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울 때는 홍어 생각, 따뜻할 때는 굴비 생각.” 전라도 지방에 전해지는 말이다. 가을이 홍어의 제철이라는 얘기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최고의 맛을 자랑한단다. 그런데 5월의 홍어 축제가 열린단다. ‘홍어 1번지’ 흑산도 예리항에서 오는 5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개최된다. 광주의 한 유명 백화점도 이달 초순에 ‘홍어 대축제’를 열었다. 

블러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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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홍어 축제를 주관하는 전남 신안군은 “‘제철’에 맞춰 청정 수산물 축제를 개최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안군의 설명을 믿어보자. 5월 흑산도 홍어 축제가 기후 위기의 한 단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어떻든 오늘의 주제는 흑산도 홍어다. 전라도 지방에 ‘홍어 빠진 잔칫상에는 먹을 게 없다’, ‘홍어 맛을 보기 위해 잔칫집에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전라도에서는 경조사 때 반드시 홍어를 올린다. 다른 음식을 아무리 잘 차려도 홍어가 없으면 성의가 없다는 뒷말을 듣는다. 

홍어라면 역시 삭힌 홍어가 최고다. 흑산도는 홍어 산지로 오래전부터 이름을 날렸다. 흑산도에서 16년 동안 유배 생활하면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 선생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전에 한마디만 덧붙여 말하자. 《자산어보》의 ‘자산(玆山)’은 흑산도다. 정약전 선생은 흑산도가 ‘검은색 산’으로 불리는 걸 못 마땅해했다. 그래서 그는 ‘붉은색 산’이라는 의미로 ‘자산’이라고 불렀다. 어떻든 《자산어보》에 얼마나 많은 홍어가 흑산도에서 잡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암놈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놈은 간음 때문에 죽는다’라고 적고 있다. 낚싯바늘에 암놈이 걸리면 교미 중이던 수놈도 함께 잡힌다는 얘기다. 과장하자면, 흑산도 앞바다가 ‘물 반 홍어 반’인 셈이었다. 당연히 흔한 홍어는 서민 음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런 이유로 홍어는 민초를 대변했다. 숙성 과정은 짓밟힌 서민의 삶을 상징하기도 했다. 

‘가을 홍어’ 축제가 봄에 열리는 이유?

그런데 홍어 어획량이 현저히 줄었다. 가격이 뛰었다. 귀한 음식이 됐다. 지금은 전 세계 10여 개 나라에서 수입한다. 국내 홍어 어획량은 국내 수요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흑산도 홍어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한우보다 비싸다. 큰 것 한 마리는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외국산 홍어나 가오리보다 무려 10배 이상 비싸다. 

그렇게 비싸지만 잘 삭힌 홍어의 참맛을 찾아 나서는 이가 넘쳐난다. 필자는 몇 차례 삭힌 홍어를 먹어봤다. 아직 그 진미를 터득하지는 못했다. 우선 생김새부터 구미에 당기지 않는다. “넓적한 네모꼴 몸체에 가시가 돋쳤지만, 비늘이 없어 유별나게 생긴 데다가 허연 진액이 묻어 있는 흑갈색의 등허리를 비롯한 이목구비는 시늉만 했다 할 정도로 오종종하게 박혀 있어 언제나 보기에 혐오감을 자아냈다.” 김주영이 소설 《홍어》에서 묘사한 홍어의 느낌 그대로다. 

전라도 대표적 음식중 하나인 홍어
전라도 대표적 음식중 하나인 홍어

그래도 그 묘한 맛은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곰삭은 육질에서 나는 쿰쿰하고 퀴퀴한 냄새는 구미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한 점을 입에 넣으면 톡 쏘는 맛으로 변한다. 코끝이 찡해진다. 그 얼굴은 일그러진다. 분명 ‘행복한 맛’은 아니다. ‘가학적’이다. 이 단어로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맛이다. 그런데 미식가들은 지독한 냄새와 독특한 맛이 진미란다. 심지어 보약이라고 칭송한다. 누구보다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소설가는 그 맛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김주영은 소설《홍어》에서 “콧등을 톡 쏘는 내음과 곰삭은 고기 맛, 찜은 살이 결을 따라 쫄깃해서 구수하고 듬직한 맛의 일품”이라고 묘사했다. 홍어 마니아였던 황석영도 한마디 거들었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이라면서 홍어를 “맛의 혁명가”라고 했다. ‘홍어 찬미가’다. 독자들도 이 맛에 한 번 도전해보길 권한다.

‘삭힌 홍어는 맛의 혁명가’

그럼 우리나라 사람은 언제부터, 어떻게 삭힌 홍어 맛을 즐긴 것일까. 많은 음식이 그렇듯 ‘우연한 발견’에서 비롯됐다. 오래전 우리나라 사람은 홍어를 주로 회로 먹었다. 고려 말부터 발효미를 알게 됐다. 영산도 앞 바다에서 잡은 홍어는 식탁에 오르기까진 다시 ‘긴 항해’를 해야 했다. 굳이 싱싱한 홍어를 나주로 옮긴 것은 노략질하던 왜구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 거리가 무려 300리나 됐다. 부패하지 않도록 항아리 안에 볏짚을 깔고 홍어를 넣었다. 다시 볏짚으로 덮은 뒤 육지(나주)로 옮겼다. 사실상 그 과정에서 홍어가 부패하지 않고 발효됐다. 숙성되면서 특유의 냄새가 났다. 톡 쏘는 맛도 났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홍어는 부레와 신장이 없는 독특한 어류다. 대신 체내 삼투압을 통해 수압을 이겨낸다. 아무리 깊은 바다에서도 자유로운 영혼일 수 있는 이유다. 삼투압을 위해 다량의 효소 성분을 체내에 보관해야 한다. 대부분 동물은 신장을 통해 체내 불순물을 거른다. 신장이 없는 홍어는 체내 효소 성분과 함께 피부로 체내 불순물을 내보낸다. 체내의 요소 성분이 분해되면서 나온 게 암모니아다. 암모니아는 홍어살을 단단하게 유지한다. 또 살균작용도 한다. 잡균의 번식도 막으니 삭힌 홍어는 탈이 나는 법이 없다. 

