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즉위한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초상화가 그려진 화폐가 발행됐다. 이 화폐는 각각 5, 10, 20, 50파운드 등 4장의 지폐다. 오는 6월 5일부터 유통된다. 찰스 3세 국왕은 직전 국왕인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여왕에 이어 두 번째 화폐의 주인공이 됐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초상화 ⓒ블러그 갈무리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초상화 ⓒ블러그 갈무리

우리나라에도 초상화와 관련한 빅뉴스가 전해졌다. 조선 후기의 최고의 화가인 단원 김홍도와 이명기가 함께 그린 초상화 3점이 발견됐다. 초상화다. 주인공은 내암(乃菴) 최좌해(崔左海·1738~1799)다. 최좌해는 관직에는 진출하지 않고 학문에 몰두한 대학자다. 조선 조정은 ‘연정(淵正)’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를 계기로 한·중·일 세 나라의 초상화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조선은 ‘초상화의 왕국’이었다. 초상화는 얼굴 그림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얼굴 사진이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1,000점이 넘는다. 그중에 태조 어진(국보 317호) 등 국보 5점, 보물은 70점에 달할 정도로 수준도 매우 높다. 그중에서도 김홍도의 영조 어진과 세손 시절의 정조 초상화도 포함된다. 

전주 한옥마을 갈무리
전주 한옥마을 갈무리

조선은 유교를 기반으로 한 나라다. 그렇다 보니 학문을 숭상했다. 학문을 닦던 곳이 서원이었다. 서원을 중심으로 학문적 업적이 높은 선현을 기리기 위해서 영정을 그렸다. 그런 측면에서 초상화는 기록과 교화라는 의미를 갖는 셈이다. 물론 왕도 어진을 남겼다. 국가에 공을 세운 공신은 임금의 명령으로 초상화를 남기기도 했다. 최좌해 초상화도 서원에 그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최고의 어진화사인 이명기와 김홍도가 이 초상화를 그렸다는 제자의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진화사란 당대 최고의 궁중 화가란 의미다. 그들을 ‘주관화사’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추천받은 화가 중에서 실기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주관화사가 될 수 있다.

왕의 초상은 그만큼 중요했다는 의미다. 사실 왕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강력한 ‘조형물’이나 진배없다. 당연히 어진을 그린다는 건 중요한 국가적 행사였다. 조선 왕은 10년에 한 번씩 초상화를 남기는 게 관례였다. 다양한 목적에 따라 비공식적 초상화도 그리게 했다. 그럴 때는 그 목적에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는 게 보통이다. 또 어진은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조선 왕조가 500년을 이어왔으니까 10년마다 그리고 복식에 따라 다른 초상화를 남겼다면 적어도 50장 이상의 어진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몇 장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전주의 경기전에 가면 어진박물관이 있다. 거기에 태조, 세종, 영조, 정조, 고종, 철종, 순종 등 7개 어진이 전시되어 있다. 태조와 세종, 영조, 정조는 생전의 모습이 아니다. 태조는 1872년에, 영조는 1900년에 다시 그린 어진이다. 세종과 정조 초상화는 최근에 표준 초상화를 그렸다. 전쟁으로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 있는 그대로 그린 조선의 초상화

그럼 왕과 사대부의 초상화 그리는 법은 다른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이는 중국과 일본과 다른 점이다. 우선 기름종이에 버드나무 숯으로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이 완성되면 종이 뒷면에 색칠한다. 배채(背彩)다. 이는 한국 초상화에만 있는 방식이다. 배채가 끝나면 앞면도 색칠한다. 초본이 완성되면 비단에 덧댄 후 그림을 그린다. 비단 역시 배채를 한다. 조선의 초상화의 뒷면을 현미경 등으로 보면 붓 자국은 물론 밑그림도 확인할 수 있다. 종이가 얇고 색의 보존을 위한 기법이다.

독자에게 물어볼 얘기가 있다. 혹시 고려의 왕 초상화를 보거나 들어본 일이 있나? 없을 것이다. 조선은 고려시대의 초상화를 모두 불태웠다. 하나도 남김없이. 그것도 우리가 존경해 마지않는 ‘세종대왕이 그렇게 됐다. 

초상화는 얼굴 그림이다. 또 한·중·일 세 나라는 유교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당연히 세 나라의 초상화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완전히 다르다. 조선의 초상화는 ‘사실주의 극치’, ‘사실 묘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승정원 일기》에 초상화에 관한 정의가 나온다. “털 하나,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르게 그리면 그건 다른 사람”이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이 자화상에서 우리나라 초상화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얼굴의 약점을 미화하는 법이 없었다. 생긴 대로 그렸다. 딸기코, 천연두 자국은 물론 칼 흉터까지 초상화에 남겼다. 

