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출산 풍습
또 하나의 한류 문화가 뜨고 있다.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식 산후조리원 얘기다. 산후조리원은 미국인에게 낯선 문화다. 산후풍을 예방하는 산후조리를 하는 서양인은 많지 않다. 서양인은 상대적으로 골반이 크다. 근육량도 많다. 출산 후 이완된 골반과 골절이 제자리를 찾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이유다. 이 때문에 산후풍에 시달리는 사례가 많지 않다. 사례를 들어보자. 영국 왕세손빈인 케이트 미들턴이 2018년 셋째 아들 루이 윌리엄을 낳았다. 미들턴은 출산 10시간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다. 그것도 하이힐에 빨간색 원피스 차림이었다. 한국인이라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미국을 한국식 산후조리원이 강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11일 한국식 산후조리원을 대서특필했다. ‘미국의 부유한 산모를 끌어들이는 호화 산후조리원’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미국 전역에서 산후조리원이 생겨나고 있다. 하루 이용료가 최대 1,650달러(약 216만 원)에 이르는 고가임에도 대기 인원이 4,000명에 이를 정도”라는 게 그 골자다. 블룸버그는 호화 산후조리원의 인기 배경으로 ‘돌봄 지원 서비스’가 없는 미국 의료 시스템을 꼽았다.
동양에서만 산후 조리하는 이유
동양의 대부분 나라는 출산부는 산후조리를 한다. 동양 3국, 한·중·일도 물론 그렇다. 하지만 산후조리 방법 즉 임신 전의 상태로 돌리기 위한 휴식법, 섭취 음식, 순산 기원 방법 등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출산 과정에서 벌어진 골반은 연골화 되어 있다. 여러 근육과 골절 역시 이완되어 있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완된 골반과 골절 그리고 근육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랬을 때 산후풍에 시달린다. 동양에서는 산후풍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고 있다. 결국 산후조리란 산후풍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공통된 인식에서 나오는 게 체온 관리다. 출산한 여성의 몸은 호르몬의 불안정한 분비, 출혈 등으로 체온 조절이 어렵다. 출산 후 오한과 고열에 시달릴 수 있다. 세 나라 모두 산모의 찬물 목욕과 찬 바람에 피부 노출, 뜨거운 음식 섭취 등을 피한다. 대신 방안에서도 긴 소매의 옷을 입고 양말을 신는다. 산후조리 기간은 한국과 일본이 삼칠일 즉 3주 정도, 중국은 한 달 정도다.
한국에는 최근 산모 10명 중 8명이 산후조리원에 간다고 한다. 옛날에는 집에서 출산하는 게 보통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걸었다. 아기의 탄생을 동네 사람에게 알리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경계하는 표식이다. 금줄은 낯선 사람이나 귀신, 전염병 등을 막아주는 장치였다. 금줄을 왼 새끼줄로 엮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들이면 새끼줄 사이에 고추와 숯, 딸이면 소나무 가지와 숯을 꽂는다. 또 맨 미역국을 끓어 삼신할머니에게 올리고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빈다.
우리와 유사한 문화를 가진 중국이지만 출산 풍습은 대비된다. 우리는 출산을 기념해 금줄을 친다면 중국은 이웃에 달걀을 돌린다. 중국인에게 붉은색은 행운을 뜻한다. 빨간 달걀은 탄생의 기쁨과 함께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셈이다. 옛날에는 태어난 남자아이에게 값비싼 보석 장식을 걸어주고, 여자아이는 도자기로 만든 장식을 거는 풍습이 있었다. 남존여비였다. 최근에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중국에 한 때 ‘4·2·1신드롬’이란 말이 유행했다. ‘1자녀 정책’을 펼 때다. 4·2·1은 조부모, 부모, 자녀 숫자를 뜻한다. 이 증후군은 어른의 과보호와 맹목적 사랑을 받고 자란 버릇없는 소황제를 뜻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녀 차별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산모의 산후조리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친정 식구의 몫이었다. 최근에는 산후조리원에서 보살핌을 받는 게 대세다. 친정집이든 산후조리원에서 든 산모가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산모와 신생아가 실내에서 한 달 동안 지내야 한다. 줘웹쓰(坐月子)다. 글자 그대로 앉아서 한 달을 보내는 것이다. 1달 동안 바깥출입이 금지다. 이 동안 찬물을 먹거나 묻히는 것도 금한다. 심지어 머리도 감지 않는다.
