해가는 바람에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안남미를 수입하게 된 것이다.
‘알량미’는 몰라도 통일벼는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초기 식량부족을 해결했던 벼종이다. 차포니카와 인디카를 접종해서 만든 쌀이다. 모양은 자포니카종이지만 인디카 성질을 갖고 있다. 생산력이 아주 뛰어났다. 하지만 찰기가 없다. 푸석푸석한 밥맛이 난다. 박정희 정권 때 중앙정보부 요원 중 한 명이 이집트의 벼 품종 중 하나인 ‘나하디’를 몰래 들여왔다. 이것을 우리나라의 토종 볍씨와 접합시켜 통일벼를 만들었다.
쌀도 다르고 밥 짓는 방법도 다르고 밥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쌀의 종자가 다르니깐 밥을 짓는 방법도 다르다. 중국 사람은 쌀을 끓인 뒤 물을 따라내고 다시 뜸을 들인다. 최대한 물기를 없애기 위한 작업이다. 물기가 적으니깐 더욱 고슬고슬한 밥이 된다. 우리처럼 쌀을 안칠 대 밥물 조절을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밥을 대하는 세 나라의 태도도 다르다. 옛날에 우리는 ‘식사=밥’이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식사를 한 것이 아니다. 반찬 없이 물에 말아 먹든, 간장 하나에 비벼 먹더라도 밥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중국은 여러 음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밥의 위상이 우리보다 낮다는 얘기다. 중국 식사는 코스식이다. 우리처럼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차려놓고 먹는 게 아니다. 한 가지 음식을 먹은 다음에 다른 음식이 나온다. 밥은 맨 나중에 나온다. 배가 부르면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다. 밥은 여러 음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일본은 음식 재료로서 밥의 가치를 중시한다. 스시, 마키, 카레 등에서 보듯 밥을 음식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세 나라의 밥을 대하는 태도가 차이가 나는 것은 밥의 가치를 다르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구분은 왜 생긴 것일까. 자포니카와 인디카는 모두 다 아시아 재배종이다. 이것이 유전적 변이하면서 두 종으로 나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중·일 세 나라가 논과 밭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중국은 아예 논과 밭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티안(田)이라고 한다. 등록된 논을 젠티안(則田), 산을 개간해서 만든 밭을 샨티안(山田)이라고 하는 식이다. 일본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밭(田)은 논(타)을 뜻한다. 논(畓)은 일본식 한자 畑(はたけ)를 쓴다. 왜 세 나라의 단어의 차이를 보이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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