그렇게 그린 이유가 있다. 진실의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다. 얼굴을 미화하는 것 자체를 거짓으로 봤다. 거짓된 인품을 담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다는 얘기다. 이를 잘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1984년에 피부과 전문의인 이성락 박사가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변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를 통해 초상화에 드러난 병변이 천연두 등 무려 20가지나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천연두를 앓은 흔적이 남은 초상화는 무려 14%나 됐다. 실명한 사람도 4명, 사팔뜨기(황현과 채제공)인 사람도 몇 명 있다. 백반증 환자(송창명)도 있다. 이성계의 초상화에는 왼쪽 눈썹 위에 물혹도 그려져 있다. 조선의 초상화가 사실적이지 않다면 시도조차 무의미한 연구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초상화로는 조선 최초의 자화상인 윤두서 초상화가 꼽힌다. 매서운 눈, 굳게 다문 입, 길고 가는 수염을 보며 마치 실물처럼 느껴진다.

▶ 해석된 중국의 초상화와 숨김의 미학이 밴 일본 초상화

그에 비해 중국의 초상화는 ‘해석된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초상화가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이다. 그의 초상화는 여러 장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닮은 그림은 없다. 가장 유명한 초상화 하나로 설명을 해보자.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 ⓒ 블러그 갈무리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 ⓒ 블러그 갈무리

이 초상화는 길쭉한 얼굴, 얼굴에 작은 곰보 자국, 길게 늘어진 귀, 굵직한 코, 돌출된 이마, 튀어나온 턱과 광대뼈가 특징이다. 과장이 매우 심한 편이다. 주원장은 황제가 되기 전에 그려진 이 초상화를 황제가 되고 전국에 배포했다고 한다. 중국은 유명한 다섯 산과 방위를 묶어 중악, 동악, 서악, 남악, 북악이라 불렀다. 사람 얼굴에 있는 코, 오른쪽과 왼쪽 광대, 이마와 턱 등 다섯 부분도 오악이라 여겼다. 그리고 사람 얼굴에서도 이 오악이 산처럼 높고 클수록 대길하다고 보았다. 주원장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얼굴에서 오악 부분을 최대한 크게 그린 초상화를 배포해 백성에게 자신이 황제가 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선전했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중국 황제들의 초상은 주원장 초상에서 보듯 중요한 선전 수단이었다. 또 다른 주원장의 초상화는 매우 근엄하고 권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용모도 단정하다. 정면을 보고 있다. 이 초상화에는 진시황, 한고조, 한무제, 당태종, 송태조 등 위대한 업적을 남긴 명군의 이미지를 모아서 그렸다고 한다. 톈안먼(天安門)에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내거는 것도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톈안먼은 이후 중국 최고 권력을 하늘이 내렸다는 상징이다. 톈안먼을 ‘국운의 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누구도 톈안먼에 초상화를 걸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청나라가 망한 후 위안스카이부터 쑨원, 장쩌스, 그리고 중국혁명이 성공한 뒤 중국 공산당 지도자인 마오쩌둥과 주더의 초상화를 걸었다. 나중에 주더 것은 뗐다. 마오 것만 지금까지 남아 있다. 어떤 나라도 국가의 상징적 건물에 초상화를 걸지 않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초상화 ⓒ 블러그 갈무리
도쿠가와 이에야스 초상화 ⓒ 블러그 갈무리

일본 초상화 역시 사실적이지 않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쇼군 초상화를 보면 얼굴에 흰색 분칠을 하고 있다. 또 초상화 주인공의 특징을 잡아내 몇 가지 선으로 강조하는 게 특징이다. 그렇다 보니 극적으로 변형되고 과장되어 보인다. 특히 남아 있는 대부분의 도요토미와 도쿠가와 초상화는 얼굴은 매우 작다. 갑옷은 훨씬 크다. 초상화의 중심이 얼굴이 아니라 갑옷처럼 보인다. 일본 초상화는 ‘숨김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그린 것이다. 있는 것을 외면하고, 보이는 것을 못 본 척하는 정서가 초상화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셈이다. 과거사를 숨기고 외면하는 것은 본래 일본인이 가진 이중성으로, 백색의 초상화처럼 오랜 ‘미장(美裝)’ 의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이 지속가능한 저널리즘을 만듭니다.

정기후원 하기