한국엔 금줄, 중국엔 붉은색 달걀, 일본은 출산용 가옥
옛날 일본에는 전 세계에서도 독특한 출산 풍습이 있다. 출산 전용 임시 가옥인 ‘우부야(産屋) 출산’이 그것이다. 우부야는 ‘부정을 피해 산모가 출산 뒤 일주일 정도 별거하는 외딴 오두막집(小屋·고야)’이다. 별거 기간에는 남성이 출입이 금지된다. 우부야는 임무가 끝나면 헐어버리는 게 보통이다. 이처럼 임산부를 ‘격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면역력이 약해진 임산부의 건강을 고려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격리된 공간’은 신성한 공간과 부정한 공간의 의미가 겹친다. 신성함은 탄생이다. 부정함은 여성의 피다. 출산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신성한 일이자 출혈을 수반하는 부정 타는 일이라고 보는 인식이 겹쳐 있다. 피의 부정은 남성 우위의 무라샤카이(村社會)와 깊은 관계가 있다. 또 고급 사무라이 사회에는 제도화된 ‘산예(産藝)’도 존재했다. 그 골자는 7일간 근신하여 부정을 떨치는 것이다. 출산으로 인해 생긴 부정을 씻는 방법으로 ‘흰색’이 동원된다. 우부야는 흰색 목재로 만든다. 출산 후 이레 동안 산모가 쓴 가재도구를 흰색으로 치장한다. 태어난 아이의 옷과 물품은 물론 시중을 든 하인도 흰옷을 입는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풍습도 있다. 이누노히(戌の日)다. 임신 5개월이 되는 달, 개의 날에 신사에 가서 무사한 출산을 기원하는 일종의 순산 기원 행사다. 우선 임산부는 신사의 제관에게 기도를 요청한다. 이런 기도 행위를 오하라이(大祓い·액막이)이라고 한다. 기도를 마친 신사의 신관은 임산부에게 ‘하라오비(腹帶)’를 감아준다. 이 복대를 ‘사라시오비’(さらし帯)'라고 한다. 이것을 일련의 의식을 통틀어 오비오하이(帯祝い)이라고 한다.
최근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산후조리원에 거의 가지 않는다. 주로 산모의 친정 주변의 병원이나 조산소에서 출산한다.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7~9일 후 퇴원해서 바로 친정에서 한 달 정도 쉰다.
산후조리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음식이다. 최고의 산후조리는 건강한 음식이다. 하지만 임신 이전과 같은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은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국의 대표적 산모 건강식은 미역국이다. 조선시대 여성의 생활풍속을 소개한 《조선여속고》에 “해산 뒤 쌀밥과 미역국 세 그릇씩 삼신상을 차려 바쳤는데 여기에 놓았던 밥과 국은 반드시 산모가 먹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최남선은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산신(産神)’의 ‘삼’은 ‘태(胎)’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태는 태아, 태반, 탯줄이다.
출산 후 처음으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는 데 이를 ‘첫국밥’이라고 불렀다. ‘첫국밥’은 사잣밥과 대응한다. 사잣밥은 저승에 죽은 사람의 영혼을 데리러 온 사자에게 대접하는 밥이다. 옛날에는 출산 과정에서 많은 산모가 죽었다. 출산은 사잣밥과 첫국밥의 갈림길이었다. 즉 첫국밥은 죽지 않고 살아서 먹는 첫 번째 국밥이라는 의미다. 첫국밥 밥상에는 삼신상에 올린 정화수로 지은 밥과 해산미역으로 끓인 국을 올린다. 해산미역은 산모를 위해 미리 마련해둔 미역이다. 산모의 빠른 회복을 바라는 의미에서 특별히 길고 넓적한 최상품으로 고르는 게 관례다. 해산미역이 아무리 길어도 이를 꺾는 법은 없다. 부러지면 불길하게 여겼다. 산모의 건강이 나빠지거나 난산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구부러지지 않게 접어놓은 해산미역 모양이 마치 꼬부랑 할머니의 허리와 닮았다고 해서 허리 굽은 노인 여성을 ‘해산미역 같다’라고 했다.
한국 산후조리용 대표 음식은 미역, 중국은 계란, 일본은 토란
우리 조상은 산후에 먹는 미역을 ‘선약(仙藥)으로 여겼다. ‘장수의 약’이라는 뜻이다. 우리 조상은 미역의 효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 아니, 약리 작용을 확인하고 미역을 먹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당나라 때 저서인 《초학기》에 따르면 고래가 새기를 낳은 후 미역을 먹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이 먹기 시작했단다. 사실 미역은 칼슘과 요오드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자궁의 수축과 지혈을 도움이 된다. 모유 분비도 촉진한다.

가물치도 산후 보양식으로 여겨졌다. “닭을 먹으면 효과가 3일 가고 보신당(개고기)를 먹으면 7일 가고 쇠고기는 15일 가고 흑어(黑魚)는 한 달 간다”라는 말이 있다. 흑어가 바로 가물치다. 가물치는 강장 능력이 뛰어나다. 다량의 무기질이 함유되어 있어 산모의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중국은 해초류를 즐기지 않는다. 해안지방 사람조차 그렇다. 산후 건강식으로 미역국 대신 계란탕을 먹는다. 여기에는 죽순, 해삼 등 고급 재료들이 들어간다. 아니 중국 산모는 달걀을 ‘복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골계탕, 닭죽, 계란탕 등 닭 요리로 산모를 몸보신한다. 야지(鸭喜·부화하지 않은 오리알)도 삶아 먹는다. 특히 달걀의 노른자에 들어 있는 콜린이 아이의 두뇌 성장을 돕는 ‘브레인 영양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고 한다. 특이한 것은 혈액순환과 노폐물 배출을 위해 포도주(포도주)를 끼니마다 마신다. 술을 끓여 알코올을 날린 다음 생수 대신 마시기도 한다. 일본 산모는 가츠오부시(가다랑어)를 먹는다. 가츠오부시는 옛날부터 기혈을 보고하고 근력을 키우며 모든 병에 해가 없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또 ‘흙 속의 달걀’이라는 토란이 산후 회복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토란은 산모의 젖 생산을 늘리고 어혈을 풀어 노폐물 배출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산모는 또 치카라모치를 먹는다. 친정어머니가 딸의 출산 때 만들어 주는 떡이다. 치카라모치는 먹으면 힘이 나는 떡이라는 의미다. 보통의 떡보다 크기가 크다. 그만큼 팥을 많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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