이 때문에 나주 사람은 삭힌 홍어는 원조가 자기들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흑산도는 홍어의 산지일 뿐이라는 얘기다. 흑산도와 나주 사이에 ‘홍어’의 브랜드를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진 이유다. 어떻든 두 지역의 자존심은 삭힌 홍어를 먹는 방법 차이를 만들었다. 흑산도에선 막걸리 식초에 소금·참기름·쪽파를 더한 초장에 찍어 먹는다. 나주에선 된장에 고춧가루·식초를 섞은 초장이 있어야 한다. 함평과 영암 등에선 소금에 찍어 먹는다.

이름조차 ‘버리는 고기’가 된 홍어

사실 그건 전라도 사람의 얘기일 뿐이다. 전국적인 홍어 먹는 법은 따로 있다. ‘홍어삼합’과 ‘홍탁’이 그것이다. 홍어에 돼지고기와 묶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 게 홍어삼합이다. 여기에 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 이것을 홍어에 막걸리를 마시는 것을 홍탁이라고 한다. 기름진 돼지와 성질이 찬 홍어를 김치와 함께 먹고 몸을 덥히는 술까지 곁들이니 찰떡궁합이 따로 없다. 홍어 애국은 속풀이 해장국으로 최고다. 애국은 홍어 내장과 보리 순을 된장에 풀어 끓인 국이다. 이 이외에도 회, 구이, 찜, 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먹는다. 아무튼 홍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단다. ‘수놈의 그것’을 제외하고.

일본 사람도 삭힌 홍어를 먹을까. 조금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우리나라는 홍어를 완전히 삭힌다.
일본 사람도 삭힌 홍어를 먹을까. 조금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우리나라는 홍어를 완전히 삭힌다.

홍어는 암수놈의 가격 차이가 크다. 암놈이 크고 맛도 있다. 값도 훨씬 비싸다. 수놈 생식기를 제거한 뒤 암컷으로 속여 팔았다. 수컷의 생식기는 꼬리 부근에 달려 있다. 이 때문에 마치 꼬리가 세 개처럼 보인다. 생식기에는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다. 다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잡자마자 이것을 떼버렸다. ‘만만한 게 홍어 X’이라는 말도 여기서 생겨난 것이다. 남자 대접 제대로 받지 못할 때 쓰이는 속담이다. 

그럼 일본 사람도 삭힌 홍어를 먹을까. 조금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우리나라는 홍어를 완전히 삭힌다. 홍어의 크기에 따라 숙성기간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래도 적어도 1주일 이상 소요된다. 일본은 하루 말려서 꾸들꾸들해진 뒤에 구워 먹는다. 이것을 가스베 구이라고 한다. 홋카이도의 향토 음식이다. 일본어로 홍어는 칸기에이다. 칸기에이의 다른 말이 ‘가스베’다. ‘가스’는 쓰레기이고 ‘베’가 생선을 뜻한다. 가스베는 ‘버리는 생선’이라는 의미다. 아마도 옛날에는 홍어를 못 먹는 생선으로 취급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실제로 산 홍어를 버린 것은 아니다. 가오리처럼 홍어 역시 주로 조림 요리에 많이 썼다. 일본 된장국인 미소 국을 끓여 먹거나 연골을 튀겨 먹기도 했다. 회로도 먹기도 했다. 다른 생선회처럼 선회로 먹는다. 남부지방에서는 아까에이(노랑가오리)를 즐겨 먹지만, 북부 홋카이도 지역에선 이 홍어를 즐긴다.

중국은 홍어 대신 쏘가리

중국도 홍어를 먹기는 한다. 하지만 썩 즐기는 편은 아니다. 우리와 달리 코, 애, 껍질 등은 먹지 않는다. 주로 날개 쪽 살만 식용으로 쓴다. 중국에는 삭힌 음식이 꽤 많다. 두부를 삭힌 취두부, 오리알을 삭힌 송화단도 있다. 당연히 삭힌 생선도 유명하다. 홍어 대신 쏘가리를 삭혀 먹는다. 처우구이위(臭鱖魚 썩은 쏘가리)라는 요리다. 이것은 홍어보다 냄새가 더 지독하다. 한국의 홍어처럼 삭힌 쏘가리를 이용한 요리다. 이 요리는 안후이성의 대표적인 전통 요리다. 한번 맛보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을 정도다. 중독성이 강한 마니아도 많다. 

중국 광저우 자연산송이 홍어삼합
중국 광저우 자연산송이 홍어삼합

처우구이위는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음식이다. 남송 때 고대 상인은 매년 봄과 여름 환절기에 쏘가리를 잡아서 한때 도성이었던 린안(臨安·지금의 항저우)에서 팔았다. 린안으로 가는 길이 아주 멀고 교통이 불편해 쏘가리 운반에 애를 먹었다. 또한 신선도가 유지되지 않았다. 습기가 많고 더운 날씨 탓이었다. 어느 날 한 상인이 쏘가리를 운반하다가 더운 날씨 탓에 큰 손해를 보게 됐다. 아내는 이미 썩은 쏘가리를 유채 기름으로 튀긴 후 양념과 파 생강을 넣고 요리했다. 생선의 썩은 냄새가 다 없어지고 오히려 풍미가 살아났다. 후대 요리사가 이 요리법을 전수하여 지금의 처우구이위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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